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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해외이주, 이민 박람회를 방문한 시민들이 박람회장을 가득 매우고 있다.
ⓒ 연합뉴스 최재구

세탁소 안에서 인터넷으로 보는 한국뉴스 속의 '조승희' 사건은 북미대륙에 이민을 와서 살아가는 우리 부부에게도 너무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마침 며칠 전 한국으로 '역유학'을 떠난 아들녀석이 대입검정시험을 잘 치루었다는 기쁜 소식에 한껏 고무돼 있었습니다. 그런 우리 부부에게, 같은 이민자 가정의 아이가 저지른 어마어마하게 큰 범죄 소식은 '우리가 왜 이민을 왔지?'하는 근원적인 물음을 다시금 묻게 하였습니다.

1.5세대의 '적응'이란 무엇일까요

우리 아이가 낯선 문화, 낯선 언어의 학교생활에서 '외톨이'로 지내다가 5년의 '감옥생활'을 더이상 할 수 없다고 한국으로 되돌아간 지 1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초등 6년을 마치고 온 아이가 제대로 적응을 못한 탓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되묻습니다. 그럼 이민생활에서 자녀들의 '적응'이란 무엇을 뜻하는지? 뉴스에서 나오는 조승희란 대학생은 국적은 한국국적의 미국 영주권자이지만 속알맹이는 이미 미국인화된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마침 부모도 저희 부부처럼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고 또한 성씨도 같은 '조'씨라서 참 낙심과 함께 속으로 '우째, 이런 일이…' 하는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뉴스를 보다가도 몇 번이고 놀라 아내와 저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민사회를 알고 이민생활을 알고 아이들이 마주치는 외국학교의 분위기도 아니까요.

캐나다와 미국의 차이는 있겠지만 같은 문화권이라 대동소이하리라 생각합니다.

'무엇이 문제일까?' 이민 7년차로 접어든 세탁장이의 머릿속은 복잡했습니다. 왜냐면 조승희란 아이가 살아온 이민생활이 저희와 너무도 흡사하여 어떤 전율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정체성 문제로 아들과 밀고 당기던 2년 동안 우리 부부는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때로는 주위에서 위로도 받고 싶었고 한국에서 다니던 성당을 떠올리고 여기서도 신앙생활로 위안받고 싶어서 교회도 기웃거렸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종교단체가 있지만, 이민사회의 폐쇄적 특성상 '가정사가 노출되면 나만 손해'라는 마음이 깔려있어서 그런지, 진솔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곳은 없었습니다. 저희 부부의 생각으로는요.

회사 관두고 신도시 아파트 팔아서 이민 왔지만

"물고기가 물밖으로 나오면 숨을 쉴 수 없다."

아들 녀석이 늘상 하는 말로 이민자 가정의 아이들이 학교에서 겪는 외로움을 다 표현할 수 있을까요.

지금도 아들은 전화로 '물고기' 운운 할 적이 많습니다. 비록 기약없는 재수생활이지만 한국으로 되돌아가서 한국어로 공부하니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들은 "영어를 공부의 한 과목으로 배우면 재미있고 자신이 있는데, 영어로 공부를 하는 것은 너무 힘들었다"고 말합니다. 물론 아들만의 변론이죠.

▲ 지난 2005년 달라스 한인타운의 모습(자료사진).
ⓒ 배우근
저도 다니던 국영기업을 관두고 신도시 아파트 팔고 이삿짐을 챙겨 이곳에 이민을 오면서 속으론 '아이들이 아직 어리니 잘 적응하겠지'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한 저는, "만 12세 이전에 이민을 가면 완전한 '네이티브 스피커' 즉 원어민이 될 수 있다"라는 언어학자의 주장을 철칙으로 알았습니다. 이민올 당시 큰아이가 12살, 작은애가 8살이었으니 가능성이 있었죠.

그러나 막상 이곳에 오니 우리 부부는 늘상 학교에 불려가 "아이의 수업 참여성이 결여된다"는 지적을 들어야 했습니다. 주변에서는 "오자마자 1년만 ESL(English as Second Language, 이민자를 돕는 영어프로그램)을 마쳤다"느니, "영어로 대화를 곧잘 한다"니 하며 자랑들이었는데 말이지요.

그런 날이면 큰아이가 불같은 아빠의 불호령에 세탁소 담벼락에 주저앉아 울곤 하던 것이 생각납니다.

한국어책 '분서갱유'... 아이들아, 아빠가 미안해

다시 '조승희'사건을 바라보는 세탁장이로 돌아갑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오마이뉴스> 분석기사에서도 났듯이 이민자 가정의 아이들, 즉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부모를 따라 이민을 온 아이들을 이민 1.5세대라고 합니다. 문제는 이 1.5세대에서 많이 발생하더군요. 두 분류로 나누더군요.

자신이 지녔던 문화, 특히 모국어를 고집하여 이 곳 생활에 적응이 되지 않는 부류와 잘 적응되어 기존의 문화, 특히 모국어를 잊고 영어가 제1언어(모국어)로 변하는 부류입니다.

더디게 적응하며 학교에서 완전한 '외톨이'로 단 한 마디 하지 않고 "목에 이상이 있다"는 지적까지 받은 고집불통 큰 아이는 전형적인 언어 부적응자였습니다.

한국어를 까먹어서는 안된다며 이민올 적에 사들고 온 동화책과 <삼국지> <수호지> 등 모든 한국책을 박스에 봉하는 '분서갱유'를 그 때 저질렀습니다. 모든 책을 영어로만 읽으라는 것이었죠.

아이들은 갈 곳이 없었습니다. '무식한' 아빠로 인해 책도 빼았겼습니다. 우리 부부는 종일 세탁소에 매달렸고, 아이들은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는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 밖에는 달리 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너무 애처로워 다시금 한국책을 읽게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잘못된 행동이었습니다. 지금도 아이들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한국어를 읽고 쓸 수 있는 것을 까먹지 않았다는 것이 바로 정체성과 연결된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부모는 한국어, 아이는 영어... 대화가 될까

큰아이는 초등학교 6년을 마치고 왔으니 까먹을래도 까먹을 수가 없지만 둘째 아이는 겨우 초등학교 2년(바로 '조승희'가 이민올 적의 나이입니다)을 마치고 왔으니 까먹을 수도 있었죠.

둘째 아이가 6학년쯤 되니까 영어와 한국어가 모호하게 섞이는 느낌이 들더군요. 바로 그때 큰아이가 한국으로 되돌아가는 일이 벌어졌고, 동생에게도 한국동화를 읽으라고 했습니다. 오빠의 말을 잘 들어준 둘째가 지금은 너무도 고맙습니다.

문제는 정체성의 위기인데, 그 정체성이라는 것이 바로 제1언어인 한국어에 달려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민자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뉴스에 나오는 '조승희'는 분명 한국말과 글을 까먹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와 심도있는 대화가 불가능합니다.

주위에서도 그런 예를 봅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서 부모는 대화를 시도하지만, 부모가 하는 한국말을 아이는 채 삭히질 못하고 아이의 영어식 사고를 1세대 부모는 잘 알아듣지 못합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그 아이는 학교에서 외톨이고 가정에서도 깊은 내면을 드러내지 못하죠. 이런 아이들은 또 한국말에 익숙한 조기유학 온 아이들과도 벽이 생깁니다.

세탁장이가 발견한 '조승희' 이민 가정의 비극은 이것이 이유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드림' 이루려는 이민자 가정, 조금만 더 관심을

▲ 지난 3월 뉴욕 이민자의 날 시위. 한인 청년학교 풍물패가 선두에 섰다.
ⓒ 하승창
오늘도 서울의 고시촌 방에서 다음주부터 시작하는 재수학원의 일정에 대하여 아들녀석과 통화를 했습니다.

"미국에서 일어난 사건을 보니 너가 이곳에서 고생한 5년이 생각나더라. 너도 얼마나 '외톨이'였니…."
"아빠, 그래도 전 5년이었지만 그사람은 15년을 혼자 보냈으니."
"그래도 너는 캐나다 시민권자이지만 속알맹이는 완전한 한국인이다."
"알고 있어요. 그 사람은 국적으로 한국인이지만 속알맹이는 '미국인'이죠."

아들 녀석과 나눈 대화로 어느듯 정체성 문제는 해결이 된 듯 싶어 우리 부부 어깨는 한결 가볍습니다.

이 두서없는 글이 게재될 지는 모르지만, 땀흘려 세탁업으로 그 흔한 '드림'을 이루려는 이민자 가정으로써, 이 사건을 보며 우리 가정에서도 일어날 수 있었다는 전율과 그래도 아이들과 치열하게 '한국말'로 싸웠던 그 과정이 떠올라 적어봅니다.

이제는 이민자 가정의 자녀, 조기유학온 한국학생, 그리고 이 곳에서 태어난 이민2세들 모두에게 조금 더 깊은 관심을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덧붙이는 글 | 캐나다에서 세탁업을 하는 이민자입니다. 아들은 '역유학'으로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태그:#버지니아텍, #총기난사, #이민1.5세대, #조승희,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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