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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표리동등

 

.. 여하간 문제는 표리동등(表裏同等)에 관한 것이다. 이것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은 정말 웃기는 사람이다 ..  <영화여 침을 뱉어라>(이효인, 영화언어, 1995) 18쪽

 

 ‘여하간(如何間)’은 ‘아무튼-어쨌든’으로 고치면 좋습니다. “표리동등에 관한 것이다”는 한 마디로 “표리동등이다”라고만 해도 좋아요. 다음 글월 첫머리에 ‘이것이’라 나오는데 ‘겉과 속이’라고 풀면 좋고, ‘일치(一致)하지 않는’은 ‘다른’이라 고치면 한결 단출하고 쉬운 글이 됩니다.

 

 ┌ 문제는 표리동등(表裏同等)에 관한 것이다
 │
 │(1)→ 문제는 겉과 속이 다른 데 있다
 │(1)→ 문제는 겉과 속이 다르니까
 │(2)→ 겉과 속이 다르니 문제다
 │(2)→ 겉과 속이 달라 문제다
 └ …

 

 문득 박노자라는 분이 쓴 글이 생각납니다(〈한겨레21〉 630호―2006.10.17.). 그분은 우리 말맛을 아직 몰라요. 어쩌면 앞으로도 모를지 모릅니다. 그분은 우리 말맛이 한자말이나 어설픈 고사성어에 있는 줄 알거든요. 우리 말맛은 때와 곳에 따라, 또 사람에 따라 토씨나 말씨 하나를 살짝 바꾸는 데에 있음을, 사람마다 부대끼며 살아오며 느끼는 대로 여러 가지 상말을 마음껏 지어서 쓰는 데에 있음을 못 깨닫고 있거든요.

 

 “겉과 속이 다르니 문제다”라는 말도 “겉과 속이 달라 문제다”로 살짝 고쳐쓸 수 있고, “겉과 속이 달라 버리니 문제다”처럼 쓸 수 있고, “겉과 속이 어긋나서 문제다”라든지 “겉하고 속이 뒤죽박죽이라 문제다”처럼, “겉이랑 속이랑 왔다갔다 하니 문제다”처럼 쓸 수도 있어요. 쓰기 나름입니다. 쓰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말씨를 살리고 개성을 키울 수 있는 우리 말이에요. 다만, 안타깝게도 이런 우리 말맛을 느끼는 사람이 차츰 줄고, 가꾸거나 살리는 사람은 거의 안 보이니까, 박노자 같은 이들도 우리 말맛을 느끼기보다는 엉뚱한 길에 빠져서 어설픈 이야기를 함부로 쓰고 마는구나 싶어요.

 

 

ㄴ. 어불성설

 

.. 또 대량 소비되는 제품을 ‘느리게 살기’의 한 목록에 올려놓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  <이문재 산문집>(호미,2006) 34쪽

 

 “대량(大量) 소비(消費)되는”은 “아주 많이 쓰이는”이나 “엄청나게 팔리는”으로 다듬으면 좋습니다. “느리게 살기의 한 목록에”는 “느리게 살기 목록에”로 다듬고요.

 

 ┌ 어불성설이다
 │
 │→ 말도 안 된다
 │→ 얼토당토않다
 │→ 어처구니없다
 │→ 헛소리이다
 └ …

 

 말이 안 되는 일을 볼 때에는 “말도 안 돼” 하는 말이 바로 튀어나옵니다. “어처구니가 없네”라든지 “어이가 없네”라는 말, “터무니가 없네”라는 말도 곧잘 튀어나옵니다. 보기글에서라면, “또 엄청나게 팔리는 제품을 ‘느리게 살기’ 가운데 하나로 올려놓는다는 말은 헛소리이다”처럼 통째로 다듬으며 “헛소리이다” 하고 집어넣어도 괜찮습니다. 말이 안 되는 말, 한 마디로 하면 ‘헛소리’이고, 재미난 상말을 살려서 쓴다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입니다. 뭐,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라 해도 재미있어요.


태그:#우리말 , #우리 말, #고사성어, #표리동등, #어불성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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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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