윤석열 대통령이 국회를 통과한 일명 노란봉투법과 방송 3법에 대해 국회에 재의결을 요구하며 거부권을 행사했다.
대통령실은 1일 오후 기자들에게 문자 공지를 보내 윤 대통령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란봉투법), 방송법, 한국교육방송공사법, 방송문화진흥회법 등 법률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안을 각각 결재했다고 밝혔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이들 법률안에 대해 윤 대통령이 국회에 재의결을 요구한 것으로, 재의결 요건은 의원 재적 과반수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다. 여당인 국민의힘 의석이 재적 3분의 1을 넘으므로 큰 이변이 없는 한 이 4개 법률안은 재의결되지 못하고 폐기되는 수순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은 하청노조, 일용직 건설노동자, 화물노동자, 플랫폼노동자들이 사실상 근로조건을 통제하는 원청에 대한 교섭권을 가지게 하고, 노동쟁의에 대한 사측의 손해배상 가압류에 제한을 두는 내용이다. 방송 3법 개정안은 현행 9∼11명인 공영방송의 이사를 21명으로 늘려 정치권의 영향을 줄이는 게 핵심이다.
이들 법안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이날 오전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임시 국무회의가 재의요구를 해야 한다고 의결하면서 이미 기정사실로 됐다. 한 총리는 이날 노란봉투법에 대해 "산업현장에 갈등과 혼란을 야기하고, 국민 불편과 국가 경제에 막대한 어려움을 초래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했고 방송 3법에 대해서는 "특정 이해관계나 편향적인 단체 중심으로 이사회가 구성됨으로써 공정성·공익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대통령의 이같은 거부권 행사가 오히려 정략적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적 합의가 높고 실제 법안을 개정할 필요성이 매우 높은데, 정략적 이유로 거부권 행사하는 것은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여당이 취할 태도가 아니라는 말씀을 드린다"고 지적했다.
야당에 각 세우는 데 대통령 권한 십분 활용
윤 대통령은 지난 4월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 매입하도록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하고 처우를 개선하는 간호법 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해 이 두 법안은 재의결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이번에 노란봉투법과 방송 3법도 같은 운명. 시민사회의 입법 요구가 높았던 법안들이다.
야당이 이날 본회의에서 처리하려고 했던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소추안도 윤 대통령이 이 위원장 면직안을 결재하면서 없던 일로 됐다. 의석수가 많은 야당이 국회 절차로 추진하는 일들을 윤 대통령이 자신의 권한을 십분 활용해 저지하고 있는 양상이다.
윤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 모두발언 등을 통해 국회에 법안 처리를 당부하는 일이 잦아졌다. 지난달 28일에는 임금채권보장법, 산업입지법, 산업집적법 등을 시급히 통과시켜 달라고 국회에 요청했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뒤인 지난 10월 31일 예산안을 설명하기 위해 국회를 찾았을 땐 야당 의원들에게도 일일이 악수를 청하면서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자녀의 학교 폭력 문제와 근무 시간 중 주식거래 같은 문제가 드러나면서 국회가 청문경과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은 김명수 합참의장을 임명했고, 야당이 주도해 통과시킨 법안들에 거부권을 적극 행사하고 나서면서 대통령과 국회의 관계가 다시 대치 국면으로 흘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