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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인 5월 5일, 부산 패션 1번지인 중구 광복동에서 이색적인 축제가 열렸다. 17~19세기에 걸쳐 일본에 조선의 고유문화를 전하던 조선통신사 대장정이 재현된 것이다. 지난 2002년에 처음 개최된 이 축제는 당시 한국의 5개 도시와 일본의 2개 도시에서 총 23개의 이벤트로 열렸다. 이 축제는 연인원 40만명이 참여할 정도로 성대하면서도 웅장하게 개최되었는데, 가장 큰 목적은 한·일간의 우호증진을 위한 것이었다.

▲ 조선통신사 납시오
ⓒ 김대갑
조선통신사의 역사는 멀리 세종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막 출범한 조선과 일본의 아시카가 막부 정권은 중국을 정점으로 한 사대교린 외교 체제의 확립과 양국 간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서로 사절을 파견하였다. 이때 조선이 일본에 파견한 사절을 통신사라 했고, 일본이 조선에 파견한 사절을 일본국왕사라고 했다. 조선은 주로 정치·외교적인 목적이 강했고, 일본은 경제적인 목적이 강했다.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인 두 나라는 서로 필요에 의해 각국의 최고 통치권자를 대행한 사절을 파견했던 것이다.

▲ 자갈치로 놀러 오이소
ⓒ 김대갑
조선통신사의 규모는 웅장했다. 통상 정사·부사와 수행원으로 이루어졌는데, 많을 때는 400~500명의 대규모 인원이 파견되기도 했다. 조선 고유의 문화와 풍습을 간직한 통신사가 일본에 도착하여 대도시를 지날 때면 일본 전역은 엄청난 축제 열기에 휩싸였다고 한다. 그만큼 조선 통신사가 일본 열도에 끼친 문화적 충격은 엄청났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잠시 통신사의 파견이 끊어지기도 했지만, 일본 측의 끈질긴 화의 요청에 의해 선조 40년인 1607년부터 다시 재개되기도 했다. 국교를 재수립한 광해군 시절에 재개된 통신사 파견은 조선의 문화와 일본의 문화가 어우러진 거대한 이벤트였다. 일본인에게 있어서 조선통신사 행렬은 축제와 화합, 평화의 메시지였다. 통신사가 파견되는 해를 그들은 손꼽아 기다렸으며, 통신사 일행에 대한 대접 또한 극진했다.

▲ 거대한 용틀임
ⓒ 김대갑
이 거대한 이벤트가 수백 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문화와 영화의 도시 부산에서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다시 재현된 것이다. 1811년(순조 11년)에 마지막 통신사가 파견된 이후, 근 이 백 년 만에 부활한 조선 통신사 행렬은 한일관계를 우호와 협력의 관계로 만들어 놓을 것이다.

행사의 첫 출발지는 부산의 상징인 용두산 공원 광장이었다. 한국과 일본의 전통예술 공연을 시작으로 취타대가 개식 연주를 하면서 축제의 서막이 올랐다. 동래부사가 조선통신사 3사를 맞이하는 기념식이 공원에서 엄숙하게 거행되었다. 곧이어 동래부사와 통신사 정사를 선두로 한 각양각색의 퍼레이드단이 근대역사관에서 구 유나백화점을 거쳐 광복로 입구까지 행진을 벌였다.

▲ 물렀거라, 일주문 행차시다!
ⓒ 김대갑
근엄한 관리들의 가마가 먼저 지나간 후, 자갈치 아지매들이 해녀 차림으로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를 외치며 지나가는 모습에선 풋풋한 부산 사람의 향이 묻어났다. 그들의 뒤를 이어 붉은 제복의 군악대가 경쾌한 행진곡을 연주하며 절도 있게 지나가면서 행렬의 프롤로그가 광복로 입구에 물결처럼 울려 퍼졌다.

곧이어 부산 각 자치단체에서 파견된 문화 사절단이 각 구 고유의 문화를 알리며 연도의 시민들에게 웃음의 손짓을 보냈다. 구포 나루의 모습이 엿보이고, 범어사 일주문 모형이 트럭에 실린 채 스님들과 함께 등장하기도 했다. 다대포 후리소리와 기장 멸치잡이가 어린 학생들의 귀여운 몸짓으로 펼쳐졌다.

이번 행사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단연 일본의 각 도시에서 파견된 퍼레이드단이었다. 쓰시마시와 몇몇 현에서 파견된 문화예술단은 거대한 용을 선보이기도 했고, 수십 명의 남녀가 일본 고유의 의상을 입은 채 딱딱이를 흥겹게 연주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칼 두 개를 찬 사무라이가 등장하는가 하면, 중국풍의 의상을 입은 채 여러 가지 악기를 연주하는 무리들도 있었다.

문화와 정서는 사뭇 달랐지만 축제를 즐기는 모습은 대동소이했다. 언어가 필요 없는 몸짓과 악기 연주, 흥겨운 춤사위에서 21세기 한·일 관계의 역동적인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 행사의 피날레, 수백명의 전통연주단
ⓒ 김대갑
행사의 피날레는 수백 명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전통연주단이었다. 붉은 티에 소고와 북을 들고 뛰어오는 엄청난 무리들. 그들 위로 종이꽃이 눈처럼 하늘을 수놓고, 축제는 절정을 향하여 치닫고 있었다. 거대한 함성과 북소리, 시민들의 환호와 웃음소리. 모두의 마음속에 뿌듯하게 울려 퍼지는 정서적 만족감. 조선 통신사 행렬은 그 자체가 하나의 문화이자 감동이었다.

연도에 늘어선 관광객들에게 아름답고도 훌륭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조선 통신사 행렬이 앞으로도 수백 년 동안 부산 지역의 축제로 자리 잡기를 바랄 뿐이다.
첨부파일
kkim40_359939_1[1].wmv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조선통신사, #부산, #용두산공원, #취타대, #쓰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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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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