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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원효(海東元曉) 척판구중(擲板救衆)’.

해동국의 원효가 판자를 던져서 대중을 구하다!

 

전설이란 신비하면서도 어이없는 이야기다. 지극히 비논리적이면서 슬며시 논리적이다. 그리고 기이하면서도 헛웃음이 나오는 이야기다. 조선국에서 원효라는 고승이 천리안으로 중국 태화사의 지붕이 무너지려고 하는 것을 보았단다. 그는 급히 판자 하나를 구해서 이 여덟 글자를 새긴 후에 당나라로 멀리 던졌다고 한다.

 

한편, 태화사에서는 구름 같은 대중이 몰려들어 법회를 열고 있었는데, 갑자기 허공에서 날아온 판자를 보고 그 주변으로 몰려들었다지. 그 직후 그들이 법회를 열고 있던 법당의 지붕이 와르르 무너졌단다. 그래서 천명의 대중이 목숨을 구했다나 어쨌다나.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다. 그 천명의 대중은 자기들의 목숨을 구해준 원효를 찾아 해동국으로 오게 됐고, 원효는 그들을 자신이 수도정진하고 있는 산으로 데려간 후에  불법을 설했다고 한다. 그 천명의 대중은 원효의 강의를 들은 후에 모두 득도하게 되었다지. 그래서 이 산의 이름이 그때부터 천성산(千聖山), 즉 천명의 성인이 생긴 산이라고 불리게 되었단다. 참 재미있으면서도 희한한 이야기다.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에 있는 홍룡사는 바로 이 천성산 아래에 그림처럼 숨어 있는 아담한 사찰이다. 특히 이 사찰은 홍룡이란 폭포로 유명하다. 사찰 경내에 20m의 높이를 자랑하는 폭포가 풍경소리를 벗 삼아 우렁찬 몸매를 시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찰의 창건 유래에도 어김없이 원효대사가 등장한다.

 

참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의문이 든다. 원효대사는 어떻게 생전에 그리 많은 사찰을 건립하였는지. 저 멀리 포항에도 원효대사, 경남 어느 골짜기에 있는 사찰에서도 원효대사, 부산시 기장군 깊은 계곡 속의 사찰에도 어김없이 그가 등장한다.

 

혹자는 두 가지로 해석한다. 하나는 절을 창건한 이들이 고명한 원효대사의 이름을 팔았다는(?) 설이다. 또 하나는 원효대사가 국찰인 관계로 절을 세울 때 최소한 원효대사에게 결재라도 받았을 것이란 설이다.

 

각설하고, 홍룡사의 원래 이름은 낙수사였다고 한다. 신라 문무왕 대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건립 당시에는 천성산 제일 대가람이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어 피폐해졌다고 한다. 지금은 대웅전과 무설전, 종각, 선원 등이 건립되어 제법 사찰로서의 위용을 갖추게 되었다.

 

홍룡사의 초입에 들어서면 두 갈래 길이 나타난다. 하나는 대웅전이 있는 절 마당으로 가는 길이요, 또 하나는 관음전과 홍룡폭포로 가는 길이다. 먼저 이 절의 특징을 들라면 철저히 관음성지를 표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절의 제일 꼭대기에는 대웅전이 아니라 천수관음상을 모신 무설전이 자리하고 있다. 또한 홍룡폭포 옆에는 백위의 해수관음상이 있는 관음전이 있다.

 

비가 많이 온 다음날, 이 관음전 마루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으면 폭포가 내리꽂히는 소리에 온몸이 전율에 휩싸인다고 한다. 또한 그 전율에 가만히 몸을 내맡기다가 문득 눈을 들어 폭포를 바라보면 폭포 아래에서부터 피어오르는 무지개 빛에 그만 눈이 부시다고 한다.

 

때론 상상이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법. 이 무지개를 따라 폭포 아래에서 휘황찬란한 용이 여의주를 물고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는 상상의 나래를 펴보자. 그 아름다운 광경에 인간세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심장 깊숙이 느껴질 것이다.

  

 

홍룡폭포는 삼층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폭포이다. 제일 윗단은 높이가 80척이며, 중층은 46척, 하층은 33척이라고 한다. 기암괴석이 폭포수 뒷면에 있어 물이 바위에 부딪히면 물보라가 사방으로 퍼지면서 마치 옥구슬이 산산이 부서지는 착각을 준다고 한다. 또한 기암괴석에 피어난 푸른 이끼의 영롱한 빛깔은 가히 천상의 세계를 닮았다고 하니 그 얼마나 수려한 풍광이겠는가(아쉽게도 현재는 물이 많이 말라 그 위용을 볼 수가 없다).

 

무지재 빛을 따라 천룡이 폭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을 간직한 홍룡사. 너무나 바쁘신 원효대사님과 관세음보살님의 친견을 서리서리 마당에 간직한 홍룡사. 그 홍룡사에서 그윽한 풍경소리와 폭포의 합주곡을 듣는 것은 해동국에 태어난 모든 이의 특권이리라.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송고함


태그:#홍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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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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