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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서울역사박물관의 중국국보전에 온 유물 중 남북조시대의 유물에서 다수는 북조의 것이다. 이는 아무래도 전시 제목이 '유목문화와 합쳐지다'이기 때문이라는 점도 약간 작용하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남조는 박장, 즉 무덤 속에 껴묻거리를 많이 묻지 않는데 비해 북조는 후장, 즉 무덤 속에 껴묻거리를 많이 넣는 풍습이 있다는 점에서 북조에 남아 있는 유물이 많기 때문이리라.

이번 중국국보전 2관에서는 그러한 중국 북조시대의 빼어난 예술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유물들이 많다. 이 중에서도 흥미로우면서도 예술 가치가 뛰어난 유물을 몇 점 뽑아 보았다.

▲ 채색을 한 무당. 손에는 법기로 보이는 물건을 들고 있으며 긴 수염이 있다. 왠지모를 신비로움을 주는 샤먼의 모습이다.
ⓒ 서울역사박물관 도록 『中國국보전』, 2007
<채색을 한 무당(彩繪陶巫師俑)>도 도교적 유물로 보이거나, 혹은 샤먼(무당)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붉은색 옷을 입고, 닭 벼슬처럼 생긴 모자를 쓰고 있으며 긴 수염에 환한 웃음을 띠고 있는 게 인상적이다. 옷자락은 길며 왼손은 뻗어서 톱날처럼 생긴 붉은색 물건을 들고 있다. 왼발도 앞으로 향하였으며 오른발은 뒤로 뺀 모습이다. 보고 있으면 금세라도 움직일 듯이 역동적인 모습을 취하고 있다.

샤먼으로 보는 게 좀 더 옳지 않을까란 생각이 드는데 동위 시대 루루 공주의 묘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를 보아 왕실과 연계된 샤먼일 가능성도 있다. 루루공주의 명복을 빌어주기 위하여 이러한 도용을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 방패를 들고 있는 무사상. 얼굴을 보니 중국인보다 서역계통의 사람으로 보인다. 명광개라는 갑옷을 입고 있는데, 이 갑옷은 햇빛을 받으면 번쩍거려서 적에게 눈부시게 보인다고 한다.
ⓒ 서울역사박물관 도록 『中國국보전』, 2007
<방패를 들고 있는 무사상(彩繪持盾武士陶俑)>은 크기도 조금 클뿐더러 모습도 독특하다. 갑옷과 투구 그리고 방패로 보아 무사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본래는 오른손에 창을 들었을 것이라 추측되는데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무사의 얼굴을 보면 한족이 아니라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큰 코에 위로 올라간 수염, 부리부리하게 큰 눈을 보면 이국적인 면을 알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고구려 고분벽화나 신라의 고분벽화 그리고 신라의 석조물 등을 보면 서역인 역사(力士)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이 무사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무장은 명광개(明光鎧)라는 갑옷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 명광개란 호심이라는 게 있어 햇빛에 받아 번쩍거리는 갑옷으로 남북조시대부터 널리 유행했으며 우리나라 삼국시대에도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호심은 가슴팍에 있는 둥근 철판으로 거울처럼 빛을 반사한다. 왼손으론 방패를 아래에 두고 있는데 바닥에서 허리까지 올라오는 기다란 방패다.

방패에서 재미있는 점은 부조된 조각인데 가운데에는 도깨비 얼굴이 박혀 있으며 그 위에서 두 명의 무사가 무예를 연마하고 있다. 아래에는 짐승의 머리에 사람의 모습을 하고 뛰어가고 있는 형상이 있다. 방패에 도깨비나 귀신을 그려 놓는 것은 상대방을 겁먹게 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 동서양을 망라하고 널리 존재하였던 방식이다.

이 유물을 보면서 정말 부럽다는 생각을 많이 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일본의 토용이 전시되어 있다. 일명 하니와인데, 이러한 유물들을 보면 당시 일본의 무기와 갑옷 체계 등을 알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도 어쩔 수 없이 그러한 유물들을 보고 당시 병사의 모습을 복원하곤 한다. 중국이나 일본은 이러한 자료들이 여럿 있는데, 왜 한국에는 얼마 있지 않을까란 생각에 씁쓸하다. 우리도 이러한 자료들이 다량 출토되면 얼마나 좋을까?

▲ 소. 흙으로 빚은 소로서 살아있는 것처럼 생동감이 넘치는 모습이다.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며 수레를 끌던 소로 보인다. 이 도기는 남북조시대 조소 예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 서울역사박물관 도록 『中國국보전』, 2007
<소(陶牛)>라는 유물은 매우 멋진 유물이다. 하늘을 향해 두 뿔이 솟아있으며 머리를 살짝 위로 들었다. 튼실한 근육이 있는 다리는 사방에 뻗어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마치 이러한 모습들이 사실적으로 보인다. 이 소가 금방이라도 울부짖으며 걸어 나갈 듯이 보인다.

이 유물을 자세히 보면 소의 입에 고삐가 감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몸뚱이에는 장식용 술을 달아 놓았는데 농사를 짓는 소가 아닌, 수레를 끄는 용도의 소라고 본다. 고대시대에 소가 수레를 끄는 예는 매우 많았는데, 단적인 예로 1 전시관의 <우차와 시종행렬(陶牛車及侍從車隊)>이라는 유물에서도 소가 수레를 끌고 있으며 주위의 여러 도용들이 그 주위에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고구려 고분벽화 중 안악 3호분의 행렬도에서도 주인공의 수레를 소가 끌고 있다. 무용총 벽화에서도 수레를 끄는 소의 모습이 보이는데, 이러한 사례들을 보면 당시에는 소가 수레를 끌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유물은 남북조시대 조소 예술의 걸작이라고 한다. 위풍당당하고 사실성이 높은 점에서 훌륭한 유물로 꼽는다. 이 유물이 있었던 시대인 북제(北齊)는 비록 단명왕조였으나, 그 당시가 얼마나 활발하고 또 힘이 넘치는 시대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유물이라 본다.

▲ 용 손잡이에 닭 머리가 장식된 술병. 북조시대의 청자 중에서도 예술 가치가 빼어난 작품이다. 이와 비슷한 형태의 유물이 백제에서 출토된 바가 있다.
ⓒ 서울역사박물관 도록 『中國국보전』, 2007
<용 손잡이에 닭 머리가 장식된 술병(螭柄鷄首壺)>는 예술적 가치가 매우 높은 청자이다.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혔으며 닭의 머리가 살짝 나온 것이 인상적이다. 나름 위풍당당하려는 기세를 보이려 하나 그렇게 되지 않아 볼을 입으로 살짝 넣어 조금 토라진 모습 같이 보이며 은근히 귀여운 면이 있다.

닭의 머리 주위에는 꽃과 덩굴을 둘러놓음으로서 장식을 하였다. 그리고 그 아래에도 새 4마리가 둘레에 있다. 또 인상적인 것은 손잡이의 이무기인데, 술병 안을 보면서 군침을 흘리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유물을 계수호(鷄首壺)라고 부르는데, 이는 한국의 고대국가인 백제에서도 확인된다. 이는 백제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한 물품이 아닌, 중국의 남조에서 수입한 물품으로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흑유계수호는 동진시대의 것으로, 전체적인 모습이 비슷하며 좀 땅딸 맞은 게 특징이다.

이 유물이 출토된 곳은 산서성 태원시 루예묘라고 한다. 루예라고 하는 사람은 선비족 사람으로서 북제의 황제인 고환과 함께 거사를 일으켜 40년간 남북으로 전장을 누빈 북제의 개국공신이라고 한다.

이 루예묘는 훼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출토 유물이 810여점이나 된다고 하는데, 앞에서 본 <소>라는 유물도 여기에서 출토되었다고 한다. 박장의 풍습을 가진 남조와는 달리, 북조는 무덤에 호화스러운 유물들을 많이 부장하였다고 한다. 루예묘에는 채색벽화가 있는데, 당시의 호화로운 생활과 묘주의 기세가 드러나 있다고 하니, 당대 그의 영화를 잘 알 수 있다.

▲ 갑옷을 입은 기마 무사.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고 있으며 코트를 두르고 있다. 그리고 말에게도 갑옷을 입혔는데, 당시에는 이러한 모습을 한 기병들이 크게 활약하였다.
ⓒ 서울역사박물관 도록 『中國국보전』, 2007
<갑옷을 입은 기마 무사(甲騎具裝陶俑)>는 투박하게 만든 도용이다. 전체적으로 칠을 하였는데, 말과 병사 둘 다 갑옷을 입고 있으며 병사는 검은색 코트를 걸쳤다. 투구를 쓰고 있으며 한쪽을 멀리 응시하고 있는 듯 하다. 주먹을 쥐고 있는 오른손에는 구멍이 나 있어서 무기를 잡았었던 듯 하다. 말은 머리가 작고 발이 크게 되어 있어서 균형감은 떨어지지만 안정적인 모습이다.

이 병사가 입고 있는 갑옷은 찰갑(札甲)이다. 작은 철판들을 엮어서 만든 갑옷으로 활동을 원활하게 하는데, 서양에서는 스케일 아머(Scale Amor)라고 부른다. 주로 동양에서 많이 사용된 갑옷으로, 우리나라 고대시대에도 널리 유행한 갑옷이다.

이러한 유물도 당시 중국의 군사제도와 갑옷의 모습을 재현하는데 도움이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기마인물형 토기와 고구려 고분벽화를 보며 당시 군사의 모습을 복원하는데 상대적으로 이러한 자료가 많은 중국이 부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2관은 주로 생활모습을 엿볼 수 있는 도용이 많았다. 도용 외에도 여러 유물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유물들의 급은 정말 따지기 힘들 정도로 귀중하며 개중에서도 여러 유물들이 한국과 관련있다.

따로 다루지는 않았지만 <채색을 한 춤추는 여자 인물상>같은 경우 머리에 롱관이라는 것을 쓰고 있는데, 이는 부여 정림사지5층석탑 근처에서 출토된 도용에서도 보이는 모자다. 그밖에 진묘수나 서커스 그리고 병사들의 갑옷도 한국과 관련이 깊다. 이렇듯 우리 문화재를 알고 중국국보전의 유물을 감상한다면 얻게 되는 바가 크리라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5월 27일에 중국국보전을 갔다 온 후에 작성한 글입니다. 그리고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출판한 도록인 <中國국보전>을 참조하였음을 밝힙니다.


태그:#서울역사박물관, #중국국보전, #남북조, #무덤,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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