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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아무리 정교하게 빚으려고 해도 자연이 빚어낸 아름다운 예술품에는 비할 데가 못된다”

 

약 2억 5천만년 전에 자연신(神)이 빚어냈으며, 총연장 472m, 다섯개의 못(池)과 12개의 광장이 있고 다양한 모양을 한 종유석과 석순이 신비롭게 형성되어 있다. 자연조형이 금강산을 방불케한다 하여 일명 지하 금강이라고도 불린다. 또한 이름 모를 물고기와 곤충류, 박쥐 등 31종의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는 이곳. 이곳이 바로 경북 울진에 있는 성류굴이다.

 

지난 8월 여름휴가차 동해안 일주를 하던 중 우연히 들른 울진의 성류굴은 쾌적한 공기는 물론 무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함을 제공해 줌과 동시에 자연이 만들어낸 단 하나의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도 주었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성류굴 입구에는 쭈~욱 늘어서 있는 식당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고, 또 다른 곳에는 보기만 해도 더위가 날아갈 듯한 맑디 맑은 시냇물이 시원스레 흐르고 있는 천이 있었다.

 

이러한 경관을 감상하며 걸어가니 금세 성류굴 입구가 나왔다. 입장권을 구입하고 동굴 입구에 비치되어 있는 안전모를 착용했다. 약 50여명의 입장객들이 한 줄로 나란히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굴의 통로가 좁은 터라 한명 한명 입장해야 하는 불편함은 있었지만 그래도 관람객들은 기대반 설레임 반으로 순서를 기다렸다. 이윽고 안에서 관람을 마친 관람객들이 밖으로 나오자 입장이 시작되었다. 거의 기어가다시피 하여 굴의 입구를 통과해 계단을 밟으며 본격적인 탐험(?)을 시작했다.

 

계단 통로가 그리 넓지 않아 코스를 따라 굴 내부를 모두 관람하는데는 생각했던 것 보다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나마 눈에 들어오는 하나하나의 예술작품들이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주었다. 부처님의 형상을 한 미륵불에서 부터 선녀의 밀실, 통일기원탑, 용궁 등 다양한 모습의 작품들이 선을 보이고 있었다.

 

이렇게 약 40여분을 관람하고 나니 어느덧 처음 출발했던 성류굴의 입구가 보였다. 관람을 마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정도의 굴이라면, 또 2억 5천만년 전에 만들어진 굴이라면 우리의 역사 속에서 아무런 사건이 없었을까?’

 

일단 굴을 빠져나와서 나의 이런 생각을 해결해 줄 무언가가 없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문득 굴 입구에 붙어 있는 성류굴의 안내간판이 보였다.


들어갈 때는 관람하려는 생각만 있어서 자세히 읽어보지도 않고 그냥 좌시했었는데 관람을 하고 나서 읽어보니 단순히 굴 내부의 모습만 관람하려던 나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성류굴 입구에 붙여 놓은 동굴 안내 간판에는 이렇게 적혀져 있었다.

 

“성류굴(聖留窟)은 약 1000여년 전부터 사람의 왕래가 있었던 곳으로서 신라 31대 신문왕의 아들 보천태자가 수도하던 곳이기도 하며,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당시에는 피난처로서 이용되었다고도 한다. 특히 임진왜란 당시에는 이곳에서 의병과 왜군이 전투를 치른 기록이 있다. 아쉽게도 훼손된 종유석의 경우 미루어볼 때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적인 현상(지진, 지각변동)이나,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종유석의 훼손이 많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굴 내부의 온도는 년중 14~16℃, 습도는 90~98%를 항상 유지하고 있으며, 지금도 물이 흘러내리는 곳은 석순과 석종이 1년에 평균 0.4mm정도 자라고 있다”

 

지금도 자라고 있다고? 그리고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당시에 피난처로 사용되었다고?

관람을 마치고 나니 과연 그럴 듯 했다. 그 웅장한 석순의 모습하며 472m에 이르는 총연장의 규모가 말이다. 하지만 문득 이곳이 피난처로 사용되었다면 그 피난민들을 쫓던 일본군과 북한군도 당연히 이곳을 알고 있었을 터 가만히 두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나의 의문도 굴 입구에 설치되어 있는 안내간판이 해결해 주었다.

 

“임진왜란 때 의병과 수단(數多)한 피난민들이 왜적의 출구 폐색(閉塞)으로 아사(餓死) 당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그럼 그렇지, 그 악랄했던 놈들이 가만히 둘리는 없지’

 

이곳에서 있었던 역사를 알고 나니 갑자기 마음이 아파왔다. 이러한 아픈 역사와 아름다운 기암괴석이 있는 성류굴을 뒤로 하고 다시 차가 있는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비록 지난 여름의 추억이지만 이제 제법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가을의 문턱에서 동해안을 여행할 목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곳 울진의 성류굴을 찾아보는 것을 권장해 본다.


태그:#성류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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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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