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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개교 10주년을 맞은 한국농업대학(아래 '한농대') 홈페이지에 최근 의미 있는 공지가 떴다. '한농대인 농산물 공동판매사업 설명회 초대'라는 제목의 글에서 눈길을 잡아 끈 대목은 "한농대인들이 출자하는 '수확 후 처리 및 판매 회사'를 설립하겠다"는 계획. '농민 사관학교'로 평가받는 한농대가 이제는 자체적인 유통망 구축에 나섰음을 선언한 것이다.

'나직한' 선언에서 힘이 느껴지는 것은 한농대가 우리 농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작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1628명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95% 이상이 영농에 정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졸업생 농가 가구당 평균 소득이 5990만원으로, 농가 평균 소득(3230만원)을 크게 웃돈다는 발표도 나왔다. 이른바 '농민사관학교'로서의 면모가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자체적인 유통망 구축에 대해 한농대 정명채 학장(5대)은 이렇게 의미부여를 했다.

"적지적작(適地適作, 알맞은 땅에 알맞은 작물을 심음) 원리를 내세우는 WTO나 FTA는 국제적 유통망을 갖고 있는 다국적기업들이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뒷받침하고 밀어붙이고 있다. 현재 유통 구조로는 우리 농업은 망할 수밖에 없다."

이어 정 학장은 "품목별 조직 대표들로 하여금, 세계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유통망을 개척하게 만들자는 것"이라며 "국내 유통망을 대표하는 농협과 손잡고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우리 졸업생들이 농산물 유통 시장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청사진을 밝혔다.

아울러 졸업생 농가 가구당 평균 소득이 높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정 학장은 "농지 기반이 있는 학생들이 많은데다가, 농사로 승부를 내겠다는 마음으로 확실한 목표를 세워 일을 하기 때문"이라며 우수한 농기계 센터를 통해 "농기계를 확실히 배워 나가고, 실습 위주 교육으로 현장에 강한 것도 이유"라고 덧붙였다.

또한 정 학장은 "임대 농사의 경우는 아무래도 소득이 적게 마련이고, 농지 구입을 하려고 해도 너무 비싸 여의치 않은 것이 현실"이라며 농지 기반이 없는 학생들을 위한 대책으로 "농지 은행 혜택 등 관계 기관과 대책을 협의 중에 있다"고 밝혔다.

끝으로 "우리나라 시장은 너무 좁기 때문에 세계 시장을 보고 생산하고, 중국과 일본 시장을 염두에 두면, 절대 망하지 않는다고 학생들에게 늘 강조한다"는 정 학장은 "중국과 일본이라는 거대 농산물 시장이 양쪽에 있는 만큼, 농업은 분명 효자 산업이 될 수 있다"고 우리 농업의 가능성을 강조했다.

최고 품질의 우리 인삼이 고전하는 이유는?

▲ 한국농업대학 정명채 학장
ⓒ 한국농업대학 제공
- 곧 취임 1년을 맞는다. 소회는?
"정신없이 바빴다. 학교 안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그러니까 예상보다 일이 많더라. 내가 욕심이 많은 편이다(웃음)."

- 욕심이 많다면?
"우리 학생들이 졸업하고 성공해야 할 것 아닌가. 돈을 벌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면 뭐하나. 팔려야지. 그래서 유통망 조직 작업을 시작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가 구축한 유통망이 어느 단계에 이르면 도와달라고, 농협을 설득하고 있다. 하나로마트에 우리 코너도 만들자. 나중에는 품목별로 조직 대표를 만들어서 개척하게 만들자. 세계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유통망을 만들어보자고 말이다."

- 핵심이 유통망이란 말인가.
"FTA 근거가 무엇인가? WTO다. WTO 기본 정신은 또 무엇인가. 농업에 관한한 적지적작 원리다. '적지 농산물이 비용이 적게 들고 품질도 좋고 생산량도 잘 나온다. 인삼 팔아서 필요한 것 사다 쓰면 되지, 왜 생산비 많이 드는 콩을 생산하느냐'는 거다. 각각 생산해서 돌려먹자는 것이다.

그럼 가장 이득을 보는 측이 어딘가. 무역업자다. 그래서 국제적 유통망을 갖고 있는 다국적기업들이 뒷받침하고 밀어붙이는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우리 농민이 생산하는 파프리카가 일본 진출 3년 만에 시장의 75%를 장악했다. 하지만 그럼 뭐하나. 수출을 돌(DOL)이 하고 있는데. 그들이 100% 쥐고 있다. 돌이 마음 바꾸면 우리 파프리카 한 개도 일본 시장에 못 나간다.

세계로 팔려나가는 우리 농산물이 50여종 된다. 그 중 30여종은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다 깨지고 있다. 농산물 전문 유통망이 없기 때문이다. 최고 품질을 자랑하는 우리 인삼이 세계에서 몇 % 차지하나. 10% 수준이다. 역시 중국이 세계 인삼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델몬트가 과일 다 쥐고 있다. 카길(Cargill)? 사료 곡물 완전히 쥐고 있다.

그들이 제일 많이 돈 벌지 않나. 왜 이권을 그들에게 주고 있나. 답답하다. 그러니까 FTA나 WTO 협상에 유통망이 안 들어가 있다. 다국적 기업과 미국이 이빨이 맞아서 해 먹는 형국이다. 그래서 인도는 정부가 나서 국제적인 유통망을 만들지 않았나. 우리도 정신 차려야 한다."

정명채 학장은 누구?
농업 행정 전문가로 한농대와 일찍 '인연'

정명채 학장(61, 건국대학교 환경자원경제학과 겸임교수)은 오랫동안 농업 행정가로 경험을 쌓은 인물이다. 1976년부터 농림부에서 일하기 시작해서 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원장을 거쳤고, 제16대 대통령 경제 2분과 인수위원, 청와대 농어촌대책팀 팀장 등을 역임했다.

이 같은 이력 덕분에 정 학장은 일찍부터 한국농업대학과 인연을 맺었다. 김영삼 정부 시절에 우루과이 협상 타결에 대한 후속 대책으로 만들어진 농어촌 발전위원회에서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던 중에 한국농업대학(전 한국농업전문학교) 설치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정 학장은 "정부가 지원하는 실습 위주 전문대학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에 4년제를 절대 반대했고, 교육부 산하로 두면 4년제로 바뀌리라는 판단 때문에 농림부 산하에 둬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했다"며 "처음에 농민사관학교라는 명칭을 고집했지만, 부처 협의 과정에서 국방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지금도 농민사관학교라는 이름이 훨씬 더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 이정환
- 국내 유통망을 어떻게 평가하나?
"지난 설에 우리 농산물 팔아주기 운동 벌였다. 많이 팔렸다. 헌데 강원도에 갔더니 황태를 판 사람들은 신이 났는데, 감자를 인터넷으로 판매한 몇 사람이 죽을 상을 하고 있는 거다. 왜냐. 주문은 무지하게 들어왔는데, 요즘 가족 숫자가 적으니 다 한 박스씩이야. 한 박스 가격이 만원인데, 택배비 때문에 팔리는 족족 손해 봤다는 거다. 농산물 가격에서 택배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보통 25%에서 30% 차지한다. 그럼 뭐가 남나? 이런 시스템으로는 우리 농업 망한다. 절대 성공 못한다."

- 농협을 파트너로 삼은 이유는?
"지금 당장은 농협만큼 유통망을 갖고 있는 곳이 없다. 일단 손잡을 수밖에 없다. 우리 졸업생들이 농산물 유통 시장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 농협에서 좋아하지 않겠다.
"아니다. 왜냐. 농사로 승부를 내겠다는 것이 우리 학생들이다. 정치꾼이 아니라 농사꾼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좋아할 것으로 본다."

- 졸업생 중 95%가 농촌에 정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이탈 원인은 어떻게 보고 있나.
"5%는 여학생이다. 졸업해서 결혼을 누구와 하느냐에 따라 이탈 요인이 생기니까. 도시 사람과 결혼해서 따라가는데 어떻게 하나. 방법이 없다. 농지 상속 문제도 있다. 갑자기 돌아가시면 상속법에 따라 농사를 짓지 않는 자녀에게도 땅이 분할되니까, 농사를 지으면서도 불안하게 된다. 그래서 기회가 생기면 농사랑 상관없는 일자리로 가는 경우가 발생한다."

- 얼마 전 졸업생 농가 1년 평균 소득이 559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보도됐다. 졸업생들의 '불안'이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개인 소득이 아니다. 농가 소득인 만큼, 아버지랑 같이 버는 것이다. 그래서 땅 문제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연결된다. 특히 아버지와 사이가 나쁜 경우는 더욱 그렇기 마련이다."

"중국 고급 농산물 수요층만 1억"

ⓒ 한국농업대학
- 농가 가구당 평균 소득(3230만원)의 두 배 수준이다. 비결은 어디에 있는가.
"졸업생들이 확실한 목표를 세워 일을 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머리를 쓰는 줄 아나. 강원도 양구에서 딸기 농사를 하는 친구가 있다. 우리나라 딸기가 한 여름에는 너무 무더워 잘 열리지 않는다. 여름 딸기가 그래서 귀하다. 여기에 착안했다. '시원한 지역에 적응시켜 하지 딸기를 생산하자'. 엄청나게 성공했다. 또 농지 기반 있는 학생들이 많다. 기반이 튼튼한데다가 승부를 내겠다고 머리를 쓰니까 소득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 그렇다면 농지 기반이 없는 경우는 어떤가.
"임대 농사를 짓게 마련인데, 그래도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 농기계 모르면 농사 잘 하기 어렵다. 그런데 우리 학교에서 농기계만큼은 확실하게 배워 나가니까. 그리고 실습 위주로 공부를 하기 때문에 현장에 강하다. 물론 농지가 걸림돌은 된다. 농지 기반이 없으면 아무래도 소득이 적다. 농지 구입도 쉽지 않다. 사려고 하면 너무 비싸다. 그래서 관계 기관과 농지 은행 혜택 등 대책을 협의 중에 있다."

- 그 밖의 어려움이 있다면?
"기숙사가 가장 큰 문제다. 우선 학생들이 고충을 겪는다. 또 우리 학생이 아무리 잘 났어도 결혼하지 못하면 힘들어지게 마련이다. 우리 학교로서는 농사짓는 사람끼리 커플로 맺어지는 것이 최고로 좋다. 교내 커플을 권장하는 편이다. 부부 학생도 있다. 하지만 그들을 위한 기숙사가 없다. 자러 갈 때는 헤어져야 한다. 이거 아주 비정한 일이다(웃음).

그리고 우리 학교에는 기가 막히게 좋은 농기계 센터가 있다. 다른 학교에서 농기계 교육시켜 달라는 의뢰가 많이 들어온다. 농민들도 교육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위탁교육을 하고 싶어도 재워 줄 곳이 없다. 전라도 사람이 와서 배우는데, 집에서 다니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여러 구상을 실행에 옮기는데 기숙사 문제가 걸리고 있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우리 학생들한테 늘 강조한다. 세계 시장을 보고 생산해라. 국내 시장만 보고 있으면 그 날로 망한다. 우리나라 시장은 너무 좁다. 중국 시장에, 일본 시장에 무엇이 팔릴까 보면 절대 망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중국 고급 농산물 수요층이 7%다. 1억 정도 되는 인구가 일본 농산물 사다 먹는다. 왜? 자국 농산물 품질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급 농산물을 만들어내면, 중국 고급 수요 시장, 다 우리 것이다. 게다가 일본 시장도 있다. 두고 봐라. 농업은 분명 효자산업이 될 것이다. 농사로 승부를 내고 싶다면, 우리 학교로 오라. 성공할 수 있다."

교육비 전액 지원, 병역 특례 추천 혜택
졸업 후 6년 간 의무적으로 영농 종사

한국농업대학(전 한국농업전문학교)은 소수 정예 농업인 양성을 목적으로 정부가 1997년에 설립된 3년제 특수 목적 대학이다. 2006년 9월 한국농업대학 설치법이 공포되면서, 2007년 3월 1일부터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특수 목적을 갖고 설립된 대학인만큼, 재학생에게 주어지는 혜택이 적지 않다. 입학금이나 수업료는 물론 기숙사비, 교재비, 실험실습비 등 교육에 필요한 비용이 전액 국고에서 지원된다. 단기 해외 연수가 재학생들에게 제공되고, 우수 학생의 경우는 장기 해외 연수도 받을 수 있다.

영농 정착 자금 지원이나 병역 특례 추천 역시 졸업생이 받을 수 있는 특전이다. 다만 이같은 혜택이 주어지는 대신, 졸업생은 6년 간 의무적으로 영농에 종사해야 한다.

기본 교육 기간은 3년이다. 1학년에는 농업 기초지식 등 공통 과목, 2학년 현장 실습 그리고 3학년에는 종합 응용 교육으로 작목별 전문 기술 및 창업 지도가 이뤄진다. 한국농업대학으로 변경되면서 전공심화 과정 추가된 '3+1' 학제로 개편됐고, 이에 따라 학사 학위를 받을 수 있는 기회도 만들어졌다.

학과는 교양공통학과, 식량작물학과, 특용작물학과, 채소학과, 과수학과, 화훼학과, 축산학과 등으로 나뉘어 있으며, 2007학년도 정시 모집에서는 4.54대 1을 기록한 축산학과가 가장 높은 경쟁률을 나타냈다. 평균 경쟁률은 3.45대 1을 기록했다.

2008학년도 모집 정원은 240명 정원에서 300명으로 확대 증원됐으며, 현재 수시 모집 원서를 접수받고 있다. 창구 접수는 7월 20일까지. 자세한 내용은 한국농업대학 홈페이지(http://www.kn.ac.kr)를 참조하면 된다. / 이정환

#농업#유통망#한국농업대학#정명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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