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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자루를 쥔 이 당선인 측이 작심하고 영남의 친박을 친다면 당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다만 그 경우 칼을 맞은 친박 인사들이 집단 탈당한 뒤 제3지대에 모여 '박 전 대표도 동참하라'고 요구한다면 박 전 대표가 가까스로 공천을 받은 몇몇 측근만을 데리고 당에 남아있지는 못할 것이다." (지난 2월초 친박 모 의원이 소개한 시나리오, <신동아> '박근혜계 공천생존투쟁기'에서)

 

지난 2월 초 한나라당의 이방호 사무총장은 '영남권 40% 물갈이론'을 제기했다. 이는 세력 기반을 거의 영남권에 두고 있는 박근혜 대표 측으로서는 서늘하게 들릴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신동아> 같은 잡지의 보도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는 거지만, 아무튼 지금 한나라당의 공천 전쟁은 위 시나리오와 흡사하게 돌아가고 있는 형국인 것만은 사실이다.

 

당시 박근혜 전 대표는 이 당선인을 만나 모종의 담판을 지은 듯 했다. 박 전 대표 측에서는 이 당선인으로부터 약 80명 정도의 공천 지분을 받은 것으로 일부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박 전 대표 측에서는 반절에 불과한 약 40명 정도의 공천밖에는 받지 못했다.

 

친박연대와 친이연대의 영남 이전투구

 

마침내 한나라당의 김무성·엄호성 등의 공천 탈락 의원들과 서청원, 홍사덕 전 의원 등이 모여 이른바 '친박연대'라는 이름을 공개적으로 내걸었다. 이는 한나라당과 일전을 불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친박연대'라는 명칭이 당사자인 '박근혜'와 교감 없이 이루어졌을까? 상식적으로 보아서 도저히 그럴 수는 없는 거라고 본다.

 

"내 생각도 똑같다. 국민이 볼 때 '이 사람들 밥그릇 챙기나' 이런 말이 나올 수 있다. 잘해야 할 책임이 당대표에게 있고, 우리가 옆에서 잘해야 한다."

 

이것은 지난 2월 이명박 당선인이 박근혜 전 대표에게 한 말이다. 하지만 결과는 영락없이 이 당선인이 걱정(?)한 대로 되고 말았다. 이번 한나라당의 공천 싸움은 전형적인 밥그릇 싸움이 되고 만 것이다.

 

"붕당은 싸움에서 생기고 싸움은 이해관계에서 생긴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 열 사람이 굶주리고 있는데 한 그릇의 밥을 같이 먹게 되면, 그 밥은 다 먹기도 전에 싸움이 일어날 것이다. 조선의 붕당도 어찌 이와 다를 것이 있겠는가?" (이익의 ‘붕당론’에서) 

 

한나라당은 이회창의 선진자유당에 이어 이제 '친박연대'까지 나타나게 되었으니 결국은 세 갈래로 갈리고 만 셈이다.

 

사실 지난 대선 전 초반까지만 해도 한나라당은 명실상부하게 한국의 보수우익을 총괄하던 정치세력이었다. 거기에는 '올드라이트'도 있었고 '뉴라이트'도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도 그럴지는 회의적이다. 이미 올드라이트인 이회창 계열이 한나라당에 등을 돌렸다.

 

이번에 결성된 '친박연대'는 무엇일까? 매정하게 말한다면 '낙천자 연대'라는 이름이 더 걸맞을 수도 있는 집단이다. 좋게 '라이트'로 말해준다면 '헤비라이트' 정도로 명명할 수 있으려나? 그렇다면 이제 한국의 '라이트'는 뉴라이트·올드라이트·헤비라이트 등으로 3색 분열한 것이다. (라이트가 이렇게 다양할지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단적으로 묻는다. '친박연대'라는 명칭이 가당하다고 보는가? 당신들이 박근혜 전 대표를 그리도 존경하는가? 아니면 그녀에게 있는 대중적 인기를 조금이라도 받아먹겠다는 심산인가? 명칭부터가 엽기적이라고 생각들지는 않은가? 그리고 정작 당사자인 '박근혜'는 왜 '친박연대'에는 없는 것인가? 지나치게 기회주의적이고 나약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은가?

 

올드라이트 격인 자유선진당에는 민주당의 조순형·유재건에 이어 이용희가 가세하더니 한나라당의 박성범 의원 부인까지도 들어갔다. 만약 이인제 의원마저 여기로 간다면 선진자유당은 '철새당'에 있어서 헌정사상 가장 독보적인 위치를 점할 것 같다. 요컨대 선진자유당의 '명분 없음'은 '친박연대'나 진배없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보수우익의 3색 분열

 

'뉴라이트'라고 하는 한나라당에게는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이 있다. 그들은 정치를 노골적인 밥그릇 싸움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그들은 하나 같이 독식주의자처럼 비친다. 따라서 골수 '친이'가 아니면 그들은 아무와도 함께 하려 하지 않는 것 같다.

 

이번 공천은 친이로 친박을 치는 '이이제박(以李制朴)'뿐 아니라 친이로 되레 친이를 치는 '이이제이(以李制李)'의 묘수까지 드러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도움을 실컷 받아놓고서는 그의 차남인 김현철은 물론 박희태·박준웅·김무성 등 전 김영삼 사람들을 단숨에 일소해 버리기도 했다.

 

물론 이들에 대한 공천이 정당한지 아닌지는 따로 따질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도 무자비하게 쳐낼 요량이었으면 아예 도움을 사양했어야 한다. 오죽 했으면 김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아야 한다.”고 말했을까? 아무리 권모술수의 정치판이라고 하더라도 최소한도의 인간적 신의를 저버리는 집단은 뜻을 이루지 못한다. 정치도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올드' '헤비' '뉴'라이트로 3색 분열된 한국 보수우익들의 진로는 매우 험난하고 난잡해 보인다. 왜냐 하면 그들의 싸움에는 내세울 만한 그 어떤 명분도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싸움에 비하면 조선의 사색붕당은 말 그대로 '양반'이었다. 그들은 이 붕당 저 붕당을 기웃거리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싸울지언정 명분을 앞세울 줄은 알았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보수우익들이 벌이는 싸움은 이런 것마저도 노골적으로 팽개쳐 버리는 위험한 수위에 올라서 있다.

덧붙이는 글 | 김갑수 기자는 작가로서 오마이뉴스에 역사팩션 <제국과 인간>을 연재 중입니다.


태그:#붕당, #뉴라이트, #올드라이트, #헤비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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