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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하류의 지리적 여건으로 어느 고장보다 풍요로운 김포는 5천년의 찬란한 역사 속에 최초의 쌀 재배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푸른 들판이 아파트 숲으로 변해 감에 따라 식생활이 서구화되고 입맛이 변하면서 우리의 토속 먹을거리가 점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음식 하나에도 지혜가 깃든 우리 조상들의 손맛을 살려 보고 싶었습니다.

토속 음식 연구를 하다 보니 우리가 무심히 짓밟고 지나가는 풀 한 포기에도 독특한 성분과 탁월한 효능이 있고 그것이 우리 몸에 아주 이롭게 작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나 요즘 같은 봄에 돋아나는 새순들은 보약 중의 보약이죠. 그런 것들을 찾아 우리 조상들이 하시던 대로 음식을 만들다 보면 우리 조상들의 지혜로움에 번번이 감탄을 하게 되지요. 앞으로도 더 많은 향토 음식을 연구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 향토 음식의 이로움을 알리고 싶어요."


▲ 김포시 향토음식연구회 문현자회장
ⓒ 김정혜
향토 음식 예찬에 열을 올리는 '김포시 향토 음식 연구회' 문현자 회장을 보고 있노라니 어릴 적 할머니 생각이 간절하다. 요즘 같은 봄이면 할머니는 바구니 하나 달랑 옆에 끼고 무시로 들로 나가셨다.

그런 날이면 저녁 밥상은 온통 봄나물 지천이었다. 나물인지 풀인지 도통 알 수 없는 그것들의 이름을 할머니께서는 일일이 일러주시며 그 나물들이 우리 몸에 얼마만큼 좋은가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주절거리셨다.

할머니는 커다란 양푼에 보글보글거리는 된장 한 숟가락, 고추장 한 숟가락 그리고 온갖 봄나물을 함께 섞어 비빔밥을 만드셨다. 그리곤 온 식구가 큰 양푼에 붙어 앉아 봄나물 비빔밥을 입이 미어지도록 퍼 넣었다. 그 포만감이라니.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 포만감이란 건 아마도 봄을 통째로 삼킨 듯한 그런 포만감은 아니었을까 싶다.

문현자 회장 역시 어릴 적 할머니나 또 어머니가 해주시던 그 맛나던 음식들이 더러 간절해지더라고 했다. 그것은 나이가 들면서 더했고 그런 간절함이 향토 음식 연구에까지 마음을 쓰게 만들었다고 한다. 나아가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에 요즘은 여기저기 강의까지 하느라 하루 24시간이 짧다고 한다.

향토 음식 연구에 빠져 산 세월이 10년을 훌쩍 넘긴 요즘에도 아직 할 일이 태산 같다는 문현자 회장. 요즘처럼 입맛 깔깔할 때 입맛 확 살릴 수 있는 향토 음식 몇 가지를 소개해 달라는 부탁에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한 음식 이름을 줄줄 꿴다. 그중 '소리쟁이 국'이라는 이름도 특이한 된장국이 요즘 같이 입맛 없을 봄철엔 최고라고 한다.

▲ 봄이면 들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리쟁이.
ⓒ 김정혜
'소리쟁이 국'의 재료는 물론 소리쟁이다. 습지 근처에서 자라는 소리쟁이는 녹색 바탕에 흔한 자주 빛이 돌며 줄기가 곧고 세로로 줄이 많으며 자랄수록 뿌리가 비대해진다. 뿌리 잎은 대가 길고 바소꼴 또는 긴 타원형에 가까우며 가장자리가 우글쭈글하다.

▲ 된장을 풀어 먼저 된장 국물을 우려 낸다.
ⓒ 김정혜
동의보감에 '패독채'라고 기록되어 있는 이 소리쟁이는 민간요법에 긴히 사용되는 약초이기도 하다. 열매는 잘 말렸다가 베개 속에 넣기도 하는데 이는 머리를 차게 해주는 효과 때문이다. 또 소리쟁이는 예부터 종기나 부스럼을 치료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소리쟁이 잎이나 뿌리를 짓찧어서 종기나 부스럼 난 상처 부위에 붙이면 신통하게 낫는다고 한다.

▲ 물에 깨끗이 씻어 물기를 뺀, 어린 소리쟁이 새순
ⓒ 김정혜
비타민 C가 아주 풍부한 소리쟁이. 예전엔 이른 봄이 되면 맨 먼저 소리쟁이 잎의 어린 새순을 채취하여 무치거나 국을 끓여 먹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소리쟁이 국'은 어떻게 끓일까. 여느 된장국과 다를 바 없지만 다만 한 가지, 소리쟁이를 데치지 않고 날것 그대로 넣고 끓여야만 시원한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한다.

▲ 잘 우러난 된장 국물에 날 것 그대로 소리쟁이를 넣고 끓인다.
ⓒ 김정혜
먼저, 된장을 물에 풀어 넣고 표고버섯, 다시마, 무를 함께 넣어 1시간 정도 푹 끓인다. 된장 국물이 구수하게 우러날 동안 어린 순의 소리쟁이를 깨끗이 씻어 소쿠리에 건져 물기를 뺀다. 그런 다음, 1시간 정도 끓인 된장 국물에서 버섯, 다시마, 무를 건져낸 다음 소리쟁이를 넣고 알맞게 끓인다. 한소끔 끓으면 파와 마늘을 넣어 다시 한 번 살짝 끓인 후 소금으로 간을 맞추면 된다.

▲ 칼칼한 소리쟁이국. 그저 '시원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 김정혜
맛은 어떨까. 한 마디로 말하면 '시원하다'는 말이 딱 제격이다. 소리쟁이의 어린 새순을 날것으로 넣어서 그런지 칼칼하기가 그지없다. 된장의 구수함과 소리쟁이의 칼칼한 맛이 잘 어우러진 '소리쟁이 국'. 깔깔해진 봄 입맛을 살리기엔 제격이라던 문현자 회장의 호언장담이 결코 허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 뼈 관절 모양처럼 생긴 옥매듭으로 지은 '옥매듭밥'
ⓒ 김정혜
이외에도 봄철에 먹으면 좋은 음식으로 '옥매듭 밥'과 '올방개 묵'이 있다. 생김새가 사람의 뼈 관절 모양처럼 생겼다 하여 옥매듭이라는 예쁜 이름이 붙여진 옥매듭. 이것을 함께 넣어 밥을 지은 것이 '옥매듭 밥'이다. 이 '옥매듭 밥'은 뼈 관절에 특히 좋아 연로하신 어르신들의 영양식으로 안성맞춤이라고 한다.

▲ 올방개묵과 고들빼기김치와 무말랭이 무침. 그리고 미나리 무침
ⓒ 김정혜
'올방개 묵'은 올방개를 갈아 묵으로 만든 음식이다. 올방개는 논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으로 예전엔 춘궁기 구황 식품으로 아주 좋은 먹을거리였다고 한다. '올방개 묵'은 뇌종양 예방과 숙취에 좋고 담백한 맛과 향기가 으뜸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문현자 회장이 말하는 향토 음식은 무궁무진하다. 그런데 그 모든 향토 음식의 재료가 그리 귀한 것도 아닌 그저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다. 요즘 같은 때, 들과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릇, 참죽나물, 씀바귀, 민들레 뭐 그런 것들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란 말도 있듯이 지천으로 널린 그것들을 허투루 보지 않고 끊임없이 연구하여 영양 풍부한 향토 음식으로 만드는 문현자 회장. 같은 주부 입장에서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바람이 있다면, 바쁜 현대인들을 위해 향토 음식을 이용하여 여러 가지 간편 요리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패스트푸드에 길들여진 우리 아이들이 향토 음식을 좀더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아이들 입맛에 맞춘 좋은 먹을거리들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능숙한 솜씨로 뚝딱 뚝딱 만들어낸 몇 가지 향토 음식으로 근사한 점심상을 차린 문현자 회장. 이것은 어디에 좋고 저것은 어디에 좋다며 하나도 남김없이 싹 먹어 치우라며 연신 채근해 댄다. 그 모습이 천생 예전 할머니 모습이다.

어린 손녀를 위해 하나라도 더 거둬 먹이려 애쓰시던 할머니의 마음이나,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향토 음식을 알려 그들로 하여금 좋은 먹을거리를 먹게 하려는 문현자 회장의 그 마음이나 오십보 백보이지 싶다. 향토 음식으로 오랜만에 맛나게 먹은 점심. 이 봄을 통째로 삼킨 듯한 예전 그 포만감에 봄날 하루가 참으로 행복하다.

산뜻한 제철 채소로 만든 봄 향토 음식

1)쑥개떡: 쑥개떡은 6·25피난 이후 60~70년대 식사대용으로 만들어 먹던 추억의 음식으로 향긋한 쑥 냄새와 쫀득쫀득한 맛이 뛰어나다. 쑥이 많이 나오는 봄철에 뜯어다가 데친 후 냉동실에 보관하면 사시사철 쑥개떡을 즐길 수 있다.

2)무릇조림: 무릇은 4~5월에 전국 산이나 들판의 풀밭 또는 둑과 같은 곳에 무리 지어 자생한다. 예로부터 피를 잘 돌게 하고 해독에 좋으며 부종을 내리고 통증을 멈추는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3)참죽나물부각: 참죽순을 가지런히 놓고 찹쌀 풀을 고루 바른 다음, 채반에 놓고 앞뒤를 뒤집어 가며 말린다. 먹을 때 석쇠에 굽거나 기름에 살짝 튀겨 설탕, 참깨를 뿌려 먹으면 더 맛있다.

4)나문재나물: 나문재는 바닷가 파도가 치는 곳이나 썰물 때에 드러나는 갯벌에서 잘 자랄 만큼 내염성이 강하고 생명력이 질긴 식물이다. 고혈압과 간 기능을 회복하는데 효과가 있다.

5)쪽파 장아찌: 봄에 쪽파의 알뿌리가 밤만큼 커지면 다듬어서 장아찌를 만들어 밑반찬으로 먹으면 입맛 돋우는데 최고다.

#문현자#ㅊ김포시 향토음식연구회#소리쟁이#옥매듭밥#올방개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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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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