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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5월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일본 신임 아키히토 국왕(소위 '천황')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는 1989년에 새로 즉위한 아키히토 현 국왕에게 과거 식민통치와 관련하여 "통석(痛惜)의 염(念)을 금할 수 없다"는 표현을 '받아냈다'.
▲ "통석의 염" 발언의 주인공인 아키히토 현 국왕. 
ⓒ 일본 궁내청 홈페이지
 
당시 한국정부는 처음에는 '통석'을 '사과'의 뜻으로 해석하였다. 그래서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외교적으로 큰 성과를 얻은 것처럼 대(對)국민 홍보를 했다. 그러나 불과 며칠 뒤에 상황은 냉랭해지고 말았다. '통석' 속에 사과나 사죄의 의미가 없는 것 같다는 회의론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에는 '통석'을 '유감' 정도로 해석하는 선에서 마무리 짓고 말았다.

'통석'이라는 표현에 대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 말이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전을 통해서는 이 말의 정확한 의미를 확인할 길이 없다. 그리고 통석이라는 표현을 제안한 주인공은 일본의 유명한 작가인 이노우에 야스시로 알려졌다. 당시 한국 측이 '통석'을 '유감'으로 해석하는 선에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그 의미를 유감이라고 해석할 만한 단서도 분명치 않다. 한국정부에서 그렇게 해석했을 뿐이다. 그리고 일본 측 역시 왜 자신들이 그러한 표현을 사용하였는지를 해명하지 않고 있다.

'통석'이 '유감'이라는 단서도 없어

만약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말을 정말로 '사과'나 '유감'의 뜻으로 사용한 것이라면, 일본 왕실이나 정부는 한국이 오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그 의미를 홍보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 내에서 그 의미를 놓고 논란을 벌이는 것을 보면서도 일본 왕실이나 정부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그러하다.

그리고 일본이라는 나라가 과거의 침략전쟁에 대해 취하는 태도를 놓고 볼 때에도, 일본이 통석이라는 말을 과연 '사과'나 '유감'의 뜻으로 사용하였을까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지금 일본 내에서 히로히토 국왕의 전쟁책임을 은폐하기 위해 A급 전범 14명에게 책임을 모두 전가하려는 움직임까지 생기고 있는 것을 볼 때에, 일본이 과연 자기들 국왕의 책임을 인정할 소지가 있는 표현을 사용하려 했을까?

용어 선택에서 일본은 타의 추종 불허

중국사 연구자인 필자가 동아시아 외교관계에 관한 공부를 하면서 느낀 것은, 일본 외교관들이 표현 하나하나에 매우 세밀한 주의를 기울인다는 점이다. 어느 나라 정부든지 표현 하나하나에 세심한 신경을 쓰는 것은 사실이지만, 특히 일본의 경우에는 그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04년 연말에 필자가 참석한 어느 식사 자리에서, 도쿄대 박사 출신의 일본사 학자 한 분도 "일본의 외교·의례에 관한 용어를 만드는 데 있어서 일본 학습원대학 학자들이 매우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며 "한국정부는 그 속에 함축된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럼, 일본측은 어떤 의도로 '통석'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일까? 그 용어를 사용한 아키히토 국왕이 스스로 그 의미를 설명해 줄 리는 없으므로, 우리는 동아시아 고전에서 그 표현이 어떤 뉘앙스를 갖고 있는가를 검토해 볼 수밖에 없다. 일본 측에서도 동아시아 고전의 용례를 확인한 뒤에 '통석'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을 것이므로, 고전을 뒤적이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일 것이다.

위나라 문제는 '안타깝다' 혹은 '애통하다'의 의미로 사용

동아시아 고전에서 '통석'이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중국 위진남북조시대의 <문선>(文選)이라는 책이다. <문선>은 양(梁)나라의 소명태자(昭明太子)가 엮은 시문집이다. 이 <문선>이라는 책에 위나라 문제 조비(曹丕)의 글인 '여오질서'(與吳質書)라는 서간문이 있다. 이 글에서 문제는 덕련(德璉)이라는 인물이 자신의 문학적 재능도 살리지 못한 채 일찍 사망한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미지불수 양가통석(美志不遂 良可痛惜)"

이 문장의 의미는 "아름다운 뜻을 못 이루었으니, 참으로 통석할 만하다"이다. 그럼, 여기서 '통석'이라는 단어 속에 과연 '자신의 잘못을 사과한다, 혹은 사죄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을까? 아니면 '유감'이란 의미라도 담겨 있을까?

문제 조비는 덕련이라는 인물에 대해 죄를 짓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가 사죄의 뜻으로 '통석'을 사용했을 리는 만무한 것이다. 그는 다만 덕련이라는 인물이 문학적 재능도 살리지 못한 채 일찍 죽은 것을 두고 '통석'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이 점을 본다면, 통석이라는 표현 속에 사과나 사죄 혹은 유감의 뜻이 담겨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어떤 뜻인가? 그것은 단지 '안타깝다' 혹은 '애통하다' 정도의 의미인 것이다. 훌륭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일찍 죽었다고 해서, 우리가 그에 대해 사죄의 마음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그저 '안타까운' 마음을 느낄 뿐이다. 만약 그 사람과 특별한 관계에 있었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애통한' 마음을 느낄 수 있을 수도 있다.

백제 아신왕은 '애통'의 의미로 사용

'통석'의 뉘앙스를 더 정확히 알려면, <삼국사기> '백제본기 제3' 아신왕 2년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야기의 배경은 이러하다. 백제 15대 왕인 침류왕이 서거하자, 어린 조카를 대신하여 침류왕의 동생인 제16대 진사왕이 등극하였다. 그런데 진사왕 8년(392년)에 고구려 광개토왕이 백제를 공격하여, 관미성을 포함한 10여 개의 성을 점거하였다. 관미성은 예성강 하류에 위치한 항구 지역으로서, 백제의 북방을 수비하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진사왕이 392년에 서거하자, 진사왕의 조카이며 침류왕의 장남인 제17대 아신왕이 등극하였다. 그는 즉위하자마자 관미성 탈환에 적극성을 보였다. 그때 아신왕이 신하에게 이러한 발언을 하였다.
 
▲ 본문에 인용된 <삼국사기> 아신왕 2년조. 
ⓒ 누리미디어 krpia 학술정보 DB
 
"관미성이라는 곳은 우리 북방의 요충지다. 지금은 (그것이) 고구려 소유가 되었다. 이는 과인이 통석해 하는 바이니, 경은 마땅히 경계하여 치욕을 설욕하라."

그림에 나오는 <삼국사기>의 네 번째 줄에서 '통석'이라는 표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통석'은 '사과'나 '유감'의 뜻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그저 '애통'의 의미로 사용되었을 뿐이다. 본래 백제 땅이었던 관미성이 지금은 고구려 수중에 있는 것을 두고 '통석'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식민지 조선 상실에 대한 애통의 뜻을 함축

그럼, 1990년에 '통석'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일본 왕실은 도대체 무엇이 안타깝고 애통하다는 것이었을까? 그 점을 이해하려면, 위 <문선>과 <삼국사기> 기사의 공통점을 파악하면 된다. 두 문헌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무언가를 상실했을 때'에 통석이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문학적 재능을 갖고 있던 덕련이라는 인물을 상실했을 때에 '통석'이 사용되었고, 본래 내 땅이었던 관미성을 잃은 것을 두고 또 '통석'이 사용되었다. 이러한 점들을 볼 때에, 동아시아 고전에서는 '무언가 내 것을 잃어버렸을 때'에 그에 대한 애통의 뜻으로 '통석'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왕실도 바로 이 점을 염두에 두고 그러한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자신들이 잃어버린 조선 식민지에 대한 애통의 뜻을 깊은 곳에 숨긴 채 '통석'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사과의 뜻이 아니었던 것이다. 상대방에게는 사과받는다는 인상을 주면서, 실제로는 조선을 빼앗긴 것에 대한 애통의 마음을 표현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일본의 신임 국왕 앞에서 사실상 조롱을 당한 것이다. 한국 측이 어떻게 해석하든 간에 일본 국왕은 '식민지 조선을 상실한 것에 대한 애통'의 뜻을 담아 '통석의 염'이라는 발언을 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은 일본에 가서 외교적 치욕을 당한 것이다. 치욕을 당하고도 치욕을 당한 줄을 몰랐으니, 그것은 국치 그 이상의 치욕인 것이다.

한국과 중국이 일본에 대해 끊임없이 과거사 사과를 요구해야 할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일본이 한 번도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한국 대통령 면전에서까지 '통석'이라는 의미심장한 표현으로 상대방을 조롱하였기 때문이다. 통석의 염. 그것은 한국에 대한 일본 왕실의 조롱을 표현하는 말일 뿐만 아니라, 한국정부가 대일외교에서 얼마나 사전 준비를 소홀히 하는지를 잘 보여 주는 말이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태그:#통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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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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