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비공개로 진행된 이화영 전 경기도평화부지사 항소심 공판에서 국가정보원 블랙요원 김아무개씨가 증인으로 출석해 북한공작원 리호남이 2019년 7월 필리핀에서 열린 제2차 아태평화국제대회(이하 국제대회)에 있었을 가능성이 낮다고 증언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정원 블랙요원 김씨는 수십년간 북한 관련 일을 해온 베테랑으로,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이 터지기 전 핵심 인물인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을 관리해온 인물이다. 그는 국정원 압수수색을 통해 법정에 제출된, 2019년 2월 작성된 2급 비밀 문건 '○○96○○(안부수) 종결 계획'을 만든 주인공이다.
국제대회 당시 리호남의 필리핀 존재 가능성에 대해 법정에서 김씨가 부정적인 증언을 하면서 검찰의 공소사실은 더욱 흔들리게 됐다. 검찰은 김성태 전 회장의 진술에 근거해 쌍방울그룹이 경기도 측을 대신해 북한에 800만 달러(스마트팜 비용 500만, 이재명 지사 방북 비용 300만)를 줬다고 보고 있는데, 그중 70만 달러가 필리핀에서 김 회장이 리호남을 직접 만나 건넸다는 것이다.
지난 9월 5일 수원고법 형사1부(재판장 문주형 부장판사)에서 진행된 공판에 국정원 블랙요원 김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 재판은 증인의 신분을 고려해 비공개로 진행됐다. <오마이뉴스>는 이날 김씨의 증언 내용을 확보했다.
김씨는 북한공작원 리호남의 2019년 7월 2차 국제대회 기간 필리핀 존재 여부에 대해 "리호남이 돈을 받고자 하면 중국에서도 받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굳이 (필리핀에) 안 가도 된다"면서 "(리호남은) 필리핀에서 비자를 받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경험칙상으로는 가능성이 좀 떨어진다"라고 말했다.
재판장의 확인 질문에도 김씨는 "(리호남이 당시 필리핀에 부재했다고)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어찌 됐든 비자를 받고 자기 신원을 노출해야 하는데 그렇게까지 움직였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리호남은 업계에서 유명한 선수... 대북 사업가에게 당근 제시하며 돈 편취"
증인석에 선 국정원 블랙요원 김씨는 리호남에 대해 자신의 경험에 따른 여러 증언을 했다. 그는 "30년 차 국정원 직원의 경험칙으로써 말씀드리면 리호남은 예전부터 누군가의 방북을 주선하고 거기에서 중개료를 챙기고 했던 전적이 있다"면서 "리호남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리호남이) 남한 기업가들을 소개받아 지속적으로 돈을 편취했다"고 말했다.
이화영 측 변호인 : "2018년 11월 20일경 안부수가 방용철(전 쌍방울그룹 부회장)과 함께 중국으로 가서 방용철에게 리호남을 소개한 것을 시작으로 2018년 11월 29경 김성태, 방용철, 안부수가 함께 리호남을 만났고 그 후로도 쌍방울그룹은 리호남을 지속적으로 만났다. 증인은 (지난해 여름) 1심 증언 당시 이러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고 했는데, 과거의 사례에 비추어 보면 대남요원인 리호남이 남한의 기업가를 소개받아 지속적으로 만나는 경우 리호남은 남한의 기업가를 상대로 어떤 일을 했나?"
국정원 블랙요원 김씨 : "리호남은 이쪽 업계에서 사실 유명한 선수다. 남북 교류협력 후 시장에서 발굴 능력을 발휘하여 우리 쪽에서 방북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당근을 제시해 돈을 많이 편취했다는 정로도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또 리호남의 건강에 대해 김씨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면서도 "혈압인지 당뇨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성인병을 앓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리호남에게 약을 구해다 준 적도 있다면서 "북한 인사들은 약을 구하기 힘들어서 약을 많이 원한다. 한국 약을 좋아하는 것이 품질도 우수하고, 설명서가 한글로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북한 공작원 리호남은 영화 <공작>에서 배우 이성민씨가 연기한 리명운의 실제 모델이다. 본명은 리철로 알려졌다. 1953년생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출신으로 현재 만 71세의 노년이다. 국정원 등 정보당국은 리호남을 1990년대 초중반 '흑금성 사건' 때부터 주시해 왔다.
국회 법사위 하동혁씨 증언과 정확히 일치
김씨의 증언은 오랫동안 북측 핵심 인사들을 관찰하고 접촉했으며, 이 사건의 핵심 관련자인 안부수 회장을 관리했던 국정원 블랙요원의 발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지난 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있었던 통일운동가 하동혁씨의 증언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당시 박상용 검사 탄핵청문회에서 하씨는 국제대회에 리호남이 안왔다는 것을 자신이 북한 측 참석자인 송명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실장을 통해 확인했다면서 "필리핀에서 (김성태 회장이 리호남에게) 70만불을 줬다고 하는데, 리호남이 얼마나 능글맞은 사람인지 아는가. 리호남이 수교국도 아닌 필리핀까지 가서 70만 불을 어떻게 조달해 가나. 차라리 북경으로 오라고 하면 김성태도 안부수도 다 온다"라고 증언했다. 그는 "리호남이 부르면 한국 기업가들은 북경, 심양, 단동, 연길 등 군소리 안하고 다 간다"면서 "그 위험한 70만 불을 필리핀에서 리호남한테 준다고요? 리호남이 받는다고요? (필요하면) 중국에 가서 리호남을 만나서 (확인서를) 받아올 수 있다"라고도 했다. ( [관련기사]
청문회 증언 "리호남은 그때 필리핀 안왔다, 북측 송명철이 확인" https://omn.kr/2aes6 )
국정원 요원 김씨의 비공개 법정 증언(9월 5일)은 하씨의 이 국회 증언(10월 2일)이 있기 약 한 달 전이다.
한편 이 전 부지사 측은 하씨를 추가 증인으로 재판부에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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