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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이 장판에 장난감을 펴 놓고 놀고 있다.
ⓒ 조영님
나는 중국에서 1년 정도 잠시 머물다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이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살림을 늘리지 않기로 다짐을 했다. 내가 쓰던 물건을 마구 버리고 가는 것도 개운하지 않고, 그렇다고 누구에게 주기에도 미안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석 달 되었는데 벌써 기숙사가 비좁게 느껴질 정도로 이것저것 잡동사니를 마구 사들였다. 수저 각 한 벌, 접시 한 개, 컵 두 개, 도마, 과도만 달랑 있던 부엌에는 네댓 분이 와도 걱정 없을 만큼의 수저와 크고 작은 접시들, 각종 반찬통이 제법 많아졌다. 한국과 비교하여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부담 없이 사들인 아들 장난감도 상자로 넘쳐 났다.

이제 살림 장만은 그만하겠노라고 속으로 다짐을 하면서도 다른 것은 그만두고라도 장판만은 깔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접을 수가 없었다. 중국은 입식 생활을 하기 때문에 바닥에는 타일이나 카펫이 깔려 있다.

내가 사는 기숙사 역시 카펫이 깔려 있는데 여러 사람이 오래 사용한데다가 청소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눈에 보이지 않는 겹겹의 먼지와 얼룩으로 상당히 비위생적이고 불결하였다.

토요일 아침마다 진공청소기를 빌려서 청소를 하지만 진드기, 먼지 따위가 속 시원하게 청소되는 것 같지 않아 마음이 늘 찜찜했다. 더구나 아들의 코가 좋지 않아서 카펫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하여 고민이 많았다.

마침, 같은 건물에 사시는 두 분의 남자 선생님들께서 방에 장판을 깔았다는 말씀을 듣고 나도 깔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문제는 나 혼자서는 시내에 나가서 장판을 어떻게, 얼마나 사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또 장판을 사온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깔아야 하는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장판을 깔겠다는 내 바람을 진작부터 아신 두 분의 선생님들께서 기꺼이 시내까지 동행해서 500원을 달라고 하는 것을 450원에 깎아서 장판을 사 주셨다. 게다가 장판까지 깔아주는 수고를 마다지 않으셨다. 사실 두 분의 선생님은 모두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다. 그러니 감사할 뿐만 아니라 송구한 일이었다.

침대와 옷장을 다시 배치하고 장판을 깔았다. 그리고 남는 장판은 거실에도 깔았다. 물론 침대가 딸린 방과 거실에 모두 장판을 깐 것은 아니다. 장판이 비싸기 때문에 방과 거실의 일부에만 깔았다.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기숙사는, 잠시 동안만 거처할 곳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한국 집처럼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지 못했다. 침대에 눕기 전까지는 신발이든 슬리퍼든 꼭 신고 다녀야 하는 것도 불편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 장판을 새로 깔아 놓으니 가정집처럼 아늑하였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다닐 수 있다는 쾌감이 있었다. 기숙사에서 신발을 신고 있으면 '항시 대기 중'인 사람처럼 긴장하게 되곤 한다. 물론 낯선 중국에서 나를 수시로 불러댈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러고 보면 신발이란 존재는 사람을 구속하는 대표적인 장치이면서 상징으로 여겨진다. 신발을 벗고 좌식 생활을 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생활 형태가 사람을 얼마나 편안하게 해 주는지 새삼스럽게 느꼈다.

또 쪼그리고 앉아 장판에 물걸레질을 하는 기분도 아주 새로웠다. 한국에 있을 때는 귀찮고 힘들다는 이유로 스팀청소기로 방 청소를 하고 말았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쪼그리고 앉아 방을 닦고 났을 때의 다리에 느껴지는 뻐근함과 물걸레에 묻어나오는 먼지가 공연히 사람을 짜릿하게 만든다. 대단찮은 일이지만 몸을 놀려 뭔가를 했다는 원시적인 성취감 같은 것은 아닐까 싶다.

장판이 깔린 거실에 배를 깔고 벌러덩 드러누워 책을 볼 수도 있고,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명상도 할 수도 있으니 장판을 깔기를 백번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아들 녀석도 새로 깔아 놓은 장판에 신나게 팽이를 돌릴 수 있고, 장난감을 마음대로 펼쳐 놓고 놀 수 있게 되어서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한국의 좌식 생활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은 장판이 주는 안락함과 편안함을 모를 것 같다. 나도 한국에 있을 때에는 장판이 주는 고마움을 미처 몰랐으니 말이다.

태그:#중국, #기숙사, #카펫, #장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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