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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이 노무현 대통령 발언 물어볼텐데. 또 좀 적당히 피해갈까?"

 

그러나 이번에는 피해가지 않았다.

 

손학규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예비후보는 2일 여의도캠프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노 대통령이 손 후보를 향해 '가관이다'는 표현을 쓰며 공격한 것에 대해 할 말이 없느냐"는 질문에 잠시 뜸을 들이더니, "간단하게 한 말씀 드리겠다"며 강한 어조로 노 대통령을 비판했다.

 

앞서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한국프로듀서연합회 창립 20주년 기념식 축하연설에서 "요즘 정치를 봐라. 가관이다"며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 후보와 손 후보를 지지하는 범여권 의원들을 싸잡아 비난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3당 합당을 틀린 것이라고 비난하던 사람들이 그쪽에서 나와서 범여권으로 넘어온 사람한테 줄서서 부채질하느라 바쁘다"며 "YS는 건너가면 안 되고 그 사람은 건너와도 괜찮으냐"고 지적했다.

 

"남북정상회담으로 대선 도움? 노땡큐!"

 

이에 대해 손학규 후보는 "40일 동안 (노 대통령이) 조용해서 나라가 좀 편안해 지나했더니, 또 무슨 말씀을 하신다"며 "국민들 재미는 있을지 모르지만 국민들 불안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운을 뗐다.

 

그는 이어 "국민들은 대통령이 국정에만 전념해서 일자리 하나라도 더 만드는 데 골몰 해주 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제 대선은 후보들에게 맡겨 줬으면 한다"면서 "노 대통령은 대통합민주신당 당원도 아니지 않나, 열린우리당 문 닫게 한 장본인이 노 대통령 아니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손 후보는 이어 "노 대통령은 제발 대선 판에서 한 발 비껴서 계셔주십사 청을 하고 싶다"면서 "이명박 후보는 우리가 이기겠다. 이명박 후보에 대한 공격을 해도 우리가, 손학규가 하겠다"고 강조한 뒤, "노 대통령이 끼면 낄수록 이명박 후보는 올라가고 민주신당 후보들 표는 깎인다"고 꼬집었다.

 

특히 손 후보는 내달 열리는 2차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서도 노 대통령의 정략화 움직임을 우려했다. 손 후보는 "한나라당에 있을 때부터 줄곧 남북 정상회담에 찬성해왔다"며 "대통령 임기가 하루 남았더라도 한반도 평화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하라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손 후보는 "(노 대통령이) 만에 하나라도 이번 대선에 도움을 주겠다는 생각에서 남북정상회담을 하겠다면 그건 사양하겠다. 영어로 노땡큐((No, thank you)"라며 "대통령은 제발 대선과 관련해서 일체 발언을 삼가고, 대신 공장 찾아가서 일자리 하나라도 더 만드는데 도움을 주고, 논에 나가서 피 하나라도 뽑아주는 인자한 대통령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촉구했다.

 

손 후보는 분을 다 삭히지 못한 듯 기자간담회 말미에 "한 마디만 더 하겠다"고 발언을 자청하고 나섰다. 이번에는 우상호. 송영길 의원 등 손학규 캠프에 합류한 386 정치인들을 옹호하는 내용이었다.

 

"젊은 정치인, 미래를 보고 힘차게 개척해 나가는 정치인, 변화를 추구하고 진정한 혁신과 창조를 추구해 나가는 미래 일꾼들을 격려해주지 못할망정 단순히 자기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어긋난다고 폄하하는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지도자들을 발굴하고 키워나가는 데도 도움이 안 되는 발언이다. 정말로 대통령의 발언은 신중하고 품격을 갖추면 좋겠다."

 

"정통성 시비, 대선 포기하고 이삭 줍는 사람들"

 

손학규 후보는 타 후보들의 정통성 공세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그는 "정통성, 적통성을 따지는 사람들은 도무지 이번 대선에서 이기겠다는 생각이 있는지, 대선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이삭이나 줍고 부스러기나 챙기려는 사람들은 아닌지, 모르겠다"며 "대선에 분명히 이기겠다고 하는 진지한 마음과 순수한 마음, 열정이 있다면 이런 시비로 날밤을 지새선 안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그동안 정통성 시비를 '일등주자 때려잡기' 정도로 치부하고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왔다"며 "그러나 정치의 금도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기본적인 예의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손 후보는 정윤재 전 청와대비서관의 세무조사 무마 청탁 의혹에 대해서도 "소위 청와대 386 이런 분들이 좀더 처신을 사려 깊게 해서 국민들에게 좌절과 실망감을 주지 않아야 한다"며 "과거식의 정경유착이나 부패구조에 우리가 잘못 빠져들어가선 안된다는 반성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치범 전 환경부장관의 이해찬 후보 캠프 합류에 대해서도 "그 자체를 나무랄 것은 아니다"면서도 "배밭을 지나갈 때 갓끈을 고쳐 매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청와대의 대선 개입이라는 불필요한 의혹이나 의구심을 주지 않았으면 하는 안타까움 있다"고 지적했다.

 

"대선 승리로 마음의 빚 갚겠다"

 

노무현 대통령은 손학규 후보가 한나라당을 탈당해 범여권에 합류할 당시, "보따리 정치는 성공하지 못한다"는 등의 표현을 써가며 손 후보를 비판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손 후보는 노 대통령의 공격에 대해 정면 대응을 피했다.

 

지난 27일 대선 예비후보 인터넷토론회에서도 타 후보들로부터 "한나라당에서 3등한 후보를 꿔다 함께 토론하고 있는 것에 자괴스럽다"(천정배 후보)는 등의 공격을 받았지만, 손 후보는 "천 후보가 답답해 하시는 모습 이해한다"면서 "왜 이명박 후보가 전체지지율의 60%를 넘나드는가, 우리 국민들은 잘 사는 나라 편안한 나라를 원하고 있다"고 피해갔다.

 

그랬던 손 후보가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반격에 나선 것은 경선 과정에서 휩싸인 정체성 논란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본인만의 문제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캠프에 합류한 의원들의 대의명분을 지켜줘야 한다는 리더십의 발로로 해석된다. 물론 노 대통령의 공격을 빌미로 강하게 '노무현 때리기'에 나섬으로써, 본 경선을 앞두고 '비노'뿐 아니라 '반노' 성향의 지지자들까지 결속시킬 수 있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그러나 자칫 범여권 내부에서 '왕따'가 되거나 배제론의 대상으로 몰려 집중 포화를 맞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손 후보가 노 대통령과 타 후보들의 공격에 역공을 펴는 한편 본인의 한나라당 행적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손 후보는 "제가 살아온 모든 길이 하늘 아래 한점 부끄럼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며 "시대적 정치적인 환경과 제약을 뛰어넘지 못하고 정치적 대결구도 속에서 그 도구가 되고 부속물이 되어서 저 자신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부끄러운 경우도 많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본의 아니게 누를 끼치고 폐를 끼친 분, 저 때문에 마음 상한 분도 많이 있었다"며 "제가 한나라당에 있다는 그 사실 자체만만으로도 마음 상해 있었던 분들이 많이 있었던 것도 잘 안다. 그런 모든 분들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대선 승리를 통해서 그 빚을 꼭 갚도록 하겠다"며 "한나라당에 있었던 것이 자산이 되도록, 효자가 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천정배 "손학규와 이명박, 무슨 차이 있나?

 

예비경선을 하루 남겨두고 터져나온 손학규 후보의 발언에 대해 타 후보측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특히 경선 내내 가장 앞에서 손 후보의 정체성을 문제삼았던 천정배 후보는 "우리는 대선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손 후보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다"며 "손 후보의 '과거' 정통성에 대한 비판도 제기하지만 '현재와 미래'의 정체성에 더 큰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천 후보는 손 후보의 경선 포기까지 언급했다. 그는 "도대체 손 후보와 이명박 후보의 정책과 비전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짝퉁 한나라당 후보로는 진짜 한나라당 후보를 절대 이길 수 없다"며 "정녕 대선에서 이기기를 원한다면 이제라도 백의종군하시기 바란다. 그것이 이번 대선을 포기하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고 공격 수위를 한껏 높였다.

 

정동영 후보측의 김현미 의원도 손 후보의 남북정상회담 발언에 대해 "손 후보가 몸은 여기에 나왔지만 생각은 여전히 한나라당에 있다"며 "한나라당의 이삭이나 줍겠다는 사람은 이명박을 상대로 이길 수 없고, 민주개혁 세력을 계승할 자격이 없다"고 공격했다.

 

김 의원은 이어 "14년만에 민주개혁세력에 찾아온 손님이 주인집의 가훈과 족보를 파내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며 "민주개혁세력의 적통성과 정체성을 무시하는 태도 역시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추미애 후보측 김정현 언론특보도 "남북정상회담은 민족문제를 푸는 가장 효과적 수단인데 왜 그같은 발언이 나왔는지 의아스럽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이날 작심한 듯 발언을 쏟아냈던 손 후보측도 즉시 재반박에 나섰다. 손 후보측은 "노 대통령의 대선개입을 반대하는 손학규 후보 발언의 진의를 마치 남북정상회담 자체를 반대하는 것인양 오도하려는 처사는 이해할 수 없다"며 "김현미 의원의 논평대로라면 정동영 후보가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환영하는 것이 자칫 이번 대선에서 적극 활용해보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 이해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태그:#손학규 발끈, #노무현 비판, #남북정상회담, #정통성 논란, #386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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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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