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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드디어 완성된 제비집
ⓒ 박옥경
오월이 되자 제비 한 쌍이 처마 밑에 집을 짓기 시작하였습니다. 흙과 지푸라기를 물어다가 열심히 지었는데 반쯤 짓자 아무리 쌓아올려도 자꾸 허물어져서 마당으로 떨어져 버렸습니다.

며칠을 그렇게 반복하더니 안 되겠는지 다른 데로 날아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포기한 줄 알았습니다. 제비가 우리 집에 살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터라 내심 서운했습니다. 다른 곳으로 가더라도 잘 살기를 바랐습니다.

▲ 엄마, 아빠는 언제 오실까?
ⓒ 박옥경
그런데 어느 날 흙과 지푸라기를 물어다가 다시 공사를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미처 마르지 않았던 흙 위에 자꾸 덧쌓으니 무너져 내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 마르기를 며칠 기다려 다시 공사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 놀라운 사고력과 판단력에 감탄했습니다. 그렇게 한 쌍의 제비는 우리 집 식구가 되어 부지런히 날아갔다 날아오곤 하였습니다. 밤이면 다정하게 마주보고 앉아 잠을 잤습니다.

▲ 자, 입을 벌려요
ⓒ 박옥경
혹시 알을 낳지 않았나, 새끼가 내다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출근하기 전이나 퇴근하고 오면 매일 제비집을 먼저 쳐다보곤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보드랍고 긴 잿빛 솜털이 제비집 밖으로 삐죽이 나와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저게 분명히 새끼 같은데 싶어 쳐다보고 있는데 제비 한 마리가 집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주위에서 뱅뱅 돌았습니다. 그래서 멀찌감치 몸을 숨기고 보았더니 노란 주둥이를 벌리고 짹짹거리는 새끼들에게 먹이를 넣어주는 게 보였습니다.

▲ 날 따라해보라니까, 하나, 둘..
ⓒ 박옥경
두 마리인가 했는데 자그마치 네 마리나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보니 다섯 마리였습니다. 저 안에 몇 마리나 더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벌써 날갯짓을 하려는 듯 파닥거리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무슨 소리가 나면 입을 벌리고 소리를 지릅니다.

어떻게 저 작은 집에서 새끼들이 살아가고 있는지 신기하기만 합니다. 제비는 어떻게 처음부터 짝을 지어서 처마 밑에 신혼집을 지을 줄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견고한 건축술도 놀라울 따름입니다.

▲ 여기예요, 여기, ... 배부르니까 아, 졸리네
ⓒ 박옥경
번갈아가며 먹이를 물어다가 새끼를 돌보는 것 하며 적에게 노출될까봐 전전긍긍하는 것이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제비 한 마리는 내가 사진을 찍어도 내려다보고 태연하게 새끼에게 먹이를 줍니다.

그러나 한 마리는 조심성과 경계심이 강하여 주위를 빙빙 돌 뿐 경계하는 대상이 사라져야 비로소 새끼에게 먹이를 줍니다. 경계하는 대상이 그대로 있으면 먹이를 입 안에 문 채로 안절부절 못합니다. 누가 엄마이고 아빠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안절부절 못하는 게 엄마제비 아닐까 싶습니다.

▲ 이번엔 네가 먹을 차례구나. 골고루 먹이를 주는 것도 참 신기하다.
ⓒ 박옥경
제비가 불안해할까봐 조심하지만 마루 문 여는 소리, 똘똘이가 멍멍 짖는 소리, 대문 여닫는 소리, 참새 또는 비둘기 소리, 자동차 소리 등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밤이면 새끼들은 잘 줄 압니다. 제비 부부가 마주보고 자고 있는 그 둥지 안에서 새끼제비들도 곤히 자는 모양인지 정말 조용합니다.

신기하고 예쁜 제비들이 우리 식구들을 즐겁게 합니다. 놀랄까봐 밖에 불도 켜지 않고 빨래 널 때도 얼른 넙니다. 똘똘이더러 짖지 말라고 야단치기도 합니다. 그래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겠지만 우리 식구들이 제비 식구들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제비 가족도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 내가 바로 얼짱이지요
ⓒ 박옥경
한 녀석은 벌써부터 잘난 척 하는 것 같습니다. 유난히도 목을 늘이고 밖을 내다봅니다. 쪼그맣고 똥그란 눈이 얼마나 예쁜지 반할 정도입니다. 머리에 난 솜털은 또 어떻고요? 정말 만화에 나오는 새끼 제비같이 우스꽝스럽고도 귀엽습니다.

이제 보니 <아기공룡 둘리>에 나오는 '또치'를 닮은 것도 같습니다. 새끼제비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서 엄마 아빠와 함께 무사히 강남으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 달팽이의 담벽타기
ⓒ 박옥경
이밖에도 우리 집에 사는 식구들을 소개해 보면 달팽이, 지렁이, 수련, 양귀비, 섬초롱꽃 등등입니다. 비만 오면 달팽이가 수북이 나와서 마당에서 길을 잃어버립니다. 어떤 녀석들은 높은 담벼락을 잘도 타고 오릅니다.

처음에는 빨래 널다가 모르고 밟아서 정말 미안했습니다. 부서진 달팽이는 부서진 집과 함께 보드라운 살을 연신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생명을 앗은 다음에 모르고 그랬다고 해서 용서가 되는 게 아닌 줄 알지만,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에 그냥 텃밭에다 가만히 놓아두었습니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두고두고 미안했습니다.

▲ 수련, 은은하고 우아한 향기가 슬픔을 데리고 간다
ⓒ 박옥경
수련은 해가 나야 꽃을 활짝 피웁니다. 향기는 얼마나 은은한지 슬픈 일이 있다면 그 향기로 지울 수 있을 정도입니다. 양귀비는 또 얼마나 정열적으로 나를 유혹하는지 모릅니다. 그렇게도 가느다란 꽃대로 거센 바람을 견디며 꽃을 피워내는 것을 보면 정말 신기합니다.

견딘다는 것에 대해 요즘 많이 생각합니다. 슬픔을 견디고, 어려움을 견디고, 외로움과 고통을 견디고…. 뿐만 아니라 기쁨도 견디고, 사랑도 견디고, 행복도 견뎌야 하는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사랑은 견뎌야만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 양귀비의 꽃망울, 꽃은 정열과 유혹의 빛깔이다. 섬초롱꽃과 흰 금낭화
ⓒ 박옥경
여름이 되니 우리 집 식구들이 이렇게 많이 늘었습니다. 조금 있으면 감나무도, 대추나무도 새끼들을 주렁주렁 달고 자랑스러워하지 않을까 합니다.

태그:#제비집, #제비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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