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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매드슨'이라는 작가 이름은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전설이다>라는 작품은 어떨까? 최근에 영화 개봉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본래 장르문학계에서도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하던 작품이었다. 홀로 남은 인간과 흡혈귀들의 싸움을 그린 이 소설을 보고 스티븐 킹이 소설가가 되겠다고 결심을 했다고 하니 그 재미가 오죽했겠는가.

 

최근에 그 작가의 <줄어드는 남자>가 소개됐다. 이 소설은 <나는 전설이다>와 비슷한 형식으로 독자들을 긴장시킨다. 쉽게 상상할 수 없는 독특한 상황에 빠진 주인공이 세상과 단절된 채 벌여야 하는 사투를 그린 것이다. <줄어드는 남자>의 ‘남자’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책 제목처럼 매일 줄어드는 것이다. 상상이 되는가? 184cm였던 남자가 매일 ‘조금씩, 꾸준하게’ 줄어드는 것이?

 

남자는 평범했다. 사랑하는 아내가 있었고 귀여운 딸도 있다. 나쁠 건 없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키가 줄어든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하지만 172cm인 아내와 키가 같아지자 이것이 보통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남자는 뭔가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각만 하던 사이, 자고 일어나면 키가 또 줄어들어 있다. 남자는 비싼 진료비를 감당할 각오로 병원에 가지만 병원에서도 쉽게 답을 내놓지 못한다. 그 사이 남자의 키는 계속해서 줄어든다.

 

리처드 매드슨은 극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서로 다른 비극성을 차례로 등장시키고 있다. 최후가 얼마 남지 않은 남자의 모습과 키가 줄어들기 시작한 남자의 모습을 교차시켜서 보여주는 것이다. 전자는 지하실에 갇혀서 거미를 피해 다녀야 하는 남자의 비극적인 일상을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남자의 상대가 거미라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매일 줄어든 남자는, 어느 순간 엄지손톱만큼 작아져있다. 거미에게 그런 남자는 먹잇감에 불과하다. 거미만 두려울까? 모든 것이 다 두렵다. 보일러 소리마저도 괴물의 포효처럼 들린다. 거의 모든 것과의 투쟁을 벌여야 한다. 남자는 두렵다. 더군다나 며칠 후에, 0의 상태가 된다는 걸 알기에 더 무섭다.

 

작가는 남자의 이런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거미를 피해 다니고, 먹을 것을 구하러 다니는 남자의 모습을 어느 모험소설에 견줘도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그려내고 있다. 외로움을 느끼는 감정을 그리는 건 어떨까? 거인처럼 여겨지는 아내와 자식을 그리워하는 그 모습이 우스꽝스럽지만 우습지 않다. 애처로운 감정을 자극하고 있다.

 

키가 줄어드는 모습을 그리는 대목들은 비정한 세상을 보여준다. 세상은 남자를 ‘동물’처럼 취급한다. 구경거리다. 그의 고통과 외로움 같은 것을 세상은 주목하지 않는다. 주목하는 것은 줄어드는 남자에게 여전히 성욕은 있는가, 하는 그런 문제에 불과하다. 작가는 얄미울 정도로 그것 또한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그래서일까. 그 속에서 점점 줄어드는 남자의 슬픔이 더욱 극적으로 다가온다.

 

<줄어드는 남자>는 <나는 전설이다>에 비하면 화려함은 없다. 하지만 장르문학이 화려하다고 성공하는 건 아니다. 그만의 특징으로 독자를 잡아끄는 힘이 중요한데 <줄어드는 남자>의 그것은 <나는 전설이다>만큼 인상적이다. 외로운 남자의 사투를 그렸으며 마지막 순간에 극적인 반전 같은 상황으로 모든 것을 ‘전복’시키는 것까지, <줄어드는 남자>는 독자들을 만족시킬 만한 내용이 많다.

 

공포스러우면서도 기이한 분위기로 무장한 작가의 단편소설들까지 감상할 수 있는 건 어떤가. 읽는 재미를 맛깔스럽게 만드는데 한몫하고 있다. <나는 전설이다>의 리처드 매드슨의 매력을 또 한 번 느낄 수 있는 <줄어드는 남자>, 장르문학의 힘을 톡톡히 발휘하고 있다.


줄어드는 남자

리처드 매드슨 지음, 조영학 옮김, 황금가지(2007)


태그:#리처드 매드슨, #장르소설, #줄어드는 남자, #나는 전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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