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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이 만취한 상태로 인도에 누워 자고 있는 행인을 보고도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고 근처에 숨어있다가 이 행인을 부축하는 척하면서 지갑을 훔친 이른바 '부축빼기' 범인을 검거했더라도 기소 자체가 무효인 함정수사가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그러나 피해자에 대한 관계에선 경찰관의 이같은 조치는 대단히 부적절한 직무집행이라고 지적했다.

대법원 제3부(주심 안대희 대법관)는 5월31일 부축빼기 수법으로 술취한 행인을 턴 혐의(절도)로 구속기소된 정모(50·회사원)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위법한 함정수사여서 기소가 무효"라는 정씨의 상고를 기각,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정씨는 2006년 9월4일 새벽 1시25분경 서울 사당동의 지하철 2호선 사당역 인근의 까치공원앞 노상에 술에 취해 쓰러져 있는 노모씨를 부축하는 척하며 10m 가량 끌고간 후 노씨의 바지 오른쪽 뒷주머니에서 은행카드 등이 들어있는 지갑을 훔친 직후 인근에서 잠복중이던 경찰관들에 체포돼 구속기소됐다.

지하철경찰대 소속인 경찰관들은 당시 사당역 인근에서 만취한 취객을 상대로 한 이른바 부축빼기 수법의 범죄가 빈발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지하철 막차 근무를 마친 후 까치공원으로 갔다. 마침 그곳 공원 옆 인도에 만취상태로 누워있는 피해자 노씨를 발견했으나, 경찰관서에 보호하는 등의 보호조치를 취하는 대신 노씨로부터 10m 가량 떨어진 길 옆 모퉁이에 주차하고 차안에 잠복해 있다가 지갑을 훔친 정씨를 붙잡았다.

재판부는 먼저 판결문에서 "본래 범의를 가지지 아니한 자에 대하여 수사기관이 사술이나 계략 등을 써서 범의를 유발케 하여 범죄인을 검거하는 함정수사는 위법함을 면할 수 없고, 이러한 함정수사에 기한 공소제기는 그 절차가 법률의 규정에 위반하여 무효인 때에 해당한다 할 것이지만, 범의를 가진 자에 대하여 단순히 범행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에 불과한 경우에는 위법한 함정수사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나 "경찰관들이 노상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피해자의 상태를 이용해 범죄수사에 나아간 것은 지극히 부적절한 직무집행"이라며, "경찰의 직분을 도외시하여 범죄수사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라 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다만, "이같은 사유들은 어디까지나 피해자에 대한 관계에서 문제될 뿐으로서, 경찰관들의 행위는 단지 피해자 근처에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던 것에 불과하고, 피고인은 피해자를 발견하고 스스로 범의를 일으켜 범행에 나아간 것"이라며, "잘못된 수사방법에 관여한 경찰관에 대한 책임은 별론으로 하고, 스스로 범행을 결심하고 실행행위에 나아간 피고인에 대한 기소 자체가 위법하다고 볼 것은 아니다"고 판단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 전문 인터넷신문 리걸타임즈(www.legaltimes.co.kr)에도 실렸습니다.


#부축빼기#함정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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