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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다른 할 일 없이 한 도시의 벤치에 앉아있는 중국 남성들.
ⓒ 모종혁

2020년 1월 어느 날, 중국 광시(廣西) 좡족자치주의 한 작은 소도시. 베트남과 인접한 이 도시의 런민광장에는 갖가지 플래카드에 붉은 두건을 동여맨 30, 40대 남성들로 가득 찼다.

"정부는 결혼 못한 우리들의 베트남 이주를 허용하라!"
"동남아시아 국가로의 자유로운 통행을 보장하라!"

분노에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은 공안 시위진압대를 바라보며 대치한 남성들. 그들은 한 달전 중국정부가 내린 20~40세 남성들의 동남아 전면통행 불허정책을 거센 구호로 연신 성토했다. "우리는 더 이상 혼자 늙어갈 수 없다. 내 반쪽을 찾아나서 결혼할 권리를 달라."

이 날 시위에 참가한 한 30대 후반의 남성은 "우리 마을에서는 처녀 구경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라며 "만약 정부가 정책을 바꾸지 않는다면 가문을 이어나기기 위해서라도 다른 청년들처럼 대도시의 여성을 납치하거나 어린 소녀라도 사서 데려올 수 없다"고 강경한 어조로 주장했다.


▲ 중국 대도시를 활보하는 젊은 여성들. 짝을 찾는 여성들의 눈높이가 높아져 남성들의 부담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 모종혁
2020년 짝을 못 찾는 남성이 3천여만명

지난 11일 중국 인구계획생육위원회는 <국가인구발전전략연구보고>(이하 '인구보고')를 발표했다. 이 인구보고는 2004년 2월부터 2006년 4월까지 300여명의 학자와 전문가로 구성된 연구팀에 의해 인구증가 추세, 인구와 경제사회·자원환경 상관관계 등 광범위한 세부 분야의 실증조사와 다각화된 분석을 토대로 작성됐다.

인구보고가 전망한 중국의 미래는 극히 암울하다. 인구보고는 "1973년 계획생육(計劃生育)을 처음 실시한 이래 출생률은 5.8%에서 1.8%로 떨어지는 성과를 냈다"면서 "계획생육정책은 4인 인구의 증가를 막음으로써 세계 인구폭발의 위험을 감소시켰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인구보고는 "현재 60세 이상 인구가 1억4300만명에 달해 총인구의 11%이고 2020년에는 2억3400만명을 넘어서는 급속한 노령화사회에 진입한다"며 "2020년에는 20~45세의 남성 숫자도 여성에 비해 3000여만명이나 많아지는 심각한 성비 불균형에 직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여아 100명당 남아의 출생비율은 1980년 107.4대 100에서 2005년에는 118.58대 100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라며 "일부 지방에서는 남녀 성비가 130대 100인 곳도 있어 사회불안 요소가 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 중국의 심각한 성비 불균형 현실과 미래를 과학적으로 논증한 <국가인구발전전략연구보고>.

▲ 2020년 짝을 못 찾은 중국 남성들에 의한 사회불안 가능성과 주변 아시아 국가로의 처녀 원정을 제기한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
"일부 지방엔 남녀 성비가 130 대 100인 곳도"

다음 날 12일 중국 관영 영자지 <차이나 데일리>는 "수천만명의 결혼 적령기 남성들이 배우자를 찾지 못해 심각한 사회불안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차이나 데일리>는 "산업화된 국가는 남녀간 출생성비가 보통 104~107대 100이지만 중국 광둥성, 하이난성 등 남부지방의 농촌은 무려 130대 100에 달한다"며 "베이징 같은 대도시도 남녀 성비는 109대100"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전통적인 남아선호사상에다 한가정 한자녀 정책에 따른 산아제한조치로 성비 불균형이 심화됐다"면서 "2020년 저소득이나 저학력 총각들이 배우자를 찾지 못해 사회문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작년 3월 발간된 미국 격월간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중국을 비롯 아시아 국가들에서 만연한 남초(男超) 현상으로 2020년이 되면 결혼 못한 남성들에 의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보도했다.

<포린 폴리시>는 "19세기 중국 북부에서 대기근으로 인한 여아 살해사건이 일어난 후 결혼 적령기의 여성이 부족한 나머지 산적이 되어 반란을 일으켰었다"면서 "짝을 찾지 못한 수천만명의 남성들로 인해 사회불안이 심화되고 심지어 인근 아시아 국가의 처녀를 싹쓸이 하면서 국가간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이라고 전망했다.

▲ 티 없이 밝은 한 농촌 초등학교의 어린이들. 이 아이들이 결혼 적령기가 되면 중국은 남초현상으로 심각한 사회불안에 직면한다.
ⓒ 모종혁
무분별한 여아 낙태가 성비 불균형을 초래

오늘날 중국이 이렇듯 심각한 남녀 성비 불균형에 직면한 데에는 남아선호사상과 산아제한조치에 따른 여아 낙태가 가장 큰 원인이다.

기자가 찾은 충칭시 한 병원의 산부인과 대기실. 이곳을 찾는 환자들의 대부분은 낙태 수술을 받기 위해 찾는 이들이다. 의사 샹위자오(여) 씨는 "수술 환자의 80% 이상이 낙태수술을 받으러 온 것"이라며 "젊은이들의 성개방 풍조와 남아선호사상 때문에 낙태 근절이 어렵다"고 말했다.

대기실에서 만난 한 임산부는 "다른 병원에서 초음파 성별 검사를 받고 사내아이라는 얘기를 들었다"며 "초음파 검사가 불법이라지만 병원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정기검진 때 성별을 알려주고 없더라도 200위안(약 2만4000원)만 주면 검사해준다"고 귀띔했다.

중국 정부 또한 이런 현실을 파악하여 인위적인 성감별 행위와 무분별한 낙태 시술 제동에 나섰다. 인구계획생육위원회 장웨이칭 주임은 "형법을 고쳐서라도 신생아의 성비 불균형을 야기하는 인위적인 요인들을 없애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정부들도 문제 해결을 위한 조치에 나섰다. 꾸이저우성이 임신 14주 이후 낙태를 금지하고 후난성은 성감별 검사시 벌금형에 처했으며, 충칭시도 태아 성감별과 낙태를 금지하고 위반자를 엄벌에 처하는 대책을 잇달아 내놓았다.

허난성 정부는 올해 1월부터 아예 처방전 없이 시중에 팔리는 낙태약을 판매 금지시켰다. 허난성은 이 조치를 위반할 경우 3천~2만위안(약 36만원~240만원)의 벌금을 처하고, 불법 낙태한 여성도 2천위안(약 24만원)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했다.

▲ 대도시 도심에 앉자 일거리를 기다리는 농민공. 적지않은 농촌 남성들이 결혼 자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몰려와 일을 한다.
ⓒ 모종혁
실효없는 대책... "2020년의 악몽이 현실로"

이에 대해 중국부녀연맹 여성학연구소 류보훙 부소장은 "중국사회에 늘어나는 여성에 대한 각종 차별이 성비 불균형을 심화시킨다"고 지적했다.

시난대학 리강 사회학 교수도 "기형적인 한가정 한자녀 정책과 뿌리깊은 남아선호사상에 대한 획기적인 개선책이 없이는 정부의 조처가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금도 중국에는 적지않은 미혼 남성들이 돈이 없어 혹은 신체조건이 안 좋아 짝을 못 찾고 있다. 여기에 소수 여성들이긴 하지만 얼나이(二奶) 등 부자들의 첩노릇을 하거나 매매혼을 통해 한국을 비롯한 외국으로 팔려나가고 있다.

결혼 못한 남성들의 욕구불만으로 인해 성범죄와 인신매매가 빈발하고 결혼 자금을 벌기 위해 농촌 젊은이들이 도시로 나서고 있지만, 중국정부는 뾰족한 대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2020년의 '악몽'이 바로 '현실'로 나타날 수 있는 음울한 조건들이 브레이크 없이 계속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태그:#성비불균형, #남초현상, #사회불안, #중국 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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