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가담자로 검찰이 기소한 투자자 손아무개씨 방조 혐의에 대해 12일 항소심 재판부가 유죄를 선고했다.
이날 서울고등법원 형사5부(권순형·안승훈·심승우 부장판사)는 "피고인들의 시세조종 행위를 인식하고도 이를 용이하게 방조했음이 인정된다"면서 손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다만 재판부는 주가조작 일당과 공동으로 시세조종에 가담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증거 부족 등을 이유로 1심과 마찬가지로 무죄로 판단했다.
앞서 검찰이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온 손씨에 대해 방조 혐의를 예비적 공소 사실로 추가하면서 이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이 특히 주목을 받았다. 대통령실이 손씨 1심 판결을 근거로 김건희 여사의 무혐의를 주장해왔기 때문에 2심 선고 결과에 따라 김 여사에 대한 처분 방향을 결정한다는 것이 검찰의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김 여사에 대한 검찰 수사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 높아진 상황이다. 당장 이날 더불어민주당은 재판 결과에 대해 "손씨에게 주가조작 방조혐의가 인정된다면, 마찬가지로 이 사건의 전주였던 김건희 여사도 혐의를 피할 길이 없다"면서 "김 여사 계좌가 '작전문자'에 따라 움직이는 등 사건 연루 정황도 차고 넘친다. 검찰은 당장 김 여사를 소환해 조사하고 기소하라"고 주장했다.
김건희 여사 계좌 거래 성격, 손씨와 명확히 구분한 재판부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김 여사가 손씨와 같은 전주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그동안 검찰 수사나 공판 과정에서 확인된 사실들만 살펴봐도 손씨와 김 여사와는 큰 차이가 있다.
먼저 계좌 성격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 재판부의 명확한 입장이다. 1심 재판부는 손씨의 경우 자신의 판단에 따라 계좌들을 운용했다고 판단한 반면, 김 여사 계좌 4개 중 3개에 대해 이 사건의 콘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블랙펄인베스트먼트가 직·간접적으로 운용했다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1심 재판부가 손씨 계좌 거래 8건에 대해서는 무죄로, 김 여사 계좌에서 이뤄진 거래 49건 중 48건을 유죄 판단했던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설명자료를 통해 "피고인들의 시세조종 행위에 있어서는 원심과 기본적으로 결론을 같이 한다"고 밝혔다.
이와 같은 판단은 사실상 방조 행위 여부에 대한 판단과도 맞물려 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형법상 방조 행위는 "정범(자신의 의사에 따라 범죄를 실제 행한 사람)이 범행을 한다는 사정을 알면서 그 실행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직접·간접의 모든 행위"를 가리킨다. 이와 같은 행위 여부를 따지기 위한 사실 관계에서 두 사람 사이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 현재까지 법원의 시각인 셈이다.
1차 주가 조작 관여 계좌주 18명 중 2차 관여자... 김 여사가 유일
정범의 범행 시점 또한 방조 행위와 관련 따져봐야 하는 지점이다. 김 여사 경우는 손씨와 달리 1차 주가 조작에도 연루돼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사건 종합의견서를 통해 이 사건 범행 시작 시점을 1차 주포 계좌에서 도이치모터스 주식 주문이 나온 2009년 12월 23일로 특정했다. 이 사건의 정범 중 두 사람, 즉 권오수 도이치모터스 회장과 1차 주포 이아무개씨가 범행을 하는 사정이 발생한 시기다. 공판 과정에서 이씨는 권 회장으로부터 김 여사를 소개받은 시점을 2010년 1월로 증언했다. 이 때부터 관여한 김 여사와 2차 주가 조작에 가담했던 혐의로 기소됐던 손씨 사이에는 역시 큰 차이가 존재한다.
"이 시기 관여된 계좌주는 DJ, DH, CP, FB, FC, DG(김건희), AJ, FD, FE, FF, FG, FH, FI, FJ, FK, FL, FM, FN가 있는 것으로 제시되어 있는 바..." (1심 판결문 중)
검찰이 제시한 1차 주가 조작 관여 계좌주 18명 중 2차 주가 조작에도 관여된 계좌주는 김 여사뿐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사실 관계가 이와 같은 만큼, 정범들과의 관계 역시 방조 행위 판단에서 중요한 문제로 대두될 수밖에 없다. 검찰이 이 사건의 '주모자'로 기소한 권 회장과의 관계에서 특히 두 사람 간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김 여사는 <서울의소리> 이명수 기자와의 통화에서 "나랑 권오수 사장이라도 (알고) 지낸 지가 20년"이라며 "권오수 사장이랑 사업을 같이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여사가 권 회장이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던 회사 두창섬유로부터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장외거래(블록딜)로 대량매입했던 것이나, 도이치모터스 우회 상장 과정에서 유상증자에 참여한 사실 등은 김 여사의 발언을 뒷받침하는 사실 관계들이다.
이른바 이너써클(소수 핵심 권력 점유층)로 보이는 김 여사 경우와 달리 손씨는 공판 과정에서 권 회장과 친분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 사건 정범 중 한 사람인 2차 주포 김 아무개씨와의 친분 정도만 구체적으로 확인됐을 뿐이다.
검찰의 혐의군 연계도... 김 여사 이름 가장 많이 등장
이처럼 방조 행위 개연성과 관련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현격한 차이를 한 눈에 보여주는 '그림'도 있다. 검찰이 2022년 12월 제출한 사건 종합의견서 13페이지에 나오는 '도이치모터스 주식 시세조종 혐의군(群)' 연계도다.
검찰은 종합의견서를 통해 이 사건 피고인 9명을 크게 네 부류로 나눴다. 권 회장을 주모자로, 1자 주포 이씨와 2차 주포 김씨 그리고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먼트 대표 등 3명을 '본건 시세 조종 행위를 주도적으로 실행한 사람'으로 제시했다. 이들과 함께 범죄를 실행한 사람이 3명이었으며, 손씨는 다른 1명과 함께 '본건 시세조종행위에 가담한 사람'이었다.
이런 검찰 판단이 요약된 것이 바로 '혐의군 연계도'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사람이 바로 김 여사다. 그의 이름은 '권오수군', 그림에서 '수급팀(전문주가조직)'으로 서술된 '1차주포군', 그리고 '2차주포인 김○○군'에서 각각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재판부가 이 사건의 콘트롤타워로 명시했던 블랙펄인베스트가 김 여사 계좌를 직·간접적으로 운용했다고 판단했던 사실까지 감안하면 김 여사는 이 사건의 '주모자'는 물론 '이 사건을 주도적으로 실행한 사람' 3명과 모두 연계된 유일한 경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