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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정국 타개책에 흔쾌히 동의하지 못하는 이유

요즘 이명박, 박근혜로 대표되는 수구정당의 집권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시는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이 참 안쓰럽기만 합니다.

마침 6·10 민주항쟁 기념일을 맞이하여 얼마나 걱정이 되시면 대통령의 직책으로 감당해야할 막중한 책무를 모두 내팽겨 둔 채 차기대선 후보들이나 언론 또는 시민단체들이 검증해도 될 야당후보 자질이나 공약검증에 혼신의 힘을 쏟아야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 것인지 안타깝기 그지없지만, 저는 "어떻게든 수구 세력의 집권을 저지하겠다"는 대통령의 진심을 믿고 싶고, 최근 작심하고 쏟아낸 대통령의 발언들이 대통령감으로서 이명박, 박근혜 두 후보의 자질이나 도덕성 문제를 국민들에게 환기시키는데 조금은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도 일견 가져봅니다.

하지만 제가 수구정당 집권저지를 위한 대통령의 지난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통령께서)쏟아 부은 열정에 비해서 성과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는 다소 야박한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효율성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민주세력 집권 10년을 맞이했지만 독재잔존 세력은 그동안 축적해온 막강한 기득권을 바탕으로 여전히 반민주 반개혁적 시도를 굴하지 않는 오늘날의 현실적 여건에서, 모든 전력에서 열세인 민주세력의 분열과 혼란을 가중시키는 게릴라식의 '한나라당 때리기'가 작은 전투에서 승리를 가져올지는 몰라도 대선이라는 큰 전쟁 자체의 승리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란 판단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자명합니다. 민주 혹은 개혁 세력에 동참한 인사의 면면이 아무리 훌륭한 인재들로 가득 찼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힘을 한 곳으로 결집하지 못하면 지난 60년간 견고하게 다져온 수구 독재 세력의 두터운 껍질을 깨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통령께서 주장하는 언론개혁의 당위성에 공감합니다. 마찬가지로 이명박, 박근혜 두 후보의 도덕성이나 자질 그리고 공약의 허구성 등에 대해 가지는 견해에 대해서도 공감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문제점에 공감한다고 해서 해법에도 동의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대통령이나 혹은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들께서는 "너 따위가 공감하지 않는 게 무슨 문제냐?"고 저를 내심 조롱할지도 모르지만 대통령과 대통령 주변의 인의 장벽들의 고착된 눈에는 보이지 않는 현실을 저는 보고 있습니다.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가 허구인 이유

먼저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에 대해 한 말씀드리겠습니다. 한미 FTA가 타결될 당시 바닥까지 곤두박질 쳤던 대통령 국정지지도는 급상승 하였습니다. 아마도 36% 정도를 기록한 것 같습니다. 그 이후에 조금 주춤하지만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는 열린우리당이나 범여권의 여타후보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범여권 후보의 지지도를 모두 합쳐야 10%를 겨우 넘는 상황에서 대통령 한 명의 지지율이 20%를 넘는다는 사실을 근거로 들어 '참평포'를 위시한 열혈 지지자들은 "노 대통령을 중심으로 뭉쳐야 이긴다"는 생각을 가진 듯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대단한 착각이란 것입니다. 현재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차기대통령 후보 노무현에 대한 지지가 아닙니다. 그냥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지지에 불과하지요. 사실 지지율이 정점에 올랐던 36%란 수치만 하더라도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지지율로서는 턱없이 낮은 수치에 불과합니다. 더구나 20%대를 맴돌고 있는 오늘날의 지지도는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부정적으로 보는 국민이 훨씬 많다는 의미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노사모 회원을 중심으로 한 확고한 지지층이 존재한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최근 시점에서 대통령에 대한 무한 지지세력이 결집하면 할수록, 굳이 비노 혹은 반노가 아니라도 개혁성향 지지자는 정치에 냉소적인 관망세로 돌아서고 있다는 것은 최근 대통령의 지나친 정치행위가 낳은 부작용입니다.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한 '선거법위반시비'가 대통령 지지자에게는 용기 있는 도전으로 비쳐지겠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이를 '법치 위에 군림하는 대통령의 오만'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은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시면 알 것입니다.

대통령께서 언론 개혁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를 지켜보는 다수 국민의 입장은 대통령과 지지자와는 전혀 다르게 문제를 받아들입니다. '언론 개혁'이란 본래의 취지에는 공감하더라도 "지금의 접근방법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 국민의 여론 입니다.

결국 최근 대통령께서 차기 대선에 깊숙이 개입하는 문제나, 언론과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대립하는 것처럼 비쳐지는 언론개혁 시도가 대통령 지지자들에게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겠지만 대다수 국민에게는 '기득권 다툼'으로 밖에 비쳐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권 주자들을 홀로 설 수 없게 하는 대통령의 판 흔들기

이명박, 박근혜 등 대선주자에 대한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는 더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전에 기고한 글을 통하여 저는 이 문제와 관련한 대통령의 언행을 '감독이 자기 팀 선수의 플레이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운동장에 난입하여 적을 공격하는 부적저한 처사'라고 지적한 바 있듯이 대통령께서 차기 대선에 이처럼 깊숙이 관여한 일은 우리 헌정사에 전례가 없는 일일 뿐 아니라, 성숙한 민주주의를 이룩한 어떤 사회의 민주화과정에서도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입니다.

차기 대선에 깊숙이 개입하려는 대통령의 행위가 정치인으로서 당연한 권리행사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런 대통령의 행동이 야당 후보에게 어느 정도 타격을 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민주 개혁세력에 대한 충정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까요?

대통령께서 주변 지지자의 '환호'에 힘입어 여전히 대선정국의 1선에서 맹활약을 벌이고 계신 반면, 범여권 진영의 후보자들은 갑자기 운동장에 난입한 대통령의 행동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이러한 대통령의 행동이 비록 야당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할지라도 이로 인해 민주개혁세력의 후보군은 스스로 설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혹시 아시는지요?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행동이 수구세력에 타격을 주는 순기능보다는 민주개혁 세력의 결집을 교란시키고 방해하는 보다 큰 역기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6·10 민주항쟁 당시 노태우씨가 건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던 6·29선언은 사실은 후계자의 입지를 편하게 하기 위한 전두환의 배려였다고 알려진 사실을 대통령께선 한번 곱씹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차기 대선은 6개월 후로 다가와 있고 대통령의 임기는 불과 8개월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이 정도면 대통령은 민주개혁 세력을 대표할 차기 주자들이 좀더 홀가분하게 야당대표와 경쟁하도록 하기 위한 배려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하지만 대통령께선 여전히 '자기 중심의 개혁'이란 끈을 차마 놓지 못하고 계십니다.

봉건 왕조시대에 왕과 세자 사이는 피를 나눈 부자간임에도 정국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양자 사이의 갈등과 애증이 늘 있어왔습니다. 그러니 하물며 피를 나눈 적이 전혀 없는 여권 대선 후보들이 대통령의 마음을 흡족하게 알아줄리 없습니다. 불행하게도 이것은 권력의 속성 입니다. 그러니 다소 섭섭하시더라도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이제 당신의 의자를 비워주십시오.

대통령님, 그리고 주변의 참모 여러분 정말 어려운 여건에서 고군분투하셨고, 정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들께 아래의 시를 바칩니다.

의 자(倚子)

- 조 병화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드리겠어요

먼 옛날 어느 분이
내게 물려주듯이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웁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넷한겨레,다음,더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노무현, #범여권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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