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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대 시절, 눈만 뜨면 삽을 드는 게 일이었으니

삽질이라면 나도 제법 할 줄 알지

삽으로 흙을 떠서 던지면

삽 모양 그대로 흙이 날아가기까지

아침마다 굽은 손가락 억지로 펴가며 배웠지

내가 아무리 구덩이를 잘 파고 공구리를 잘 비벼도   

그래도 어디 농민들 삽질만큼이야 했겠나

노동자들 삽질만큼이야 했겠나

한 삽을 뜨면 한 톨의 쌀이 되는 삽질

한 삽을 뜨면 한 장의 연탄이 되는 삽질

그런 삽질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지

그래도 한때나마 삽질을 해본 나는

그 시절, 삽에 대해 경배하는 법을 배웠네

삽질을 하다 상관이 지나가면

총 대신 삽을 들고, 받들어 삽!

그런 군인정신을 통해서가 아니라

삽질을 하려면 반드시 허리를 굽혀야 한다는 사실

땀 흘리지 않고 삽질하는 비책은 없다는 사실

한 삽에 흙 한 덩이 이상 뜰 수 없다는 사실

하나하나 깨우치는 만큼 삽날이 닳아갔네

삽날이 닳아 없어지는 속도에 맞춰 시간이 갔고

제대한 지 어느새 스물 몇 해

삽질하는 법, 이제는 내 몸에서 잊혀졌지만

삽질을 모욕하는 말, 참을 수 없네

삽질 한번 안 해 본 것들이 툭하면

-삽질하고 자빠졌네

무심코 내뱉는 말, 죄 없는 삽이 불쌍했네

그러더니 새만금을 막고 천성산을 파내고

이제는 한반도 운하까지 뚫겠다며

거대한 삽을 들어 올린다는 말이 들려오네

거대한 삽질 한 방이면

경제가 살고 나라가 산다는 말

새빨간 거짓부렁이란 걸 나는 알고 있네

내가 배운 삽의 정신과는 정반대인

저 거대한 거짓의 삽

아, 한 가지 더 배운 게 있었네

삽날을 치켜들면 그대로 무기가 된다는 사실!

한바탕 삽의 전쟁이 다가온다면

나는 정직한 삽의 편에 설 것이네

삽을 경배할 줄 모르는 저 거짓 무리들의 정수리를

내 정직한 삽으로 후려치고자 하네

그 옛날 배운 대로

어깨 위로 삽!

성스러운 전쟁에서 물러서지 않기 위해

내 마음의 삽을 벼리고 또 벼리네

삽날 위에서 햇살이 반짝, 튕겨오르네

덧붙이는 글 | [필자 약력]
박일환 : 1961년생. 1997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푸른 삼각뿔>이 있다. 


#대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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