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15일, 정말 어렵게 시간을 내 무주 반딧불축제장을 찾았다. 전부터 꼭 한번 가보고는 싶었지만 이런저런 여건이 맞지 않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을 못 가봤던 행사여서 기대감으로 가슴조차 설레어 가며….

그런 기대감으로 무주를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결론부터 말해 나는 앞으로 두 번 다시는 반딧불축제를 보러 가지 않겠노라는 결심만 남기고 씁쓸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오고 말았다. 뭐 이런 축제가 다 있나 싶을 정도로 행사가 한 마디로 엉망진창이었기 때문이다.

무주 도착 직후까지만 해도 반딧불축제에 대한 인상은 비교적 괜찮았다. 축제 행사장 주변에 차량 통행을 막아 쾌적하게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라든가, 장사꾼들 대신 각 마을 주민들에게 간이천막 상점들을 나눠줘 음식점 등을 운영토록 함으로써 행사장 분위기가 난장판이 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한 것 등은 다른 축제장에선 거의 보기 어려운 신선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날 축제행사의 하이라이트 격인 섶다리 밟기 행사 부분에서 상식 이하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행사 프로그램에 따르면 오후 6시 30분부터 7시까지 30분 동안 꽃상여 행렬 등 전통복장을 갖춘 일단의 행렬들이 섶다리를 밟고 지나가는 행사가 열리기로 돼 있었는데, 무슨 일인지 시간이 돼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처음엔 ‘사람이 하는 일인데 좀 늦을 수도 있지 뭐’ 하는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다. 행사 시작 시각이 좀 지나면서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한 섶다리 밟기 공연 팀들의 면면이 전문 공연단이 아닌 이 지역 마을 어르신들임을 알게 되면서는 더 한층 그런 생각이 들었다. 농번기이고 하다 보니 농사일 좀 하다 보면 행사 시간에 좀 늦을 수도 있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너그러운 마음으로 10분, 20분, 30분을 기다렸다. 그러나 행사는 도통 시작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행사 주최 측에서는 이렇다 저렇다 행사가 늦어지는 이유에 대해 안내방송조차 한 번 하지 않았다. 그런 행사 주최 측 태도에 이제 곧 시작하니까 저러겠지 하고 나름대로 오해를 하고 기다려 봤는데, 그러다 보니 훌쩍 한 시간이 지나 버리고 말았다.

이때쯤엔 공연 준비 천막 쪽에 20~30명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게 섶다리 밟기 공연 팀도 다 모인 듯 보였는데 뭔가 좀 이상하다 싶었다. 그래서 참다 못해 행사 진행요원을 찾아가 왜 섶다리 밟기를 안 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행사 진행요원은 미안해 하며 “지금 무주에서 ASEM 재무차관 회의가 열리고 있는 중인데, 그분들 일정 때문에 9시 이후에나 섶다리 밟기를 하게 될 것 같다”고 저간의 사정을 설명해 줬다.

정말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평일이어서 이렇다 하게 볼 것도 없는 터라 그거 하나만 바라보며 몇 시간을 기다린 관광객들이 부지기수인데, 예정된 행사를 ASEM 재무차관들이라는 몇몇 사람들 때문에 무한정 연기하고 있었다니 말이다. ASEM 재무차관들에게 섶다리 밟기를 보여줘야 한다고 하더라도 30분 남짓한 공연 시간을 감안하면 예정대로 6시 30분에 공연을 한 번 하고 나서도 얼마든지 9시 공연을 할 수 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더군다나 안내방송 한 번조차 없었다는 건 정말 상식 이하의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 행사장 주변에 그 공연 한 번 보겠다고 둘러선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음에도, 공연 시작시각을 넘겨 한 시간 넘게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쯤은 ASEM 재무차관들의 중요성에 비춰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의 안하무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무주 반딧불축제를 보고 싶어 월차까지 내가며 시간을 냈다가 하루를 꼬박 허비한 채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무주 반딧불 축제는 ASEM 재무차관 이하 떨거지들은 구경할 자격조차 없는 행사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분노가 들끓었다. ASEM 재무차관쯤 위치에 오르기 전까지는 다시는 무주 반딧불축제를 찾지 말아야겠다는 굳은 결심과 함께….

태그:#무주 반딧불축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읽은 순간 입술가로 따뜻한 웃음이 배어나는 사는이야기류의 글을 좋아합니다. 주로 이런 따뜻한 웃음이 배어나는 글에 주력할 계획입니다. 시각을 조금만 바꾸면 좀 더 낫게 고칠 수 있는 일들이 세상에는 많이 있습니다. 이런 쪽에도 관심이 많구요, 능력이 닿는데까지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는 글들을 써보고 싶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