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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토론을 아주 잘하는 학생은 찾아보기 힘들다. 활달한 아이들의 경우 거의 훈련없이 자신감 있게 토론에 임하기도 하지만 극히 예외에 속한다. 그래서 토론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의 입을 열게 하는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야 한다. 또한 이야기는 하는데 토론을 제대로 못하는 아이들이 토론의 격식과 속도에 맞출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내가 가장 많이 쓰는 첫번째 방법은 토너먼트다. 이 방법은 찬반토론의 경우에는 어렵고, 논리 대결 토론의 경우에 적당하다. 질문에 맞는 적당한 자기만의 의견을 정한 후 다른 사람과 토너먼트식으로 경쟁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장래 직업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주제를 주고, 각자 나름대로 하나씩 선정하게 한다. 선택은 철저히 다른 것으로 하게 한다. 그리고 아이들끼리 토론을 시킨다.

경기처럼 박진감 넘치고 승부욕을 자극하기 때문에 입을 잘 열지 않는 아이들의 입을 열거나, 처음 와서 토론하기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적절하다. 물론 토론에 익숙한 아이들에게도 적절하게 사용하면 토론 능력을 키우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경기처럼 박진감 넘치고 승부욕 자극

두 번째 방법은 역할 토론이다. 역할 토론은 자신의 견해를 정하지 않고 특정한 처지라고 가정한 후 토론하는 방법이다. <엄마는 파업 중>을 읽고 난 후 한쪽은 엄마, 한쪽은 다른 가족의 역할을 하게 하거나, <토끼전>에서 토끼와 거북이의 역할을 나누는 방법 등이 좋은 예다.

역할 토론의 장점은 특정한 처지에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기 때문에 자기 견해를 세워야 하는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해준다는 것과 토론보다는 연극적 요소가 강하기 때문에 말문이 잘 열린다는 것이다.

역할토론은 순번을 정해서 계속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는데 순회 역할토론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순회 역할토론은 홀수일 때 묘한 재미를 선사한다. (가), (나), (다) 세 명의 아이가 있고 역할은 두 가지가 있다고 하자. 엄마와 자식 사이에 논쟁을 벌이는데 첫 번째 사람이 자식하면 그 다음 사람은 엄마, 그 다음 사람은 자식, 그 다음은 엄마 순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토론 숫자가 홀수이기 때문에 그 다음 차례는 항상 조금 전에 자신이 이야기했던 것과 반대가 된다. 위의 예에서 (가)-엄마, (나)-자식, (다)-엄마, (가)-자식, (나)-엄마, (다)-자식이 된다. 이렇게 상황에 맞추어 순발력 있게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에 생각이 널뛰기처럼 넘나들어야 한다.

이런 경우 자신이 조금 전에 했던 주장을 그 다음에 반박해야 하는 황당한 상황도 겪는다. 하지만 논리력은 그만큼 향상되고, 자연스럽게 생각의 다름에 대해 이해하는 기회도 얻게 된다.

조금 전에 말한 자기 주장을 자기가 반박해야 하기도

세 번째 사용하는 방법은 역할 토론도 잘 되지 않을 경우 상황 자체를 극단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처음으로 논술 수업을 하는 아이들만 모인 반에서 수업할 때였다. 무척 활달한 아이들이었지만 토론은 잘 하지 못했다. 아이들은 어떤 식으로 이야기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서로 역할을 주어서 토론하게 했는데 그것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장난만 치고 말장난만 했다. 그래서 상황을 극단적으로 몰아갔다.

"지금 선생님이 너희들에게 숙제를 내줄 거야. 다음 시간 책을 읽고 독후감을 2000자 정도 써오고, 논술문은 1000자를 써와.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을 5분 동안 발표할 분량으로 해와."

아이들은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린가 하며 의아해 했다. 무슨 이런 황당한 경우가 있나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잠시 아이들을 당황하게 한 후 말을 이었다.

"자, 지금부터 날 설득해 봐. 만약 너희들이 나를 잘 설득하면 숙제가 줄어들거나 없어질 수 있지만, 설득하지 못하면 해야 해."

그때부터 아이들의 입이 열렸다. 하지만 처음에는 설득이라기보다 협박이었다.

"논술 수업 그만 둘 거예요. 그래도 내주실 거예요?"
"야~, 비비탄 가져와."

귀여운 협박이었다.

"우리는 지금 논술 수업을 하고 있어. 협박하지 말고 설득해."

처음에는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던 아이들은 차츰 근거를 들어 날 설득하려 했다. 학원이나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가 얼마나 많은지, 글쓰기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자신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인지 근거를 잘 제시하면서 이야기했다.

말해야 할 필요성 있으면 적극적이기 마련

물론 억지도 있었지만 어떤 수를 써서라도 숙제를 없애겠다는 의지로 가득했고, 적극적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는 아이들의 설득에 넘어갔다.

"좋아. 아주 설득 잘하네. 너희들 말이 맞다. 선생님이 내주는 숙제는 취소야. 그런데 지금까지 너희들이 말하는 걸 보면 숙제를 줄여야 한다, 부담이 크다는 주장을 하면서 여러 가지 근거를 제시했지? 토론할 때도 마찬가지야.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적절한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중요해. 알았지?"

아이들의 표정은 숙제를 면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선생님이 왜 이런 상황을 만들었는지 이해한다는 표정이었다.

사람은 필요가 있어야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말해야 할 필요성, 반드시 이겨야 할 필요성이 있을 때 적극적이기 마련이다. 늘 하는 찬반토론, 늘 하는 1분 스피치보다 다양한 형식의 자극은 수업에 변화를 주고, 활기를 불어 넣는다. 그래서 논술을 지도하는 사람은 항상 새로운 형식의 토론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식의 수업이 누적될 경우 부작용이 하나 있기는 하다. 오랫동안 수업을 함께 해온 아이들이 있었다. 당할 만큼 당해서인지 이 아이들은 토론 주제가 나오면 알아서 적극적으로 이야기했다. 미적미적 미루다가 황당한 상황에 처하기보다 미리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무도 이런 상황을 많이 당하고 나더니 불평이 대단했다. 이 아이들이 새로 들어온 아이에게 한 말이다.

"야, 우리 선생님은 추첨해서 글을 두 배로 더 쓰게도 한다. 게임해서 지면 몇 백 자씩 붙여주기도 해. 그뿐인 줄 아냐. 줄 잘 서면 반밖에 안 써."

이렇게 귀여운 항변을 하지만, 토론 상황이 되면 아이들은 또다시 적극적이 된다.


태그:#논술, #토론, #박기복, #글쓰기, #칭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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