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계속 비가 내리다 모처럼 비가 내리지 않던 지난 15일 광복절에 노점을 폈다. 맑은 날씨 만큼이나 강 대표는 장사가 잘 될거라는 기대에 부풀어서인지 얼굴에 웃음꽃이 만발하다.
ⓒ 송상호
강명자 대표(경기 안성시 죽산면 ‘은하수’ 이불가게, 노점상 운영)가 이불을 처음 배운 것은 28년 전 그러니까 소위 성인으로서 사회생활을 해야 할 초기부터 부산에서 재봉틀로 이불 누비는 것을 배운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이불을 집에서 만들어 쓰던 시대가 끝나고 손누비 이불이 도입되어 호황을 누리려던 초창기 시절부터 손누비 이불을 배우게 된 것. 한마디로 그녀가 성인이 되면서 한 번도 이불과의 인연을 놓지 않은 셈이다. 무엇이든 10년만 하면 도통한다는데 이 정도면 그녀의 이불 누비는 실력을 알 만하다.

하지만 여기에 이 시대의 아픔이 있다. 우리 시대에 진정한 장인이 없다는 것은 하루 이틀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들이 장인 정신을 이어받아 꾸준히 노력하지 않으려는 것보다 더 문제인 것은 옛 기술을 이어 받아 장인 정신으로 수공업을 하거나 전문 분야를 일구어 한 우물을 파는 사람은 밥 굶고 살기 딱 좋은 사회 풍토일 게다. 그럼에도 그녀는 오직 그길 만을 고집하고 있다. 결코 밥벌이가 잘되는 것도 아니고, 남들이 잘 알아주는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경영하던 손누비 이불 공장 문 닫은 후 거리로 나서

▲ 이불가게에 웬 주방기구 가게 간판일까. 그것은 광고보다는 실력으로 승부하겠다는 강대표의 의지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 송상호
그녀의 얄궂은 스토리는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녀는 5년 전만 해도 인천에서 공장을 경영하는 어엿한 사장이었다. 몇 명 안 되는 사람이지만 고용해서 이불을 만들게 하기도 하고 직접 만들기도 하여 백화점, 거래처 등에 납품까지 했다.

하지만 이불 업계 대기업들의 대량생산 체제와 중국, 베트남 등지의 싼 노동력으로 인한 저가 판매에 밀리고 거래처마저 수금이 안 되어 결국 사업이 휘청거리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재래시장이 대형마트에 밀려 제자리를 뺏기는 시대적인 불운의 폭풍을 맞은 것과 같은 신세가 된 것이며, 수공업 장인들이 현대 대량생산에 밀려난 꼴이 되고 만 것이다.

그래도 주저하지 않고 그녀는 과감하게 자신이 만든 이불을 들고 거리 노점상에 나서게 되었다. 수금도 안 되고 거래처 어음 부도가 심각해지자 일꾼들의 임금이라도 직접 챙겨주려고 창고에 쌓아둔 이불을 들고 직접 거리에 팔러 다닌 게 시작이 되어 팔자에도 없던 노점상까지 하게 된 것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온 것이다.

처음엔 무조건 부딪쳐보고자 하는 맘으로 경기, 충북, 충남, 강원, 경북 등 아주 많은 도시를 떠돌아 다녔다. 지금은 죽산에 조그만 점포 겸 작업장을 차려 만들어 팔고 차량 노점상을 통해 팔기도 한단다. 가히 여장군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화가는 붓으로 그리지만, 우리는 재봉틀로 그린다

“화가는 붓으로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지만, 우리는 재봉틀로 이불에다가 그림을 그립니다. 사람마다 필체가 다르듯 재봉틀로 손누비 해놓은 모양도 각각 사람마다 다릅니다. 아무리 비슷한 이불을 무더기로 한데 섞어 놓아도 제가 만든 이불은 단박에 찾아 낼 수 있죠.”

그랬다. 강 대표는 이불을 만들 때 결코 상품만을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는 게다. 자신의 작품을 만든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만드는 작가의 심정으로 이불을 만든다면 그 이불을 대충 만들 리는 만무하다. 거기에 쏟는 정성과 열의가 대단할 밖에. 강 대표는 꼭 그와 같은 심정이다.

그런데다가 한 수 더 뜬다. “내가 만든 이불을 덮고 사는 사람들이 행복해지게 해 주소서”라며 기도하는 맘으로 이불을 한 올 한 올 만든다니 두말해서 무엇 하랴. 어찌 그런 이불에 과장이나 허풍이나 거짓이 숨어 있으랴. 어쩌면 강 대표는 이불을 누비고 있지만, 사실은 이 시대에 나약해진 상도덕과 장인 정신을 누벼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나만의 생각일까.

▲ 이것은 강대표가 직접 손으로 누빈 이불들이다. 감촉이 부드럽고 아무리 빨아도 변형이 되지 않으며 좀체로 터지지도 않는 손누비 이불들이다.
ⓒ 송상호
1인 3역, ‘점포 운영, 이불 제작, 노점상 운영’

3년 전 현재의 죽산 가게(경기 안성시 죽산면)에 안착했다. 사실 죽산 가게라고만 표현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점포라고 해봐야 5평 남짓한 가게와 가게 한 쪽에 딸린 작업장이 다다. 작업장은 강 대표가 직접 다루는 재봉틀이 놓여 있으니 작업장이다. 또한 점포라면 간판을 생명으로 하는 요즘에 간판 하나 내걸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간판이라고 해봐야 아직도 전 가게 주인이 내건 싱크대 점포 간판이 내 걸려 있기 때문이다.

광고보다는 실력으로 인정받겠다는 마음인 게다. 알음알음 알아서 오게 하겠다는 마음인 게다. 얼마든지 실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마음인 게다. 한 번 사서 경험해 본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인한 확실한 상품 광고에 자신이 있다는 말이다. 또한 노점상으로도 뛰기 바쁘기에 간판을 내걸 새도 없었다는 몇 가지들이 아직도 간판이 내걸리지 않은 이유이다.

이불을 만들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불을 만들기만 했으면 좋겠어요. 만드는 게 너무 좋아요. 만들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죠. 만들고 나서 나의 작품을 보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고, 그 이불을 사람들이 인정해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의 천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판로가 없고 수완이 모자라서인지 판매하는 것에도 신경쓰다보니 이중고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렇다. 천직, 하늘이 자신에게 준 직업이라는 뜻이 아닌가. 자신의 천직이 무엇인지 알고, 자신의 천직으로 돈을 벌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 강 대표는 아직 천직으로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누구보다 일이 사랑스러운 행복한 사람인 것만은 분명한 듯싶다. 이런 그녀의 꿈은 조그맣지만 제대로 된 작업장에서 자신이 직접 만든 이불을 파는 게 소원이란다. 그러니까 굳이 노점상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라면 좋겠다는 것.

▲ 지금은 강대표가 조그만 가게 한 귀퉁이에서 재봉틀로 직접 손누비 이불을 누비고 있는 중이다. 28년된 실력이라 그런지 한눈에 봐도 재봉을 잘하는 게 보인다.
ⓒ 송상호
패션에도 복고풍이 일듯, 사람들이 ‘웰빙’을 찾고 농산물도 유기농을 찾듯 자신의 손누비 이불이 인정받아 잘 될 날이 올 거라고 희망을 잃지 않는다. 비록 한 때 했던 이불 공장이 문을 닫고 잠시나마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식당도 해보았고 요즘은 노점상도 하고 있는 형편이지만 희망은 결코 잃어버리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지난 15일 은하수 이불 가게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태그:#은하수 이불, #손누비 이불, #강명자, #혼수이불, #맞춤이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