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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편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오르차의 서쪽에는 오래된 성들이 있었다.
ⓒ 조태용
기차는 레일과 레일 사이의 간격이 만드는 규칙적인 리듬을 자장가처럼 흘려 보내며 잔시로 행했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 미지의 곳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 있으니 <은하철도999>의 주인공 철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

<은하철도999>의 주인공 철이는 영원히 죽지 않는 기계 몸을 얻기 위해 기계제국으로 향한다. 힘겨운 여행을 마치고 마침내 기계제국에 도착하지만 감정이 없는 기계인간으로 영원히 사는 것보다는 슬픔과 기쁨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기계몸을 선택하지 않고 인간으로 남는다. 그래서 그는 다시 999호를 타고 고향 지구로 떠난다. 철이의 동반자인 메텔은 철이와 헤어지며 이렇게 말한다.

"안녕, 나는 너의 소년 시절의 꿈에 있는 청춘의 환영일 뿐이야…."

▲ 해가지자 서쪽 하늘을 파란 빛으로 빛났다. 파란 하늘 위로 반짝이는 별 하나가 떠올랐다. 샛별이다.
ⓒ 조태용
여행도 어쩌면 환영에 지나는지도 모른다. 내 이름을 버리고 여행자라는 익명의 이름으로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흘러 다니는 이방인이 되어가는 것. 그것이 아마 여행자가 아닐까?

객실 안이 갑자기 소란스러워 잠을 깬다. 아침이다. 기차는 데칸고원의 중부를 지나 북부로 향하고 있었다. 창 밖을 보니 메마른 대지만 펼쳐져 있던 중부와는 달리 북부로 올라갈수록 푸른 초목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기차는 역을 지날 때마다 물건을 파는 장사꾼들로 활기가 돌았다

역마다 조금씩 다른 물건을 판매했기 때문에 다음역에서는 무엇을 가지고 올라올까 하는 은근히 기대도 되었다. 상인들이 판매하는 물건은 오이와 오렌지, 바나나, 물과 아이스크림 그리고 음료수였다. 사모사라고 불리는 인도식 튀김 만두도 팔았다. 모두 비슷했지만 모두 다른 맛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기차는 잔시역에 30분 늦게 도착했다. 잔시는 서부와 동부 북부 남부를 그물처럼 잇는 철도교통의 요지였다. 우리 나라로 비교하면 천안과 비슷한 곳이다. 역 밖으로 나가자 오토릭샤들의 빵빵거리는 소리와 호객행위가 이어졌다.

어느 곳이나 삶은 치열한 경쟁터다. 그들의 한 사람의 고객이라도 태우기 위해 애를 태운다. 우리는 오토릭샤 꾼들 중 가장 가난해 보이는 사람과 흥정하여 150루피에 오르차까지 가기로 했다. 오토릭샤는 마른 대지의 국도와 한적한 시골길을 향해 달렸다. 자신이 소개할 숙소가 있다면 그는 우리를 샤리마한트라는 게스트하우스로 내려주었다.

▲ 일본인 고토씨는 15일간의 휴가를 얻어 델리와 아그라 오르차 카주라호를 지나 바라나시로 간다고 했다.
ⓒ 조태용
▲ 게스트 하우스 옥상에서 본 오르차의 야경
ⓒ 조태용
오르차 중심에서 조금 서쪽에 위치한 작은 게스트하우스였는데 맘에 들었다. 하루 숙박비는 200루피였다. 방으로 들어가자 마자 우리는 잠이 들었다. 기차여행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온 탓이다. 눈을 떠보니 어느새 늦은 오후가 되어 있었다. 방문을 열고 나가니 일본인 고토씨가 옥상에 가보자고 한다.

그는 일본 시즈오카에 산다고 했다. 시즈오카는 태평양 연한의 도시로 후지산이 있는 곳이다. 5년 전에 도쿄에서 오사까 가는 고속도로에서 잠시 후지산을 본 적이 있었는데 자동차를 멈춘 곳이 바로 시즈오까라고 했다.

고토씨는 15일간의 휴가를 얻어 델리와 아그라 오르차 카주라호를 지나 바라나시로 간다고 했다. 나는 그를 바라나시 겐지스강 메인 가트에서 다시 한 번 만났다. 여행자가 가는 곳은 거의 비슷하기에 돌고 돌아 다시 만난다.

그는 좀 있으면 옥상에서 멋진 경치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서편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오르차의 서쪽에는 오래된 성이 있었다. 성 주변에 작은 마을이 있었고 넓은 평원에는 간간히 키 큰 나무들이 보였다.

드디어 해가 지기 시작했다. 붉은 태양은 온갖 화려한 색채로 하늘을 물들였고 이내 땅도 붉은 빛으로 변했다. 강열 하면서도 온화한 빛이었다. 해가 넘어가자 서쪽 높은 하늘은 일순 파란 빛으로 빛났다. 붉은 빛이 여운을 남긴 하늘 위로 반짝이는 별 하나가 떠올랐다. 샛별이었다.

넓은 평야에 솟은 성과 성 위로 떠오른 샛별 그리고 파란색 배경이 만든 풍경은 선한 사람이 항상 행복한 동화처럼 평화로웠다. 샛별이 떠오르고 오래지 않아 이번에 보름달이 떠올랐다.

이 작은 게스트 하우스 옥상에서 일몰과 월출의 모든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마치 풍경의 종합세트처럼 황홀한 풍경이 이어졌다. 달이 떠오르자 동쪽 성이 신비에 가득 찬 미궁처럼 보였다.

달빛 속에 양탄자를 타고 하늘을 나는 신밧드가 지나가지 않을까? 하는 착각이 들었다. 고토씨는 미야쟈키하야오 감독의 <천공의 성 라퓨타>가 떠오른다고 했다. 아내는 풍경에 취해 말이 없었다.

▲ 해가지고 샛별이 떠오르고 다시 만월이 떠올랐다.
ⓒ 조태용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옥상을 떠나지 못했다. 달빛이 고요히 감싸는 오르차는 환상의 무대처럼 우리에게 다가왔다. 밤 바람이 조용히 불었으니 신원했다. 하나 둘 등이 꺼졌다. 마치 내가 살아왔던 모든 기억들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풍경 속에 빠져서 헤어나오기조차 어려웠다. 우리는 오랜만에 이국적인 풍경 속에서 여행자의 여유를 즐겼다.

"그동안은 너무 바삐 움직인것 같아? 그치…? 그래, 우리 천천히 다니자. 여행은 많이 보기 보다는 많이 느끼는 것이 중요하잖아. 그래 보기에 급급하면 느끼기 어려운 법이니까?"

아내는 피곤한 몸을 내 어깨를 기댔다. 진정으로 멋진 풍경은 삶의 자세까지도 바꿔 버리는 법일까? 오르차의 밤은 수도자의 침묵처럼 다가왔다.

덧붙이는 글 | 지난 봄 인도와 네팔을 여행한 기록입니다. 이 기사는 유기농 직거래 참거래농민장터(www.farmmate.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오르차, #잔시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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