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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십을 넘지 않은 나이에 노역에 도전한 김혜옥
ⓒ KBS
중견 여배우의 설 자리가 날로 위축되고 있는 가운데 눈에 띄는 연기자 한 명이 있다. 바로 김혜옥이다. 그녀는 중견연기자로서 누구누구 어머니의 역을 하기도 했지만 개성 강한 캐릭터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매번 만들어 내면서 서서히 대중 앞에 다가왔다.

김혜옥은 1980년 MBC 특채 탤런트로 연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 이후 <전원일기>에 줄곧 고정 출연하며 다른 외부 활동을 자제해왔다. 물론 간간이 드라마에 등장했지만 요즘처럼 채널을 돌리기만 하면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요즘 그녀의 전성기가 아닐까.

<전원일기>가 종영되자 서서히 여러 드라마에 모습을 비추더니, <올드 미스 다이어리>에 주책맞고 약간 치매가 있지만 마음만은 소녀인 할머니로 분해 시청자들로부터 눈도장을 찍었다. 사실상 오십이 넘지 않은 나이에 노역에 도전하는 일 자체는 분명 그녀에게 도전이었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몇 십년 먼저 늙고 싶은 생각이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노역에 도전했고, 귀여운 소녀 이미지를 덧칠해 <올드 미스 다이어리>의 인기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수행해 주었다. 그 이후 <원더풀 라이프>, <별난 여자 별난 남자>에 연이어 출연했고 영화 <가족의 탄생>에서도 사랑을 선택하는 어머니로 분해 색다른 연기를 펼쳤다. 이처럼 다작을 하다 보니 중복출연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김혜옥을 중복 출연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람직한 연기력을 가지셨군요!

그것은 김혜옥이 바람직한 연기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양파'같은 그녀의 연기력 덕분이다. 양파는 까도 까도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듯 그녀는 매번 다른 연기를 선보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연극을 하면서 쌓았던 연기력 덕분일지도 모른다. 더욱이 중년 여배우들이 대체적으로 한국의 어머니상을 보여주며 '누구누구 어머니'에 한정되어 몇 가지의 연기 패턴을 오가며 자신을 소모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김혜옥은 이들처럼 중복출연을 하면서도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은 다양한 연기 패턴 덕분이다.

물론 다른 중년 연기자들의 연기력은 나무랄 데가 없다. 중년 여배우의 다양한 캐릭터 부재로 인해 벌어지는 현상이기에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김혜옥은 다양한 드라마에서 한 번도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그녀는 다양한 연기를 선보이고 있지만 아무래도 주특기는 약간 허영과 푼수끼를 지닌 스타일의 캐릭터를 훌륭하게 소화해 내는 편이다. 그렇다면 가령, <올드 미스 다이어리>의 할머니와 <경성스캔들>의 사치코를 예로 들어 생각해 보자.

둘 다 약간 허영이 있고, 푼수끼가 있는 역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두 캐릭터가 비슷한 공통점을 지녔지만 김혜옥이 연기한 두 캐릭터는 모두 다르게 표현되어졌고, 비슷한 캐릭터일까, 하는 의아심이 들 정도로 달랐다.

▲ <경성스캔들>에서 도도한 사치코로 분해 인기를 끌었다.
ⓒ KBS
물론 각각의 캐릭터 나이 대와 시대극과 시트콤이라는 장르의 차이 등이 영향을 끼친 부분도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럼에도 비슷한 캐릭터를 다르게 소화해 내는 연기력을 선보였다는 점이 바로 김혜옥이 전성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래서 그녀가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해도 시청자들은 혼란스러워하지 않는다. 언제나 비슷한 캐릭터라도 새로운 특징을 포착해 새로운 캐릭터로 만들 줄 아는 연기력이 그녀가 연기하는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캐릭터를 선택하는 탁월한 안목

여기에 그녀가 선택하는 중년의 독특한 개성이 강한 캐릭터를 선택하는 안목이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다. 사실상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중년 여배우가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는 그다지 많지 않다.

특히 드라마가 젊은 층의 연기자들을 중심으로 극이 전개되고, 내용을 담고 있어 중년 여배우들이 전면에 주인공으로 나선다는 것은 아주 지극히 드문 일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중년 여배우들은 조연에 만족해야 하고, 주인공의 어머니 역할에 충실해야만 했다. 그마저도 왕년의 스타가 아니라면 캐스팅이 될 수도 없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이들이 두 세 개의 작품을 중복출연하다 보니 비슷한 캐릭터에 출연해 시청자들이 혼란스러워하게 되었다. 사실상 극명하게 다른 캐릭터라도 시청자들은 '어머니'라는 큰 타이틀 안에서 모든 것을 생각하기에 각각의 캐릭터를 구분 짓지 않는다.

그래서 중년 여배우의 연기가 그저 그렇고,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김혜옥은 누구누구의 어머니로 출연하지만 매번 성격이 판이한 캐릭터를 선택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사실 불과 몇 년 전 김해숙은 김혜자, 고두심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어머니상으로 떠올랐고 전성기를 맞이했지만 비슷한 캐릭터 연기를 고수한 탓에 지금은 주춤하고 있는 상황이며, 일용엄니에서 코믹의 여왕으로 변신한 김수미도 전성기를 맞이했지만 지속적으로 코믹한 연기만을 보여줘 한정된 연기를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김혜옥의 선택은 더욱더 빛을 발한다. 얼마 전 종영한 <경성스캔들>에서 사치코는 일본인이지만 예쁜 딸을 둔 어머니이자 아내였다. 그럼에도 그녀의 캐릭터가 주연만큼 빛을 본 것은 예민하면서도 도도한 공주의 모습이 사치코의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일본 귀족집안에서 태어나 곱게 자란 사치코는 남편을 '무능한 남자'라 치부해버리며 하인 다루듯 하며, 자신 위에는 아무도 없다는 듯 안하무인으로 경성 바닥을 누비고 다녔다. 그러면서도 도도함에는 허영과 푼수가 기본 바탕에 깔려 밉지 않은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그래서 오죽했으면 '무능한 남자'가 공전의 히트를 치고 "바람직한 기럭지를 가지셨군요", "귀여운 남자", "내 딸 한번 만나보겠어요?"란 말들이 유행어가 되었을 정도다. 그런데 종영되지 얼마 되지 않아 주말드라마 <며느리전성시대>에 출연했다. 역시나 누구누구의 어머니였지만 사치코와는 또 다른 어머니의 캐릭터였다.

<며느리 전성시대>에서는 족발집 하는 어머니(김을동)의 외동딸로 자라 출신에 대한 콤플렉스를 느낀다. 시장 족발집 딸에서 병원장 부인으로 신분 상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분 덕택에 며느리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아들(장현성)의 이혼으로 아들로부터 냉담한 반응을 받고, 무뚝뚝한 남편(윤주상)의 사랑에 목말라하는 캐릭터다.

▲ <며느리 전성시대>에서 중년의 쓸쓸함을 제대로 보여주는 김혜옥
ⓒ KBS
그러한 캐릭터를 김혜옥은 역시 중년 여성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절절하게 표현하고, 검은 마스카라가 번지도록 눈물을 흘리며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아들에게 오열하는 장면은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이것이 김혜옥이 가진 힘의 원천이다. 다양한 연기를 선보일 수 있는 연기력을 갖췄으며, 그 이전에 캐릭터를 선택하는 안목이 탁월한 덕분에 중복출연을 해도 시청자들은 그녀를 용서하게 된다.

이외에도 김혜옥이 그동안 대중에게 많이 노출되지 않았던 점도 호재가 되고 있다. 중년 여배우 대부분이 젊었을 때 일찍 스타가 되어 지속적으로 드라마에 안방마님 역할을 해왔다. 김창숙, 김자옥, 이효춘, 김영애, 한혜숙 등은 70년대 멜로의 여왕으로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지만 문제는 너무나 많은 시청자들로부터 노출되어 연기변신이 쉽지 않다.

이미 이미지가 굳어져 연기 스타일을 변화주기에 힘든 반명 김혜옥은 그동안 대중에게 덜 노출되어 연기 변신을 하기가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다양한 연기를 펼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매력과 장점을 따져 볼 때 한동안 김혜옥의 전성시대는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9월 3일 날 방송하는 <미우나 고우나>를 통해 다시 안방극장을 찾을 것이다. 그렇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바로 김혜옥의 카멜레온 같은 연기력이 있기 때문이다.

태그:#김혜옥, #연기자, #전원일기, #경성스캔들, #며느리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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