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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 참정치운동본부는 지난 1월 31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한나라당의 정체성과 대선전략`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한나라당에서 밥 짓기 논쟁이 한창이다. '흰밥'을 지을 건지 '보리밥'을 지을 건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보수노선(흰밥)을 강화할 건지, 중도노선(보리밥)으로 이동할 건지를 둘러싼 논쟁이다.

모습이 험하다. '친북좌파 2중대 의원'이란 비난과 '개 짖는 소리'라는 반박이 교차한다. 근신하라는 요구와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는 반발이 뒤엉킨다.

@BRI@눈살 찌푸리게 하는 구석이 없지 않지만 그 자체만 놓고 보면 발전적이다. 당 노선을 정립하기 위해 논의에 집중하는 모습을 탓할 수는 없다. 정말로 밥을 짓는 것이라면 뜸 들이는 과정에서 나오는 '삑' 소리는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다.

하지만 아니다. 죽도 밥도 아니다. 굳이 가르라면 죽에 가깝다. 이렇게 평하는 이유가 있다.

한나라당 내 소장파 모임인 '새정치 수요모임'이 존폐 위기에 처했다. 소속 의원들이 뿔뿔이 흩어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에 줄을 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원희룡·남경필 등 5명의 의원이 지난달 31일 만나 향후 진로를 논의했고, 오는 7일 존폐를 결정할 계획이다. 설령 존속을 결정한다고 해도 친목모임 형태로 유지할 것이라고 한다.

수요모임의 실상은 흰밥-보리밥 논쟁이 생산성 없는 말잔치라는 걸 웅변한다.

수요모임이 어떤 곳인가? 한나라당 내에서 중도개혁을 대변해온 집단이다. 보수 성향의 당내 주류를 견제하면서 당 노선의 우 편향을 제어해온 집단이다.

우 편향 제어한 수요모임의 해체 위기

이런 수요모임이 해체 위기에 처했다. 노선과는 무관하게 당선 가능성을 좇아 당내 양대 캠프로 자진해 흡수됐다.

이는 뭘 뜻하는가? 중도 노선의 지렛대가 없음을 뜻한다. 한나라당이 '보리밥'을 짓는다고 선언해도 구두선에 그칠 것임을 뜻한다. '보리밥'이 아니라 '보리죽'이 되기 십상이라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증좌가 하나 더 있다.

한나라당이 어제(1일) 경선관리기구를 구성하자마자 당 안에서 불평이 나온다. 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 측 인사들이 너무 많아 불공정하다고 한다. 한나라당 안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한 사람이 더 있는데 왜 두 사람에 경도된 위원을 다수 포진시켰느냐는 지적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경선관리기구는 공식적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한 사람들의 대리인을 한 명씩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 숫자가 네 명이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사람 중 고진화 의원의 대리인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고진화를 내친 경선관리기구

▲ 고진화 한나라당 의원.
ⓒ 오마이뉴스 이종호
고진화 의원은 한나라당의 색깔을 바꾸기 위해 출마를 결심했다는데 당 지도부는 귓등으로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배은망덕'으로 몰아간다. 전여옥 최고위원이 그랬다. "당에서 공천을 주고 의료보험료도 내주는데 다른 곳에 가서 놀고 어울린다면 당은 뭐냐"고 했다. 유석춘 참정치운동본부장의 "2중대" 비난과 맥이 같은 말이다.

이런 말엔 경계심이 깔려있다. '세작'에 대한 경계심이다. 당사자는 당내 민주주의와 다원성의 원리에 입각해 '당내 야당' 역할을 하겠다는데 당 지도부는 이를 용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행태를 당 혼란을 야기하는 이적행위로 간주한다. 그래서 주장뿐 아니라 존재 자체마저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중도노선의 근간은 개방성이다. '대동'을 확인한다면 '소이'는 접고 문을 활짝 여는 게 중도노선의 본령이자 실천강령이다. 하지만 한나라당 지도부는 그럴 생각도 준비도 없다.

흰밥-보리밥 논쟁은 무의미하다. 논쟁 기반이 없다. 중도노선을 외치는 이들이 소수파의 지위조차 잃어버리고 공중분해되고 있다. 그나마 끝까지 버텨보겠다는 사람에겐 싸늘한 시선과 함께 불이익 조치를 가한다.

그래서 밀린다. 가운데 자리가 아니라 왼쪽 변방으로 밀리고 있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고 있다.

경선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판정이 내려지고 있는 것이다.

태그:#한나라당, #노선, #왕따, #후보검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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