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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에 찰쌀을 넣어 찐 '쫑즈'다. 중국인들이 단오날에 먹는 음식 중 하나다.
ⓒ 조영님
"선생님! 이거 드세요."
"어, 그게 뭐예요?"
"오늘이 단오잖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단오절에 먹는 음식이에요."

그제서야 음력으로 5월 5일 단오날임을 알았다. 학생들이 내민 하얀 봉지에는 중국인들이 단오절에 먹는다는 '쫑즈'라는 음식이 다섯 개 들어 있었다. '쫑즈'는 댓잎이나 갈대잎에 찹쌀을 넣어 찐 음식이다. 주로 찹쌀에 대추를 넣지만 지방에 따라 돼지고기, 해산물 등이 들어간다고 한다.

댓잎으로 여러 겹 싼 것을 풀어보니 대추가 섞인 찰밥이 보인다. 댓잎의 그윽한 향과 대추의 달콤한 맛이 쫀득쫀득한 찰밥과 어우러져 맛이 괜찮았다. 여행갈 때 간식용으로 적당할 것 같았다.

중국인들이 단오절에 먹는 '쫑즈'는 전국시대 초(楚)나라 사람인 굴원(屈原)(기원전 340~278년)을 기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굴원은 초나라에서 삼려대부(三閭大夫)라는 벼슬을 지냈으며 초 회왕(懷王)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얻었으나 불행히도 참소를 받아 쫒겨나게 된다.

그 후 초 경양왕(頃襄王) 때에 다시 기용되었으나 역시 얼마 못 가서 유배를 가게 된다. 이때 '어부사(漁父辭)'라는 작품을 지어 자신의 억울함과 청렴함을 표현하였는데, 이것은 중국문학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시문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 '명문'이 되었다.

그 후 굴원은 멱라수라는 연못에 빠져 죽게 된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사람들은 굴원의 시신을 찾았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댓잎에 싼 찰밥을 물 속에 던져 고기들이 굴원의 시신을 뜯어먹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유래가 되어 지금도 중국인들은 단오날이 되면 해가 뜨기 전 이른 새벽에 다른 사람보다 먼저 강가에 가서 대통에 넣은 찰밥을 던진다. 그리고 그 물에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한다고 한다. 또 중국인들이 단오에 용주(龍舟)라는 경주를 하는데, 이것 역시 멱라수에 빠진 굴원을 찾기 위해 배를 띄었던 데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 연대시내에 있는 대형 할인마트인 '월마트'에서도 쫑즈를 판매하고 있다.
ⓒ 조영님
기왕에 단오절에 먹는 쫑즈를 맛보고 나니 쫑즈를 어디서 파는지 궁금하여 시내로 가보았다. 거리 여러 곳에서 대통에 찰밥을 넣은 '쫑즈'를 팔고 있었다. 또 지나가는 사람들의 손에는 '쑥'이 한 줌씩 들려 있었다. 사람들이 들고 간 쑥은 쑥떡의 재료로 쓰이는 쑥이 아니라 키가 큰 약쑥의 일종이다.

쑥은 '피사(避邪)' 즉, 악귀나 나쁜 것을 물리쳐 준다는 속설이 있어서 중국인들은 쑥을 대문 앞에 걸어두거나, 쑥을 옷 속에 넣어두기도 한다고 한다. 또 쑥과 같이 향기가 나는 약초를 넣은 향포(香包)를 몸에 지니고 다닌다고 한다.

시내에 있는 월마트에도 쫑즈를 판매하기 위해 대형 코너가 배치되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시식을 해 보고 한 봉지씩 사가지고 갔다. 금방 쪄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쫑즈도 있고 꽁꽁 얼린 냉동 쫑즈도 있었다. 나 역시 냉동실에 넣어두고 속이 출출할 때마다 꺼내서 간식으로 먹으려고 한 봉지를 사가지고 왔다.

우리나라에서도 옛날에는 단오가 큰 명절 중의 하나였다. 단오는 천중절(天中節)이라고도 부르는데 5월 5일이 천수(天數)에 맞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음력으로 5월 5일은 양수(陽數)가 두 번 겹친 길일(吉日) 중의 길일이다. 이날 사람들은 창포에 머리를 감거나 그네를 타며 유쾌하게 하루를 보냈다. 우리나라의 고전인 <춘향전>에도 단오에 그네를 뛰는 춘향이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이 날 쑥 잎을 따다가 찌고 멥쌀로 반죽하여 이것으로 수레바퀴 모양의 떡을 빚어 먹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것이 바로 단오에 먹는 '쑥떡' 혹은 '수리떡'이라는 것이다.

그 외에도 뱀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단오날 오시(午時 오전 11시~오후 1시)에 붉은 주사로 '다(茶)' 자를 써서 거꾸로 붙여두거나, 모기가 달라붙지 않도록 단오날 새벽에 집을 향해서 부채질을 하는 등의 풍속이 있었다고 한다.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 오른쪽에 있는 부채를 제외한 나머지 부채들은 재질이 비단으로 다소 비싼 편이다. 부채의 한쪽 면에는 악양루, 등왕각서, 난정서 등과 같은 명문이 써있다.
ⓒ 조영님
또 옛적 선비들은 단오가 지나고 나면 금세 여름 더위가 오기 때문에 더운 여름 시원하게 보내라는 의미로 '단오선(端午扇)'을 선물하기도 하였다. 단오선은 '절선(節扇)'이라고도 불린다. 단오날은 큰 명절이기 때문에 이날은 임금이 신하들에게 대대적으로 '부채'를 하사하거나 또 임금께 부채를 진상하기도 하였다.

단오에 부채를 선물하던 선비들의 풍취가 고상하다고 생각해 중국을 답사하면서 부채가 있으면 지나치지 않고 꼭 한 번쯤은 펼쳐 보곤 하였다. 부채 값은 2원에서부터 몇 십 원에 해당하는 것도 있다. 비단에 글과 그림이 들어간 부채는 장중한 멋은 있지만 다소 무게가 있어 부채질하기에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그래도 만만한 부채는 무겁지도 않고 비싸지도 않은 2원짜리 부채다. 거기에다가 이백이나 두보, 왕유와 같은 당송시대의 걸출한 시인들의 시가 멋들어지게 적혀 있으면 부채질하는 틈틈이 시를 감상하는 맛도 제법 근사하다.

이제 한국에서는 단오절의 의미도, 행사도 많이 퇴색해 잊히고 있지만, 중국에서 학생들이 가져다 준 쫑즈를 보니 단오(端午)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멱락수에 빠져 죽은 굴원이 읊은 '어부사'의 마지막 구절이 생각났다.

"창랑(滄浪)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을 것이요,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

나이가 들면서, 세상살이에 부닥치면서 굴원이 고민했던 탁영탁족(濯纓濯足)의 처세는 내 화두 중의 하나였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는 생각이 오늘따라 새삼스레 든다.

태그:#단오, #굴원, #쫑즈, #쑥, #찰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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