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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2007년 9월7일 밤 11시, 늦은 시간에 한무리의 일행이 버스에 오릅니다. 버스 앞창에 붙은 이정표에 "금강산 여행"이라 쓰여 목적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저마다 상기된 표정에서 기대와 설렘이 묻어납니다.

 

조용히 눈을 감아봅니다. 마침 YTN뉴스를 통해 가슴을 열어주는 기쁜 소식이 들려옵니다.호주 시드니에서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핵문제해결이 전제조건이긴 합니다만  "평화협정"으로의 전환 이야기가 나오네요.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임기말 깜작 이벤트로 끝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염원해 봅니다.

 

1시간 30분을 달려 날을 넘긴시간 화진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갖습니다. 가을 밤 파도에 실려오는 바람은 노출된 살갖을 자극하여 소름을 만듭니다. 바람에 반응하는 육신은 이렇게도 간사합니다. 어둠 뚫고 동해를 거슬러 오릅니다. 잠을 청해보려 해도 방금 전 뉴스를 통해 접한 "평화협정"이라는 단어가 뇌리에 뱅뱅입니다.

 

온몸, 뜨거운 가슴으로 저항했던 역사가 있었습니다. 아니 지금도 요소요소에는 반목의 현장이 그대로입니다. 특히 북측을 바라보는 시민 일반의 시선은 과거와 별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만나게 될 북녘 동포들의 모습을 떠올리니 눈물이 가슴을 적십니다. TV 화면을 통해 접했던, 고립과 곤궁속에 생존을 위해 몸부림 치는 동포들의 모습이 뇌리를 스칩니다. 아~ 내 조국 반쪽이 어찌 이지경이란 말인가! 어찌 동포들의 눈을 바라볼 수나 있을런지?

 

쉼없이 북으로 달려 고성입니다. "해금강 횟집"에서 북어국으로 속을 달랩니다. 시계를 보니 새벽 6시입니다. 저멀리 수평선을 바라봅니다. 붉은 빛으로 무장한 동해바다는 태양을 밀어올릴 준비가 한창 입니다. 새벽공기가 시린 가슴을 파고 듭니다. 붉디 붉은 태양의 에너지처럼 우리민족의 하나됨 열망도 뜨거웠으면 좋겠습니다.

 

오전 7시 "현대아산" 사무소에 도착했습니다. 밤을 밝혀 달려온 길, 저마다의 느낌으로 오늘을 맞이하겠지요. 앳된 얼굴에 동그란 눈을 가진 처녀가 버스에 올라 이틀동안 여행안내를 책임진 조장이라고 인사를 합니다. 이쁘고 야무지게 보입니다. 주의사항을 듣고 남측 출입국 사무소를 통과 합니다. 여기서 버스를 갈아타야 합니다.

 

비무장지대에 진입을 합니다. 통한의 역사를 켜켜이 묻어둔체로 침묵하고 있는 비무장지대입니다. 만감이 교차합니다. 곧바로 북녘땅을 가리키는 금강통문을 통과합니다.  아~이길을 열기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과 좌절과 충돌과 세월을 지나야 했단 말입니까?  청춘을 불태우며 질곡의 역사와 마주했던 지난 날이 전율로 뇌리를 자극합니다. 여기가 우리의 반쪽입니다.

 

북측 출입국 사무소에 도착했습니다. 번듯한 신축건물에 대리석으로 치창한  남측 사무소와는 달리 비닐 하우스용 철구조물에 천막을 두른 북측 출입국사무소를 대하니, 아~현실을 봅니다. 이 차이가 하루 빨리 극복될 수 있도록 힘을 모으고 지혜를 발휘해야 겠습니다.  맨처음 마주하는 북녘동포는 "세관원동무"입니다. 눈동자를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큰소리로 인사를 건냅니다. "반갑습니다." 바로 부드럽고 나직한 목소리로 대답을 합니다. "어서오시라요." 고향 형님같은 인상입니다.

 

유명한 축구선수인 박두진 선수의 고향마을 구읍리를 지나 남강다리를 건너 우리귀에 이미 익숙한 온정리로 들어섭니다.  띄엄띄엄 군인들이 지나는 버스 행렬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저 멀리 소들이 풀을 뜯습니다. 옥수수밭을 지납니다. 잡초가 무성하여 알찬 수확은 힘들어 보입니다. 밭 머리에서 허리숙여 일하는 주민의 모습도 눈에 들어옵니다. 고난의 가시밭길을 헤치며 살아오고 있겠지요.

 

"금강샘물"공장이 시야에 들어 옵니다. 조장의 설명에 따르면 남측의 자본과 기술, 북측의노동력이 결합되어 운영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통일이 아닐 런지요.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힘 합쳐 함께 살아가는 것이 통일의 길이지요. 조금 더 지나니 신축공사중인 큰 건물이 나옵니다. 이산가족이 상봉할 면회소라 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아픔은 조금씩 치유되어가고 그 역사를 따라 통일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온정각입니다. 시계를 확인하니 11시를 넘고 있습니다. 긴 시간을 달려왔습니다. 곧바로 소형버스에 옮겨타고 만물상으로 향합니다. 금강산의 품속으로 깊이 깊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천하제일 명산 금강산 그중에서도 온갗 기암괴석으로 병풍을 두른 듯 그 자태를 뽐내고 있는  만물상을 오릅니다. 앳된 얼굴에 똑똑하고 참하게 생긴 우리 조장이 야무진 목소리로 닭알바위에 관한 전설을 이야기 합니다. 차창을 통해 들어오는 소나무 군락이 과연 일품입니다. 금강송 일명 미인송이라합니다. 쭉쭉 하늘 향해 뻗은 금강송 몸통은 말달리던 고구려 장수의 기상을 닮았습니다.

 

기기묘묘한 바위의 형상은 읽는이의 상상에 맏기렵니다. 남에서 금강산을 찾은 인파가 오늘만 1400명이 넘는다 합니다. 알록달록 이쁜옷과 튼튼한 신발로 무장하고 부푼가슴으로 금강산을 줄지어 오릅니다. 부디 가슴가슴이 하나됨의 염원과 관용의 마음으로 넘쳐나길 소원해 봅니다. "천선대"에 올라 주위 풍광을 살펴봅니다. 캬~ 탄성이 절로 터집니다. 70이 넘어보이는 할아버지도 올랐습니다. 어떤 염원을 안고 여기까지 올랐을가요. 다시 "망양대"로 향합니다. 동해바다가 지척에 보입니다. 회색빛의 건물이 옹기종기 보이는 것이 마을인 듯합니다. 저 멀리 쪽빛 물결은 충돌없이 하나되어 유유히 남으로  남으로 잘도 흐릅니다.

 

일행 중 대부분은 삼일포 관광을 위해 중도에 발길을 돌렸습니다. 필자와 몇몇은 삼일포 관광을 포기하고 만물상 굽이굽이를 둘러 보며 여유를 갖습니다. "망양대"에서 동해의 파도에 실려온 바람으로 땀을 식히고는  하산합니다. 허기가 몰려 옵니다. 지긋한 나이의 아저씨로부터 사과를 얻어 반쪽씩 나눠 배고픔을 달랩니다. 꿀맛입니다. 북녘에서의 첫 식사를 생각 하며 발길을 서두릅니다.

 

하산길 "귀면암"으로 오르는 입구에 좌판을 펼치고 있는 "봉사원동무"들에게 시선이 머뭅니다. 캔음료, 생수, 껌 등이 좌판에 펼쳐져 있습니다. 기념으로 캔음료와 껌을 배낭에 챙깁니다. 여성봉사원 셋에 남봉사원 한명이 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배고픔도 있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나이를 물었으나 비밀이라며 끝내 알려 주지 않습니다.

 

좌판의 물건을 떨이 해달라 간청합니다. 봉사원 대신에 우리가 장사에 나섰습니다. 하산 길의 남측 관광객을 대상으로  반 강매 결과 금방 좌판을 비울 수 있었습니다. 북녁 봉사원은 우리가 너스레를 떨며 상사하는 모습을 보며 배꼽을 잡고 웃습니다. 

 

두메산골 처녀같이 수줍음이 많습니다. 농담까지 오고 갑니다. 딸만 셋이라는 딸딸이 아빠는 제법 남측 상황을 꿰고 있습니다. 여성봉사원이 조심스럽게 물어 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방북에 대해 남측 국민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가 궁금하답니다.  이미 환영준비가 끝났다는듯 자랑섞인 질문입니다. 부디 남북정상회담에서 평화를 약속하는 통큰 결실이 맺어 지기를 기다려 봅니다.

 

우리가 꼴지입니다. 온정각으로 향하는 마지막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허기를 잊은 채 이야기나누다 보니오후 3시를 넘겼습니다. 남측이 운영하는 식당에 들러 막걸리를 곁들여 점심을 먹습니다. 육신에 피로가 몰려 옵니다. 삼일포 관광에 나섰던 일행과 합류하여 교예단 공연을 감상하러 이동합니다. 두눈을 바로 뜨고는 응시하기에 너무도 부담이 됩니다.  그랬겠지요. 어릴적부터 넘어지고 , 떨어지고, 부러지고, 상처투성인 채로 연습 또연습의 결과겠지요. 차라리 볼 수 없어 고개를 돌리고 맙니다.

 

온정각 주위를 둘러 봅니다.  온정각 동관 과 서관이있고, 내일 우리가 먹을 점심 예약이  돼있는 옥류관도 보입니다. 그 위로 시선을 돌리니 외금강 호텔, 금강산 호텔도 시야에 들어옵니다. 우리가 묶을 금강패밀리 호텔은 고성항에 자리하고 있어 보이질 않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저녁을  먹습니다. 점심을 늦게 먹은 터이라 막걸리 한잔으로 저녁 식사를 대신합니다. 그리고 온천으로 향합니다. 유황내음 진동 하는 뜨거운 탕으로 알몸을 밀어넣습니다. 모든 긴장이 스르르 녹아 내립니다.

 

숙소에 도착하니 밤 9시가 넘었습니다. 펜션 형태의 신축건물이라 깨끗하고 안온한 보금자리 입니다. 이밤이 어떤 밤인데 그냥 보낸단 말입니까?  숙소앞 북측에서 운영하는 포장마차에 판을 벌립니다. 평양소주와 평양맥주를 썩어 폭탄주로 파이팅을 외칩니다. 북측 여성봉사원의 서비스에 술과 안주는 끊임이 없이 주문됩니다. 특히 김수향 봉사원 동무의 인기가 최곱니다. 오늘 밤은 남과 북이 없습니다. 허물없이 하나입니다.

 

다시 날이 밝았습니다. 눈을 뜨니 6시 30분, 다행히도 머리가 맑습니다. 꽤 많이 마셨는데도 말입니다. 서둘러 아침식사를 하고, 고성항을 병풍처럼 둘러싼 "천불산"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합니다. 오늘 일정은 "관폭정"에 올라 "구룡폭포"를 감상하고 다시 "구룡대"에 올라 "상팔담"과 주위를 조망하도록 계획되었습니다.

 

구룡연으로 향하는길에서 복원되고 있는 "신계사"를 봅니다. 6·25 동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남측 자본으로 복원 중에 있답니다. 산 허리에 자리하고 있는 "목란관"은 냉면 맛으로 유명 하답니다. 주위에 기념품과 그림등을 전시하고  남측 손님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산삼과 녹용이 녹아흐르는 물이라 하여 '삼록수'라 김일성 주석이 직접 이름 지었다는 계곡약수로 목을 축입니다. 흔들다리를 지나고 무대바위를 지나 옥류담에 시선이 머뭅니다. 옥빛 수정이 넘쳐흐릅니다. 절로절로 탄성이 터집니다. 감시망을 뚫고 몰래 들어가 미끄럼 바위에 몸을 맏기고 풍덩 뛰어 들고 싶습니다.

 

아~참, 놓치고 만 장면이 하나 있군요. 금강문을 막 지나니 북측 안내원이 특유의 낭낭한 목소리로 바위에 얽힌 전설을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앞부분은 잘 듣지 못하였습니다. 무슨 동물 형상을 한 바위를 설명하고 있는 듯, 내용은 두형제 바위가 사이좋게 지내는데 맞은편 못된 바위가 형제를 이간하고 못되게 군다는 내용 같았습니다. '이 못된 바위는 누구일까요?'라는 질문으로 설명을 마칩니다. 미국에 대한 동포의 심정을 읽었습니다.

 

다리품을 꽤 팔고서야 구룡폭포를 마주했습니다. 하아얀 비단폭이 하늘에서 하염없이 떨어지듯 장엄한 자태로 보는 이를 압도합니다. 어찌 짧은 언필로 표현이 가능 하겠습니까. 구룡대에 올랐습니다. 아득히 발아래에 펼쳐진 '상팔담'은 옥구슬을 가득담은 큰 항아리가 연이어 놓여 있는 듯합니다. 남북으로 펼쳐진 세존봉의 기암괴석과  비경은 너무나도 황홀경입니다. 방랑시인 김삿갓의 시를 빌어 천하절경을 설명하는 여성봉사원의 간들어진 목소리는  금강산의 기기묘묘함과 조화를 이룹니다. 모두가 넋을 빼앗긴 듯합니다.


옥류관 입니다. 평양 옥류관의 분점이라 합니다.아쉽지만 북측에서의 마지막 식사이지요.  주문한 냉면이 나오고 봉사원 동무의 설명따라 맛을 음미합니다. 담백합니다. 물리지않는 맛에 여기저기서 사리를 추가 합니다. 곱게 차려입은 한복이 여성 봉사원의 미소와 참 잘도 어울립니다.

 

이제 다시 남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앳된 모습의 조장의 말이 귓가에 머뭅니다. "금강산을 찿아 어떤 느낌을 받았나요?"  만감이 교차합니다. 욕심일까요. 이기적인 남측식 발상이겠지요. 자가용으로 여유있게 금강산을 다시 찾고 싶다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우리의 발길이 통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염원해 봅니다.

 

오늘 아버지 기일입니다. 남으로 남으로 달려 아버지 영정에 들쭉술을 올려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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