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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개의 평문 가운데 ‘시와 시, 그 소통과 대화의 사잇길’을 관심 있게 읽었다. 분석 범주는 80년대를 전후한 시기의 시들.

 

이 시기 생산된 시들 가운데 자주 발견되는 ‘특정한 이미지들’과 ‘특징적인 기법들’ 간의 상호 연관성을 살펴보고 있다. 특히 지은이가 찾아내고 있는 이미지 맥락 세 가지는 ‘누이’, ‘어머니’, ‘몸’이다.

 

‘누이’의 이미지는 ‘순결성’이다. 그리고 이때의 순결성의 이미지는 “타락한 세계와의 강렬한 대비”라는 특징적 기법을 통해서 의미화 된다.

 

‘어머니’의 이미지는 ‘수난’이다. 이성복과 함성호의 시가 특히 그렇다. “비에 젖으시”는 어머니(이성복, ‘또 비가 오면’)이고 “고단한 어머니”(함성호, ‘유민’)이다.

 

한편 백무산의 시 ‘어머니 말씀’에서는 “봉건적 어머니상에 대한 냉정한 관찰적 태도”가, 박노해의 시 ‘저 아이가’에서는 “민주투사로 변해가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90년대에 오면 ‘몸’의 이미지가 시적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른다. 채호기, 김기택, 김혜순, 최승호, 차창룡 등을 언급하면서, 이러한 시들의 지향성을 “근대의 이성중심적 사유체계로부터 소외되어온 몸의 영역을 새로운 인식의 발판으로 활용하는 바깥의 시선”이라 규정한다.

 

‘황순원 문학에 대한 이해와 오해 사이에서’라는 글도 흥미롭게 읽었다. ‘소나기’를 새로 분석해보고 있는 것. 소년과 소녀의 순수한 사랑이라기보다는, 더 복합적이고 깊이 있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

 

즉 입사담의 요소, 특정 이름이 아닌 일반 명사화된 소년과 소녀로 불리고 있다는 점, 소녀의 죽음에 대한 암시적 언술이 주는 시적인 서정성과 심미적 효과 등에 주목한다. 나아가 소년과 소녀의 대조적 이미지를 통하여 시골/도시, 자연/문명, 육체적 건강함/허약함, 삶/죽음 등 그 이면에 숨겨진 다양한 의미의 대립항들을 이끌어낸다. 그러면서 “이 작품이 궁극적으로 자연과 대척되는 지점에 놓인 근대적 삶에 대한 작가의 특정한 인식의 태도를 반영”하는 것으로 본다.

황순원의 ‘별’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부재하는 어머니의 세계와 탈현실적 심미성의 공간’이라는 글을 보자.

 

어머니의 부재는 아이로 하여금 어머니를 이상화(‘별’은 바로 이러한 이상화된 이미지)시키고 이렇게 이상화된 어머니의 환상은 이 아이의 성장을 방해한다는 것. 그리하여 누이를 거부하게 되고 소녀를 거부하게 된다는 것. 즉 이러한 아이의 태도는 성장장애로 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리고 기법 면에서는 ‘설화적 기술방식’을 취함으로써, 사실주의적 현실을 배제하고 탈현실적인 서정성으로 이끌어간다는 점도 지적해놓고 있다.

 

지은이의 표현대로 비평은 일종의 “돋을새김”이다. “비평이란 작가들이 자신의 전존재로 세상을 통과해나간 그 고통스러운 사랑의 기록들을 열심히 보아주고 읽어줌으로써 그들이 자신의 상처를 통해 일구어낸 세상에 대한 사랑을 조금씩 나누어갖는 일”이다. 박혜경 문학평론집 <문학, 소통과 대화의 사잇길>은 비평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한 책이다. 


문학, 소통과 대화의 사잇길

박혜경 지음, 역락(2007)


태그:#문학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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