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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농민사관학교' 졸업생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한국농업대학(아래 '한농대') 공동판매법인 설립사업이 본궤도에 올랐기 때문이다.

사업 골자는 간단하다. 한농대 졸업생들이 생산하는 농산물을 전자 상거래 등을 통해 중간 유통과정을 생략하고 소비자에게 공급하겠다는 것. 중간 마진이 없어지는 만큼 생산자도 소비자도 만족할 수 있는 유통시장 혁명을 '한국농업대학의 이름으로' 이룬다는 구상이다.

물론 매력적인 계획이다. 허나 국내 유통시장 현실을 감안하면, 자칫 '가시밭길'에서 헤맬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졸업생들은 법인 설립을 위한 출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한농대 측에 따르면, 이제까지 140여명이 약 2억원을 출자했다고 한다. 이 사업에 참여하는 '그들'은 누구일까.

충남 보령에 있는 정촌유기농원 가을 풍경
 충남 보령에 있는 정촌유기농원 가을 풍경
ⓒ www.goatvillag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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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충남 보령시 청라면 장현리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정촌유기농원(팜스테이)을 운영하고 있는 김민구(32)씨를 6일 만나기로 했다. 우선 독특한 이력이 눈길을 끌었다. 그의 집안은 10대째 농사를 짓고 있는데, 4형제 중 막내인 김씨가 가업을 이어받았다. 흔히 '막내'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가 먼 선택이다. 스물 다섯이란 나이에 한농대에 입학한 것도 '특기사항'에 속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김씨의 휴대폰 컬러링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라니, 참 오랜만에 듣는 노래였다. 1972년에 나온 새마을노래를 1976년생 젊은 농부가 애용한다? 김씨에게 왜 농촌에 남았냐는 질문부터 던졌다.

"사실 운동을 좋아했어요. 체육대학 가려고 재수할 때는 서울에서 학원까지 다녔어요. 그런데요, 서울이 역시 넓더라구요. 저보다 운동 잘 하는 사람이 정말 많은 거예요(웃음). 혼자 생각해봤어요. 내가 이들과 경쟁해서 이길 수 있겠느냐. 아니란 결론이 나오더군요. 그래서 고향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었죠."

한참 하고 싶은 일이 많을 나이에 내린 결정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조숙'했다. 혹시 공부에 자신 없어 내린 결정 아니었어요?

"아뇨(웃음). 반에서 20등 정도는 했어요. 체육대학을 포기할 정도는 아니었죠. 제가 시골 분들과 잘 어울려요. 그래서 나이보다 훨씬 많게 보는 어르신들도 적지 않죠.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기도 하고, 시골 정서가 나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농업이 적성에 맞는다고 판단했죠."

내가 한국농업대학에 진학한 이유

정촌유기농원 김민구 대표
 정촌유기농원 김민구 대표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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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감각이 남달랐던 셈이다. 아버지 옆에서 본격적으로 농사 수업을 하면서도, 그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느냐'로 쏠렸다. 논에 약을 치지 않고 오리를 이용하는 친환경농법(오리농법)을 도입한 것도 그래서다. 그러던 어느 날, 김씨는 자신의 무릎을 탁 칠 만한 광경을 목격했다고 한다.

"우리 농원이 오서산 자연 휴양림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요. 그래서 관광버스가 많이 지나가곤 했는데, 하루는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려 논에 있는 오리들을 구경하고 있는 거예요. 신기하다면서 사진도 찍고… 저거다 싶었죠. 사진만 찍고 가는 저 사람들을 나한테 끌어와야겠다!"

팜스테이의 출발이었다. 그리고 '논에 있는 오리를 신기해하던 사람들'은 김씨를 한국농업대학으로 이끌었다. 이유는 "하나", "농업 원리와 전문지식을 쌓기 위해서"였다. 이를 통해 생산량을 늘리고 품질을 개량한다던지 하는 것은 그에게는 부차적인 목적이었다.

"농업을 살리는 길, 저는 '도농 교류'라고 생각합니다. 왜냐. 도시 사람들의 농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야 하니까요. 그래야 우리 농산물의 신뢰도도 높아지는 거거든요. 그리고 도농교류는 곧 관광농업이라고 봅니다. 헌데 그 사람들한테 내가 해 줄 수 있는 이야기가 없는 거예요. 그저 아버지가 콩 심으라면 콩 심고, 팥 심으라면 팥 심고 했으니까. 콩은 어떻고 팥은 어떻고를 얘기해줘야 하는데, 전문지식이 없더라구요. 한농대 진학을 결심한 이유죠."

가족회원 100명 확보를 위하여

"도농교류가 곧 관광농업"이란 김씨의 주관은 확고했다. 졸업을 하고 본격적인 팜스테이 준비에 들어갔다. 농협에서 1억원을 융자받아 집을 개조하고 연못도 만들었다. '도시 사람들을 위한' 황토방과 박물관도 마련했다. 2004년, 첫 해 다녀간 사람들은 500여명. 현재 연매출은 "1천만원 정도"라고 한다. 속칭 '대박'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조급하지 않다.

"돈이 목적인, 수박 겉핥기 식 팜스테이가 많은 것 같아요. 팜스테이가 '차떼기'가 돼서는 곤란합니다. 버스로 사람들을 많이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가족 중심의 소수 관광이 돼야 합니다. 여기 오면 장현리 특성도 알고, 마을 유래도 알고, 어떤 것을 해 먹는 과정도 알고… 느리더라도 꼼꼼하고 여유롭게 가야 해요. 농원들이 각각 특색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팜스테이에 참가해 즐거워하는 어린이들
 팜스테이에 참가해 즐거워하는 어린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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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촌유기농원의 대표적인 특색은 '산양'이다. 프로그램에는 먹이를 주고, 젖을 짜보고, 요구르트를 만드는 등 산양과 놀 수 있는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특히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다고 한다. 가족 단위 팜스테이를 지향하는 김씨로서는 반가운 반응이다. 그래서 "되도록 20명 단위를 넘기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야 "대화와 의견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란다.

- 그래도 뭔가 목적이 있을 것 같은데요?
"우선은 내 모습을 10년 동안 보여주고 싶다는 거죠. 생각해보세요. 나를 가족처럼 믿는 회원을 100명만 확보하면 어떻게 될까요. 모든 농산물을 나에게 구입하고 싶어하는 가족들 말입니다. 앞으로 한국에서 농업하려면 이런 회원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다소 어렵더라도 앞으로 계속 농원에 투자할 생각이에요. 그리고 10년이 지나면, 그 때 정당하게 요구해야죠."

"두고 보세요, 앞으로 10년입니다"

"정당하게 요구하겠다"는 말속에는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뼈'가 숨어 있다. 팜스테이를 운영하면서 쌀, 잡곡류, 콩, 고추 등을 재배하는 김씨의 "1년 소득은 5천만원 정도". 그는 "내가 노력하는 바에 비하면 부족한 수준"이라며 "이게 우리나라 농업의 문제"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항상 느끼는 문제가 생산마진보다 유통마진이 더 크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번에 (한농대 공동판매법인 설립에) 출자했어요. 유통마진을 없앰으로써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만족할 수 있을테니까요. 게다가 한농대 이름을 걸고 하는 거잖아요. 이제 농업도 브랜드 시대를 맞았어요. 생산부터 판매까지 메이커가 있어야 하는 시대죠. 분명히 성공할 거라 믿어요."

황토 체험을 하고 있는 어린이들과 김민구씨
 황토 체험을 하고 있는 어린이들과 김민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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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의 투자에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형 팜스테이'나 한농대 공동판매법인 설립, 당장 눈앞에 큰 이익이 보이지는 않는다. 어쩌면 '기다릴 줄 아는 사람'만이 선택할 수 있는 투자인지 모른다. 끝으로 하나 남은 질문. 왜 휴대폰 컬러링이 하필 새마을 노래입니까? 혹시 '새마을'이 한국형 팜스테이를 의미하나요?

"(웃음) 그래요. 열심히 일해 볼만하다는 거죠. 우리나라 농업, 분명 도전해볼 만 하니까요. 잘못 발달된 부분들이 많거든요? 그만큼 노릴 수 있는 틈새시장이 많아요. 두고 보세요. 10년입니다. 우리 농업 체계화될 겁니다. 왜냐, 자연스럽게 농민 세대 교체가 완성되는 시기니까. 그리고 10년이면, 우리 한농대가 탄생한 지 20년이 되는 해잖아요.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죠. 당연히 투자할 만한 것 아니에요?"


태그:#팜스테이, #김민구, #한국농업대학, #공동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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