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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AIDS) 환자의 심정, 아시나요? 국내 최초로 에이즈 체험관이 생겼습니다. 국제구호개발기구인 월드비전(회장 박종삼)이 1일부터 사흘 간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에서 연 '대한민국 청소년 박람회'에서입니다. 

월드비전은 30평 규모의 체험관에서 에이즈에 걸린 소년 로모이(13·아프리카 말라위)의 일생 중 일부(2001년 12월∼2003년 5월)를 체험케 했습니다. 단체가 제공한 MP3 파일을 들으며 체험관 안으로 들어가면, 사진과 재연된 로모이의 집 등을 통해 로모이의 삶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시간은 약 30분 정도. 다음은 체험관 내용을 바탕으로 쓴 로모이의 가상 기사입니다. <편집자주>

"저벅, 저벅, 저벅."

누군가 다가옵니다. 마을의 한 아저씨가 "로모이, 나와 함께 병원에 가자, 아니길 바라지만 혹시 너도 부모님처럼 에이즈에 걸렸을지 모르니까…"라며 제 손을 끌어 병원으로 갑니다.

나쁜 일이 벌어질 것 같던 예감은 틀림이 없었습니다. 우리 가정의 '불청객' 에이즈는 13살인 저도 피해가지 않았습니다. 박지성 선수 같은 훌륭한 축구 선수가 되겠다는 꿈은 차츰 사라집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아프리카 남동부의 말라위에 사는 로모이입니다. 월드비전 덕분에 사진으로나마 한국 친구들을 만나게 되네요. 부모님을 잃고 갈 곳 없던 제가 서울 친구들을 사귀게 되다니, 믿기지 않는데요?

저는 여러분의 소년 시절 모습과 다름없는 13살 소년입니다. 축구를 좋아하고, 맨발로 친구들과 달리기 시합을 즐깁니다. 이곳이 풍족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었습니다.

13살 에이즈 환자 로모이의 삶

▲ 국제구호개발기구 월드비전(회장 박종삼)은 1일부터 사흘 동안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에 '에이즈 체험관'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아프리카 말라위의 소년 로모이의 삶을 통해 에이즈 환자가 겪는 고통 등을 체험할 수 있었다.
ⓒ 오마이뉴스 이민정
하지만 에이즈는 저의 모든 것을 앗아갔습니다. 에이즈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4살 때 아버지가 떠났습니다. 도시에서 일하던 아버지는 HIV(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에 감염됐고, 곧 이 몹쓸 병은 어머니에게 전염됐습니다. 그리고 이 병에 감염된 제가 태어났습니다.

죽음은 어머니를 비껴가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어머니는 온 몸이 상처투성이인 채로 돌아가셨습니다. 유언 한 마디 남기지 못하고 숨을 헐떡이며 떠났습니다. 저 혼자 이 세상에 남겨두고요. HIV와 함께.

HIV를 짊어지고 이 세상을 살기는 쉽지 않더군요.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시작됐습니다. 사람들의 시선 따위 뭐가 중요하냐고요? 생계가 문제겠죠.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에이즈에 걸린 아이가 왜 시장에 나오느냐", "너 때문에 장사가 안 된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구슬을 꿰어 하루 1달러씩 벌던 수입도 어느새 사라졌습니다.

어머니가 누워 계시는 동안, 물을 길어오고 나무를 해오던 집안 일도 제 몫이었습니다. 학교에 다니고, 친구들을 만나 떠들고 노는 13살짜리 일상과는 많이 다르죠. '모든 사람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다'는 말은 저 같은 아이들에게는 예외인가 봅니다.

에이즈보다 더 큰 고통, 편견

▲ 참가자들은 체험관에서 로모이의 집 등 일상생활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참가자들은 준비된 나무관에 누워 에이즈 환자들이 겪는 죽음의 고통을 느껴봤다.
ⓒ 오마이뉴스 이민정
하지만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죽음입니다.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관속에 들어가는 심정입니다. 제 곁에는 저를 꼭 안아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들리는 말로는, HIV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깨끗한 환경에서 제대로 치료받으면 바이러스 억제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완전한 치료약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HIV에 감염된다고 해서 다 죽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 사회도 AIDS에 대한 편견이 꽤 심하다고 들었습니다. HIV가 접촉을 통해 전염된다는 것이나 AIDS는 더러운 병이라는 것 등. HIV보다 환자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들이죠.

얼마 전 한국에서 주목받았던 TV 드라마에 저와 같은 처지의 어린 친구가 등장해 큰 감동을 줬다고 들었습니다. HIV에 감염된 친구가 텅 빈 교실에서 혼자 친구들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찡했는데, 그 친구의 외로움을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겨우 13살. HIV 감염의 고통, 부모님을 잃은 슬픔,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 등을 감당하기엔 전 너무 어립니다. AIDS에 대한 편견만이라도 깨주신다면, 어두운 일상에 희망이 보일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전 세계 어린이 중에서 1분에 한 명꼴로 HIV에 감염되고 있고, 1400만 아이들이 에이즈로 고아가 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지난 3월까지 4755명의 감염인 중 864명이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나라에 사는 사람 중 4천여명도 저처럼 말 못할 고통을 겪고 있다는 뜻입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다른 사람의 삶을 파괴할 권리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AIDS 체험관을 통해 30여분 동안 제 삶을 경험해보셨습니다. 정말 다행히도 이것은 체험일 뿐입니다. 체험관을 빠져나가면 여러분은 평안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어두운 현실에 맞닥뜨린 HIV 감염인들의 심정, 조금만 알아주시면 안 될까요?

ⓒ 오마이뉴스 이민정

태그:#에이즈, #월드비전, #체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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