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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리산 정상의 표지석
ⓒ 이승철
"이 산이 전국 100대 명산의 첫 번째 산이라고?"

강원도 홍천의 가리산을 찾은 날은 다행히 비가 내리지는 않았지만 날씨는 흐렸다. 양평과 홍천을 거쳐 인제로 가는 길은 시원하게 열려 있었다. 홍천을 지나 삼거리 철정 검문소를 지나 잠깐 달리자 도로 위에 가리산 휴양림 입구라는 커다란 안내판이 눈앞으로 다가온다.

좌회전 신호를 받아 다시 골짜기를 향하여 5분쯤 달렸을 때 휴양림 매표소가 나타났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골짜기를 향했다. 등산로는 몇 개가 있었지만 이 길이 가장 일반적인 등산로였다. 입구에서 내가 이 산이 전국 100대 명산의 첫 번째 산으로 기록된 산이라고 하자 일행 한 명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입구에서 바라본 산은 구름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전국의 유명한 산들에 비하면 별로 특별한 것이 없어 보였기 때문인 것 같았다.

"100대 명산의 이름이 높이 순이나 경치 순이 아니라 가나다순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야."

그때야 일행은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앞장을 선다.

7월 26일 오전 10시경, 가리산 골짜기 입구에 자리 잡은 몇 채의 통나무집들은 본격적으로 시작된 무더위에 휴양림을 찾아올 피서객들을 맞을 준비를 마치고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골짜기와 작은 통나무집 사이로 뚫린 도로도 말끔하게 정비되어 있었고 아주머니 두 명이 집안 청소라도 하려는지 열쇠꾸러미를 들고 예의 통나무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역시 습도가 높아서 금방 땀이 흐르는구먼."

아직은 경사도 급하지 않고 평탄한 길인데도 정말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등산로는 골짜기를 타고 가다가 무쇠말재와 가삽고갯길로 갈리는 개울가에서 오른쪽 길을 택했다.

▲ 낙엽송 숲길과 자연친화적인 의자
ⓒ 이승철
▲ 홍천고개 이정표
ⓒ 이승철
가삽고개 쪽으로 가다가 중간에 정상으로 곧장 오르는 가장 빠른 코스를 택하기로 한 것이다. 산길은 부드러운 흙길이었고 여전히 평탄했다. 길가에는 높은 습도 속에 피어오른 갖가지 버섯들이 저마다 모양과 빛깔을 자랑하고 있었다.

"어이! 이 버섯 좀 보게, 참 귀엽게 생기지 않았나?"

앞서가던 일행이 소나무 아래 멈춰 섰다. 그가 가리키는 곳에는 하얀 버섯 한 송이가 정말 귀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언뜻 송이버섯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송이버섯은 아니었다. 가까이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보았지만 별다른 냄새가 없었다. 송이버섯이라면 향긋한 냄새가 코를 찔렀을 것이다.

"이건 독버섯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러나 버섯을 잘 모르는 일행들은 버섯이라면 지레 겁을 먹는다. 손도 대지 말라는 것이다. 부근의 등산로에도 솟아오르는 버섯 한 송이가 보인다. 등산객들이 밟아서 단단해진 흙이 비를 맞아 물렁물렁해진 틈을 타 역시 버섯 한 송이가 힘겹게 고개를 쳐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산이 온통 버섯천지잖아?"

그러고 보니 버섯은 그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눈길이 미치는 곳에서만 해도 수십 개의 버섯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모양도 빛깔도 가지가지다. 어른 주먹만큼이나 큰 버섯이 있는가 하면 손톱만큼 작은 버섯들도 보인다.

우산처럼 넓적한 버섯도 보이고 꽃잎처럼 생긴 버섯도 보인다. 하얀색과 갈색의 버섯들이 많았지만 빨간색으로 곱게 치장한 버섯들도 보인다. 대부분 독버섯들일 것이다. 저렇게 예쁘고 고운 버섯들을 잘못 판단하여 먹기라도 하면 극독으로 생명을 잃기도 하는 독버섯들이었다.

자신 없는 버섯들에게서 관심을 거두고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날씨가 조금씩 좋아지는 기색이 보인다. 산속을 흐르던 안개구름도 조금씩 걷히고 있어서 시야는 맑아지고 있었지만 바람 한 점 불지 않아 축축한 무더움은 여전했다.

▲ 소나무 밑의 귀엽게 생긴 버섯
ⓒ 이승철
▲ 꽃 모양의 버섯
ⓒ 이승철
"여기 걸터앉아 잠깐 쉬어 가지. 이 통나무들 아주 잘해 놨구먼."

등산로에는 곳곳에 걸터앉아 쉴 수 있도록 잡목 통나무를 적당히 잘라서 다리처럼 걸쳐 놓은 것들이 이색적이다. 대개의 산들이 매끈하게 다듬어 페인트칠까지 해놓은 벤치들을 설치해 놓은 것보다 훨씬 자연친화적이어서 친근감을 더해주고 있었다.

과일과 간식을 들고 조금 더 올라가자 홍천고개다. 오른쪽으로 가면 가삽고개요 왼쪽으로 오르면 정상이었다. 정상까지는 900m, 여기서부터는 능선길이다. 길은 여전히 평탄하고 좋았다. 능선길이어서 하늘을 가린 숲 사이로 약한 실바람이 조금씩 불어와 흐르는 땀을 식혀준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고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지만 기분은 상쾌하기 짝이 없었다. 우거진 숲이 주는 싱그러움 때문이다. 능선 길을 걸어 잠깐 더 올라가자 드디어 눈앞에 거대한 바위봉우리가 나타났다.

"이 봉우리 위험하지 않을까? 바위에 물기가 많은 것 같은데."

그런데 바위봉우리 앞에서 두 명의 일행이 뒷걸음질을 친다.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위봉우리 아래로는 바위에 견고하게 고정시킨 알루미늄 파이프가 길게 연결되어 있어서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괜찮아. 이렇게 안전시설이 잘 되어 있으니까.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저 봉우리 너머로 내려가게 되는데 여기서 뒤돌아서면 중간에서 만나기도 어려울 거야."

결국 내가 그들을 설득했다. 나는 그들의 등산실력을 익히 알고 있었다. 이 정도 바위봉우리를 넘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 등산로의 이런 쉼터 어떠세요?
ⓒ 이승철
▲ 무쇠말재 등산로 풍경
ⓒ 이승철
그들도 곧 내 말을 받아들여 앞으로 나섰다. 정상인 제1봉으로 가기 위해서 2봉과 3봉은 꼭대기까지 오르지 않고 우회하는 길을 따랐다.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바위봉우리의 경사는 상당히 급하고 물에 젖어 있었지만 손으로 잡고 올라갈 수 있도록 알루미늄 파이프가 견고하게 잘 설치되어 있었다.

정상이 저만큼 보일 때쯤 앞쪽에서 사람들이 웅성웅성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정상에 올라서 보니 40∼50대로 보인 등산객 7∼8명이 먼저 올라와 있었다. 그들은 우리들과는 반대방향에서 올라온 사람들이었다.

"어! 거기 조심하세요. 나무에 커다란 뱀이 있어요."

정상은 공간이 그리 넓지 않았다. 먼저 오른 다른 등산객들이 정상 표지석을 중심으로 몰려서서 사진을 찍으려 하여 옆으로 비켜서자 그들 중 몇 사람이 우리들에게 뱀을 조심하라고 경고를 한다.

"뱀이라고?"

일행들이 깜짝 놀라 주변을 살핀다. 그러나 이런 산꼭대기에 뱀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농담인 줄 알았던 그들의 말이 사실이었다. 정상 한쪽에 서 있는 나뭇가지에 정말 상당히 커다란 뱀 한 마리가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 정말이네. 이 바위산 꼭대기에 이렇게 커다란 뱀이 웬일이지?"

뱀은 길이가 얼추 1m가 훨씬 넘어 보이는 커다란 놈이었다. 몸통도 제법 굵직한 모습이다. 그런데 이 뱀은 나뭇가지에 길게 얹혀있는 모습으로 이쪽저쪽으로 움직이며 주변을 살피고 있는 모습이었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지만 전혀 겁을 먹은 모습이 아니었다.

▲ 야생화 군락지
ⓒ 이승철
▲ 정상에서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1미터가 훨씬 넘는 커다란 뱀
ⓒ 이승철
"아니 아저씨들, 왜 저를 그렇게 자꾸 쳐다보세요? 제가 이 봉우리 지킴인데요, 뭐가 잘못 됐남요?"

커다란 뱀은 정말 주인행세라도 하는 모습이었다. 먼저 올라왔던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한참을 웅성거리다가 내려가고, 또 우리 일행들이 주변을 살펴보며 땀을 식혔지만 녀석은 전혀 피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아니, 이번에는 다람쥐야?"

나뭇가지의 뱀은 우리를 바라보며 느긋하게 주인행세를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작은 다람쥐 한 마리가 쪼르르 우리 근처에 나타났다. 그런데 이 녀석도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는 모습이다.

대개의 다람쥐들은 사람들을 무서워하여 마주치거나 만나면 잽싸게 달아나는 것이 보통인데 이 다람쥐는 달랐다. 녀석은 우리 주변을 맴돌며 슬금슬금 눈치를 살피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저 뱀은 저거 능구렁이 아니야? 역시 이 봉우리의 지킴이가 맞는 모양인데, 우리들이 먼저 내려가지."

다람쥐는 잠깐동안 우리들의 주변을 맴돌며 탐색을 마친 다음 사라졌다. 그러나 뱀은 나뭇가지에서 내려올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여전히 머리와 몸통의 반만 움직이며 주변을 살피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리산 정상은 해발 1051m로 우람하게 불쑥 솟은 방위봉우리다. 그 사이 하늘은 상당히 맑아져 있었다. 바로 앞의 가리산 2봉과 3봉도 바위의 모습이 웅장하다. 부근에서는 가리산이 가장 높아 줄기줄기 이어진 산줄기들이 짙푸른 색으로 선명하게 내려다보인다.

▲ 정상에서 바라본 2봉과 3봉
ⓒ 이승철
하산길은 무쇠말재 길을 택했다. 역시 바위 봉우리에서 내려오는 길이 상당히 가파르고 힘들었지만 견고하게 설치되어 있는 알루미늄 손잡이를 붙잡고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었다. 무쇠말재에서 잠깐 쉬는 동안 바라본 주변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흐드러져 무더위를 무릅쓰고 찾은 등산객들을 반겨주고 있었다.

산에서 내려와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잠깐 땀을 식힌 다음 다시 대로변 입구로 내려와 막국수로 먹은 점심 맛이 일품이었다. 가리산과 막국수, 그리고 감자전에 소주 한 잔으로 피로를 날려버린 일행들의 얼굴에 만족한 표정이 가득 넘쳐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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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가리산, #강원도 홍천, #구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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