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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면 말린 생선 같기도 한 면도칼을 갈 때 쓰는 가죽
 언뜻 보면 말린 생선 같기도 한 면도칼을 갈 때 쓰는 가죽
ⓒ 김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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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파랑·하양의 삼색이 어우러진 원통의 네온사인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이발소.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미장원과는 달리 창문 하나 없는 폐쇄적인 분위기가 여자들은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치외법권공간 같기도 했다.

그 옆을 지날 때면 '도대체 저 안에서 무엇을 하기에 항상 문이 굳게 닫혀 있는 것일까?'하는 궁금함에 고개가 절로 갸우뚱거려졌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께서 다리를 다치시는 바람에 누군가 모시고 이발소에 가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평소 그 곳이 무척이나 궁금했던 난 동행을 자처하고 집을 나섰다. 가는 동안 내내 TV에서 본 퇴폐 이발소를 떠올리며 상상력을 총동원해 밀폐된 공간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다니시는 이발소에도 여자 면도사와 안마사가 있을까? 설마 그런 곳에 나를 데려가실까? 어쩜 평소에 다니시던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실지도.

머릿속에서 곧 눈앞에 닥칠 일들이 영상으로 이어져 마구 돌아갔다.  

아버지의 단골 이발소, 드디어 따라가보았다

이발을 하고 머리를 감길 때 쓰는 조로
 이발을 하고 머리를 감길 때 쓰는 조로
ⓒ 김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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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도봉시장 길로 접어들자 아버지는 저 만치에 있는 신호등을 가리키며 U턴을 하라신다. 그리곤 조금 가다 시장길 뒷골목으로 통하는 좁은 길에서 우회전을 명하셨다. '뭔 이발소가 이렇게 후미진 곳에 있을까' 하며 두리번거리는데 다 왔다며 차를 세울만한 지점을 일러주셨다.

변변한 간판도 없이 출입문으로 이용하는 미닫이 유리창에 '중앙 이발소'라고 써있는 아주 허름한 곳. 안으로 들어서자 오래도록 기다린 사람이 온 듯 주인 아저씨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목발을 짚으신 아버지의 모습을 보시곤 어쩌다 그렇게 다치셨느냐며 큰 걱정을 하신다.

서너 평 남짓한 좁은 공간엔 신기한 것들로 가득했다.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가 상고머리를 깎을 때처럼, 의자 높낮이도 조절할 수 없어 나무로 된 깔판을 놓고 앉았던 바로 그런 곳이었다. 그 옆엔 얼마나 오래 썼는지 손때에 길이 들어 반들반들한 깔판도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이발을 하고 머리를 감길 때 쓰는 조로 그리고 언뜻 보면 말린 생선 같기도 한 면도칼을 가는 가죽이 너덜너덜해진 채로 걸려 있다. 세상에! 서울특별시에 아직도 이런 곳이 있다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스른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아무리 봐도 영락없는 1960년대 시골 읍내 이발소를 연상케 하는 이곳은 분위기로 봤을 때 마치 영화나 드라마를 찍기 위해 만들어 놓은 세트장 같았다.

요즘은 어떤 업종이든 실내 인테리어에 신경을 많이 쓰는데 이 곳에선 전혀 그런 흔적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혹시 옛날을 그리워하는 고객층을 겨냥해 일부러 이렇게 꾸민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테리어를 무시해버린 이색적인 공간이 오히려 더 눈길을 끌었다.

금녀의 공간, 그런데도 고향 같았다

어린이 용 깔판
 어린이 용 깔판
ⓒ 김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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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주인아저씨는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은 옛 정취를 느끼고자 일부러 이곳을 찾는다"며 우리 아버지도 30년 단골이라고 말씀하신다.

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 이발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순간 송두리째 무너지고 말았다. 거기엔 여자 면도사도 안마사도 없었다. 좁은 공간 구석구석엔 30년 이상 아저씨의 손때가 묻어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처럼 정감이 넘치는 것들만이 손님을 반겼다.

두 분은 뭐가 그리도 재밌는지 연신 웃으며 이야기를 하신다. 남성전용공간이라 무척 불편할 줄 알았는데 첫 방문인데도 전혀 낯설지가 않고 마치 고향에 온 듯 포근하고 마음이 편했다.

작은 민속박물관 같기도 한 국보급에 가까운 이발소가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이었는데 아쉽게도 아버지의 30년 단골 이발소는 재개발로 인해 올 12월에 헐린다고 한다.


태그:#이발소 , #조로 , #깔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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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저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52세 주부입니다. 아직은 다듬어진 글이 아니라 여러분께 내놓기가 쑥스럽지만 좀 더 갈고 닦아 독자들의 가슴에 스며들 수 있는 혼이 담긴 글을 쓰고 싶습니다. 특히 사는이야기나 인물 여행정보에 대한 글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이곳에서 많을 것을 배울 수 있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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