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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10월 22일자 1면 머릿기사는 '도덕적 문제 생겨도 이명박 34%로 1위'였다.
 <국민일보> 10월 22일자 1면 머릿기사는 '도덕적 문제 생겨도 이명박 34%로 1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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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여론조사 문항을 보다 보면 별것이 다 있다 싶다. 가장 기가 막힌 것이 도덕성에 관한 질문들이다. 오늘(22일) <국민일보>에 게재된 여론조사는 이렇게 물었다.

"현재 지지하고 있는 대선 후보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을 경우, 지지 후보를 계속 지지할 것인가?"

<세계일보>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물었다.

"이명박 후보관련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을 경우에도 계속 지지할 것인가?"

<중앙일보>는 더 노골적으로 물었다.

"BBK 주가 조작 의혹에 이명박 후보가 연루된 것으로 밝혀지면 어떻게 하겠느냐?"

그 답은?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다.

지지 후보에게 도덕적 문제 생겨도 괜찮다?

구체적으로 따져보자.

우선 <국민일보> 여론조사. 글로벌리서치와 20일 전국의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으로 실시했다.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는 ±3.1% 포인트. 응답률은 22.8%였다.

이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한 1면 머리기사 제목은 "도덕적 문제 생겨도 이명박 34%로 1위"로 뽑혔다.

'현재 지지하고 있는 대선 후보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을 경우, 지지 후보를 계속 지지할 것인가'라고 물은 데 대해서 응답자의 '50.8%'는 '계속 지지하겠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지후보를 바꾸겠다'는 응답도 '49.0%'였다. 오차한계 안이다.

<국민일보>는 이어 각 후보 지지자들에게 이 문제를 따로 물어보았다. 이명박 후보 지지자들 가운데는 '59.9%'가 도덕성 문제 발생 여부와 관계없이 '계속 지지'하겠다고 응답했다. 지지자의 '40%'는 그러나 지지의사를 철회하겠다고 응답했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의 경우에는 '계속 지지'가 '45.8%'였던 반면 '후보를 바꾸겠다'는 응답이 '54.2%'로 더 많았다.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 지지자들의 경우 문국현 예비후보의 도덕적·윤리적 문제에 가장 민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가 있을 경우 지자자들의 '73.1%'(계속지지 26.9%)가 지지를 철회하겠다고 응답했다. 권영길 민노당 후보도 '계속 지지'하겠다는 응답은 26.9%였다.

이런 여론조사 결과를 두고 먼저 드는 생각은 이런 질문을 왜 했을까 하는 점이다. 윤리 문제에 대한 유권자들의 인식 수준이나 태도를 알아보자는 것인지, 아니면 거꾸로 후보들의 윤리문제는 문제가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자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국민일보>는 이 같은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각 후보 지지자 충성도'로 평가했다. 그 취지는 '충성도'를 잰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권영길 민노당 후보에 대한 '계속 지지율'이 '35.6%'로 나온 것을 두고 이런 평가를 내렸다.

"도덕적 문제의 우위를 점해온 민노당 성격이 반영된 측면이 있긴 하지만, 견고한 조직력을 자랑해온 민노당임을 감안할 때 일반적인 예상과는 좀 다르다."

도덕적·윤리적 문제가 있을 때 지지의사를 철회하겠다는 지지자들의 비율이 가장 높은 문국현 예비후보 지지층에 대해서는 "도덕성을 보고 지지하는 사람이 대다수라는 분석이 가능하다"고 했다.

'계속 지지'보다는 '지지 철회' 응답비율이 더 많은 정동영 대통합 민주신당 후보 지지층에 대해서는 "아직 손학규 전 경기지사와 이해찬 전 총리 지지층을 완전히 '내 편'으로 끌어안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반면에 도덕적·윤리적 문제에도 지지하겠다는 응답이 59.9%나 된 이명박 후보 지지층에 대해서는 '충성도가 가장 높다'고 평가했다.

'조폭 윤리'를 묻는 '충성도 조사'

이 여론조사 결과와 그 해설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상식이 이렇게 뒤집어 질 수도 있구나 하는 점이다. "도덕적·윤리적 문제가 있더라도 OK"라는 이야기는 아무나 쉽게 못한다. 내놓고 할 수 있는 이야기도 아니다. 그런 말을 내놓고 할 수 있는 집단이라면 '조폭' 정도는 돼야 할 것이다. 그런데 명색이 여론조사라는 것이 공공연하게 '조폭의 윤리'를 묻는다. 이래도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최소한 '해설'이라도 제대로 해야 할 것이다. 도덕적·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더라도 '계속 지지'하겠다는 지지층은 '충성도'가 높을지는 모르나 도덕의식이나 윤리의식은 ·문제가 많은 집단이다. <국민일보>는 충성도 수준을 곧 '안정적 지지층'으로 평가했지만, 이는 '도덕적 불감증'으로 평가하는 것이 더 상식적일 것이다.

그런 식으로 평가한다면 이명박 후보는 가장 비도덕적인 지지층을 많이 갖고 있는 후보이며, 문국현 예비후보는 가장 도덕적인 지지층을 갖고 있는 후보다. 권영길 민노당 후보는 가장 '도덕적인 조직'의 후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세계일보>와 <중앙일보>의 설문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세계일보> 여론조사에서는 'BBK 의혹의 일부가 사실로 밝혀지더라도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응답'이 '70.9%'였다.

<중앙일보>도 "BBK 주가조작 의혹에 이명박 후보가 연루된 것으로 밝혀지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이 후보 지지자의 '53.7%'가 '계속 지지'하겠다고 응답했다. 반면 '26.4%'는 '지지 철회'라고 응답했다. '잘 모르겠다'는 응답도 '19.9%'였다.

<중앙일보>는 "만약 이 후보가 BBK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밝혀질 경우 적어도 10% 이상의 지지자가 빠져나간다는 계산"이라며 "관망적 입장을 밝힌 이들 가운데 일부가 지지 철회에 동참할 경우 40% 이하로 지지율이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대선 구도가 흔들릴 수 있는 잠재적인 변수임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BBK 의혹의 사실 여부다. 의혹의 사실 여부가 가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지지자들에게 '계속 지지' 여부를 묻는 것 자체가 따지고 보면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정확한 판단을 위한 구체적인 정보도 없이 추측과 추정만으로 판단하고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것이 과연 '여론조사'라는 명분으로 합리화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별 생각 없이 응답한 많은 사람들이 조폭과 같은 '집단의식'의 소유자로 치부되고, 그 결과의 발표가 또 사회적 윤리의식의 마비로 이어진다면 이 또한 문제다. 사람을 함부로 시험에 들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태그:#BBK 주가조작, #이명박, #김경준, #여론조사, #충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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