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딥페이크 성범죄'에 분노한 여성 시민과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섰다.
29일 오후 2시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근처에서 "전국적인 성범죄를 가능하게 한 국가를 규탄"하는 여성 시민·대학생 긴급 기자회견이 서울여성회 등 주최로 열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30~40명의 여성은 "성적수치심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느껴야 할 감정"이라면서 "가해자가 능욕한다고 여성들의 존엄성이 무너지지 않는다"고 외쳤다.
강남역 10번 출구를 기자회견 장소로 정한 이유에 대해, 이날 기자회견을 주최한 서울여성회 박지아 부회장은 "(지난 2016년 발생한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으로 인해) 강남역이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얼마나 안전하지 않은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던 곳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한 박 부회장은 "딥페이크가 이렇게 심각한 범죄로 드러날 때까지, 소라넷부터 N번방까지 얼마나 많은 사건들이 있었나"라면서 "정부와 정치권이 사이버 성폭력을 개인의 문제로 취급하며 제대로 다루지 않다가 분노가 일어나자 겨우 미온책이나 발표해왔고, 이들이 이 사건의 공범임을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불안해서 잠 오지 않는다고 연락 받아... 언제까지 여성이 숨어야 하나"
이 자리에서는 이번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범죄'를 마주하는 여성 대학생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서울여성회 페미니스트 대학생 연합동아리의 강나연 운영위원은 "서울경찰청에서 각 학교에 '긴급스쿨벨'을 발령하면서 피해 예방 수칙 1번으로 온라인에 개인정보를 올리거나 공유하지 말라고 했다"라면서 분노했다. 강 운영위원은 "언제까지 여성들이 숨고 피해야 하나. 가해자들이 아무리 여성들을 '능욕'한다고 해도 그들은 능욕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며칠간 친구들에게 불안해서 잠이 오지 않는다는 연락을 받고 인스타그램에 많은 친구들이 분노와 답답함을 토로하는 걸 봐 왔다. 이는 단순한 불안과 공포만이 아닌, 성희롱과 성폭력이 말 그대로 일상이었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와 환멸"이라고 지적했다.
고려대 여학생위원회 구성원인 '안'(닉네임)씨 역시 "대학 커뮤니티는 표면적으로는 피해자들에게 연민을 느끼고 가해자들에게 분노하지만 금세 논점이 흐려진다. 가해자 숫자가 잘못되었다면서 너의 불안이 과장됐다, 일반화하지 말라고 한다"라면서 "주변에서는 탈조, 즉 한국을 떠나는 게 답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종착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안다. 나 이외의 동료 시민과 연대해야 한다는 걸 알기에 오늘 이 자리에 섰다"라고 말했다.
이날 유일한 남성 대학생 참가자인 신래훈 서울지역대학 인권연합동아리 운영위원은 "나는 딥페이크 성범죄에 분노하는 대학생이자 남성 시민으로 이 자리에 나왔다"면서 "활동가로서 2년 반 동안 텔레그램을 사용해 왔는데, 최근 일주일간 텔레그램 신규 가입 알림을 이렇게 많이 받아본 적은 처음이다. 지인 중 누가 텔레그램을 사용하는지 확인해 보려고 가입하는 것이다. 이는 주변의 누가 가해자일지 모른다는 공포이고 일상을 위협하는 불안감"이라고 말했다.
신 운영위원은 "한 시민으로서 동료 시민을 인간으로 대우하는 사회 속에서 살고 싶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대접받지 못하고 대상화되는 사회 속에서 감히 그 어느 누가 진정으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겠나"라면서 "일부 여성들만의 문제로 축소시키고 문제 해결을 미루는 정치권력에 맞서 모든 젠더를 포괄하는 더 넓은 시민적 연대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 사태에 대해 대국민 사과해야"
정치권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조혜원 서울여성회 회원은 "윤석열 대통령은 며칠 전 딥페이크 영상물은 심각한 범죄라며 엄중히 처벌할 것을 관련 기관에 요구하는 발언을 했지만, 이는 그저 본인의 업무 지시에 불과한 의미 없는 발언"이라면서 "한 나라의 대통령이 가졌어야 할 태도는 바로 N번방 사건 이후에도 나아지지 않은 성 착취 산업구조에 대한 책임감과 이 사태에 대한 대국민 사과"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불과 4년밖에 지나지 않은 N번방 사건 때와는 기술의 양상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새로운 범죄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특수한 것으로 묶어 분류할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우리 사회의 여성 혐오적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깨달아야 할 때"라면서 "덮어두고 삭제만 할 때는 지났다. 원인은 여성을 동료 시민으로 보지 않고 언제든지 농락할 수 있으며 그것으로 우월감을 느끼는 여성 혐오적 사회문화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라고 전했다.
최윤이 정의당 페미니스트 여성정치클럽 대표 또한 "허은아 개혁신당 대표는 딥페이크 성범죄를 젠더 갈등 소재로 악용해서는 안 된다고, 같은 당의 이준석 의원은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한 과대평가로 인해 과잉 규제가 발생될 것이 우려된다고 했다. 개혁신당에게 딥페이크 성범죄는 한국 사회의 심각한 젠더폭력 사건이 아니라 갈등 소재일 뿐인가? 정치인으로서 책임있는 자세를 보이라고 요구한다"라고 지적했다.
경희대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울림'의 구성원 송소영씨는 이날 "'추적단불꽃'의 2년간 추적 끝에 서울대학교 딥페이크 사건 범죄자가 올해 검거됐다. 우리는 변화를 만들 수 있다"라면서 "아무리 사회와 나라를 믿을 수 없어도 지금까지의 폭력적인 무관심과 방관에 지칠 것 같아도 지치지 말고 우리 뒤에 수많은 피해자의 용기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자"라고 독려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마치고 "온라인 익명성 뒤에 숨어 여성을 능욕하는 이들에 맞서 숨기지 않고 가면을 벗어던지겠다는 의미를 담아" 가면을 벗어던지면서 구호를 외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서울여성회 측은 '딥페이크 성범죄 OUT 공동행동'을 발족해 내일(30일) 오후 7시 같은 장소에서 '이어 말하기'를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