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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 가보니까 사고가 많이 났는데도 경찰서가 하나 없어 주민에게 물어봤더니 십수년간 요청했다고 하더라. 사건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도 범인 하나 못 잡고, 경찰서 하나 세우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나? 정부가 국민을 위해 일한다고 할 수가 있나?"

 

이명박 대통령이 공무원 휴무일인 토요일(15일) 아침 7시 30분에 서울경찰청에 들러 한 말이다. 이 발언은 보수신문들에 의해 매우 우호적으로 보도되었다. 그들에게 이 발언은 부지런히 일하는 대통령이 현장에 나가 매우 시의적절한 지적을 한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이 발언에서 적지 않은 문제점을 보았을 것이다.

 

사실 경찰서 하나를 세워야 한다는 투의 이 발언은 이 대통령의 이전 발언들에 비하면 단연 무게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이 대통령은 전봇대 두 개를 뽑으라는 지침을 내리기도 했고, 텔레비전 특정 프로그램의 선정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또한 숭례문 복원의 국민성금 조성, 설렁탕 국수사리의 쌀 대체 등을 제안하기도 했다. 대통령은 '재래시장' 대신 '전통시장'을 명명해 주었으며, 라면 값 100원 인상의 심각성을 환기하기도 했다.

 

교정의 담배꽁초 줍는 총장님

 

교정을 돌아다니며 휴지나 담배꽁초를 줍는 대학총장이 있다고 하자. 우리는 그 총장님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물론 경영학에서는 이런 총장을 좋게 보지 않는다. 경영학에서는 교정의 쓰레기나 치우는 총장을 전형적으로 무능한 총장의 유형에 자리매김한다.

 

항간에 떠도는 말로 '오너의 4유형'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오너의 '머리'와 '성실성'을 기준으로 나눈 유형이다. 4가지 유형 중 '머리가 좋고 게으른 오너'가 최고이고 '머리는 나쁜데 부지런하기만 한 오너'가 최악이라는 것이다(물론 이것은 사원들에게 물어본 것이다).

 

그렇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현장지도성 국무 수행은 나라와 국민을 위해 어떤 작용을 할까? 그것은 일단 국민들에게 부지런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순기능이 있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매정한 말 같지만 더 이상의 순기능은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아니 에피소드나 현장탐방을 중시하는 일부 순진한 국민들에게 대리만족감을 주는 측면도 간과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이것은 따지고 보면 순기능도 아니다.

 

대통령 현장지도의 위험성과 즉흥성

 

현대는 다원화된 시대이다. 이익집단도 다양하고 권력구조도 다원화되었다. 불과 30~40년 전이지만 박정희 시대와는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라면 다원화된 국정의 구조적인 조정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현장만을 지나치게 중시한다면 속담 그대로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국정의 총체적 난맥상을 초래할 위험 요인이 된다.

 

대통령이라면 '라면 값 100원'보다 '국제유가 100달러'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은 "유가가 오르는 것은 모든 비산유국의 현상"이라고 하더니 마트에 가서 '신(辛)라면' 한 봉지를 들고 아주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밀가루 가격 걱정보다는 식량 위기에 대처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았으면 한다. 마찬가지로 전봇대를 뽑는 대통령보다는 부정부패를 뽑는 대통령을 보고 싶은 것도 같은 이치이다.

 

아무래도 현장지도는 즉흥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문제점을 진단하는 데 정교함이 따르지 않게 된다. 이 대통령은 '설렁탕 국수사리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쌀이 부족해서 생긴 현상이다'고 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물론 박정희 시절 분식이 장려된 적은 있다. 하지만 원래 설렁탕에는 사리가 없었다. 그런데 박정희 시대보다 훨씬 오래 전에 조선에서 쌀을 약탈해가던 일제가 조선인의 쌀 소비를 줄이기 위해 밥 대신 밀가루 사리를 넣게 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런 발언에는 국민들에게 역사를 잘 못 알리는 부작용도 생긴다고 본다.

 

이번에 대통령이 서울경찰청에 가서 한 발언에도 간과할 수 없는 무리와 오류가 있다. 대통령은 '화성연쇄살인'을 지적했는데 사실 그 사건은 화성에서만 발생한 것이 아니다. 범죄학자인 표창원 교수는 '화성연쇄살인은 없다'라고 주장한다.

 

언론이 붙인 화성연쇄살인이라는 명칭은 잘못된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사건은) 일단 화성 지역에서만 발생한 것이 아니다.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이는 강간 살인이 수원에서도 발생했다. 더 나아가 수사 담당관인 하승균씨는 그의 저서에서 범인이 화성 사람이 아니라 수원 거주자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서울경찰청 살인사건 전문 김원배 형사는 1996년 11월 오산시에서 발견된 여고생 사체 역시 동일범의 소행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화성이나 수원이 아닌 평택이나 용인 등 인근 지역에서 추가 범행이 생긴다 하더라도 화성연쇄살인이라는 강한 고정관념 때문에…후략)

 

화성이 아니라 경기 남부입니다

 

표창원 교수는 '화성연쇄살인'이 아닌 '경기남부연쇄살인'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으며 이 주장에 호응하여 이제는 대부분 사건 명칭을 '경기남부연쇄살인'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런데 대통령만 여전히 '화성연쇄살인'이라고 하며 화성에 경찰서 하나도 못 세우느냐고 질책을 하고 있는 딱한 형국이 되었다.

 

대통령의 현장 발언이 즉흥적이어서 부정확하다고 하더라도 이를 따라야 한다고 여기는 공무원이 많다. 어떤 소신 있는 공무원이 나서서 "대통령님, 화성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정확히 말해 경기 남부입니다. 그리고 경기 남부에는 이미 경찰서가 많이 들어서 있습니다. 언론 보도만 보고 불안한 나머지 경찰서 만들어 달라고 하는 민원을 다 들어 줄 수는 없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또한 공무원들은 평소에도 대통령의 현장 방문에 초미의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일상 업무에 차질이 빚는 것은 물론이고 모든 것을 대통령에게 인정받는 쪽으로만 진행시킬 것이 아닌가?

 

대통령은 재래시장을 전통시장이라고 명명해 주었다. 물론 좋은 뜻에서 그리 한 것이라고 믿어진다. 하지만 언어란 사회적 약속이 있어야 정착된다. 그러니 정책적으로 조어를 할 때에도 깊고 넓은 사회적 검토가 선행되는 것이다.

 

우리는 '재래시장'이라는 어감이 좋지 않다는 건의를 받았을 때 "전문가들에게 좋은 명칭을 연구해 보라고 하겠다"라고 대답하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아울러 연쇄살인사건에 대해 '경찰서 하나' 운운하는 대통령보다는 연쇄살인에 대한 과학수사의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하는 대통령을 보았으면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도자는 국민을 섬겨야 하고 공무원은 머슴'이라고 단언했다. 듣기 좋은 말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이런 판단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유추해 볼 때 다시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가복음 10장 42~44)

 

이명박 대통령의 '국민 섬기기론'이나 '머슴(종)론'은 아마 바이블에서 읽었거나 교회에서 들은 말이 아닐까 한다. 사실 냉철히 말해 현대의 대통령은 국민을 섬길 필요까지는 없는 것이고 민주 사회의 공무원이 국민의 머슴이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현대의 대통령과 공무원은 훨씬 더 복잡해지고 정교해져야 한다.

 

이런 저런 것을 모두 고려해볼 때 지금 이명박 대통령에게 화급히 필요한 것은 '대통령학'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대통령이 어떤 일을 하는 것인지를 지금이라도 제대로 알게 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김갑수 기자는 작가로서 오마이뉴스에 역사팩션 <제국과 인간>을 연재 중입니다.


태그:#현장지도, #대통령학, #연쇄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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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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