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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대운하 백지화를 위해 '종교인 생명평화 100일 도보순례단'이 1일 오전 부산 을숙도 낙동강 물문화관 광장에 도착한뒤 대운하 사업 철회를 촉구하는 미사를 드리고 있다.
 한반도대운하 백지화를 위해 '종교인 생명평화 100일 도보순례단'이 1일 오전 부산 을숙도 낙동강 물문화관 광장에 도착한뒤 대운하 사업 철회를 촉구하는 미사를 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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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대운하 백지화를 위해 '종교인 생명평화 100일 도보순례단'이 을숙도 낙동강 하구둑을 따라 걷고 있다.
 한반도대운하 백지화를 위해 '종교인 생명평화 100일 도보순례단'이 을숙도 낙동강 하구둑을 따라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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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가 맑은 강물을 만날 때는 우리 순례단의 온몸에도 생기가 돌았고, 골재채취 등으로 내장이 파헤쳐지거나 각종 폐수로 시커멓게 죽어가는 낙동강과 마주칠 때는 꼭 그만큼 아팠으며, 남몰래 눈물을 흘려야만 했습니다."

지난 2월 15일 영하 15℃의 강추위 속에서 길을 떠났던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이 1일 부산 을숙도에 도착했다.

한강 하구인 애기봉 전망대에서 출발해 한강과 남한강·낙동강 1500리 길을 50일동안 묵언 순례한 것이다. 개신교·천주교·불교·원불교·성공회 등 5대 종단 종교인들이 함께 한 길이다.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의 일원인 김민해 목사는 이날 부산 을숙도 문화회관 앞 원형 광장에서 '을숙도 선언'을 비장한 목소리로 읽어 내려갔다. 천주교 신자 등 500여명의 시민들은 숙연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순례단은 평일에는 50여명, 주말에는 수백명의 참가자들과 함께 강변 길을 걸어왔습니다. 연인원만 1만명 이상의 사람들을 만나 위기에 처한 생명의 강을 위해 참회와 성찰의 기도를 하면서 '이명박표 한반도대운하 구상'이라는 유령의 실체를 두 눈 똑똑히 보았습니다."

김 목사는 이어 "특정 지역에서는 돌을 맞을 각오로 다녔지만, 찬성률이 매우 높다고 알려진 여주·충주·문경·구미 등지를 지날 때는 되레 환영을 받았다"면서 "여주 중앙시장에서는 풍물패들이 환영해주었고, 문경의 한 이장은 '500년 가까이 된 마을이 사라지게 되었다'며 눈물의 호소를 했다"고 보고했다.

특히 김 목사는 "문경 새재에서는 250여명의 개신교 목회자들과 신도들이 모여 산상기도회를 열었고, 대한불교 조계종 특별종립선원인 봉암사는 속세의 일로는 사상 처음으로 산문을 열기도 했다"면서 "구미에서는 전국 문화예술인들이 문화축전을 열어주었고, 창녕군 남지에서는 원불교에서 기도법회를 봉행했으며 청도 운문사의 강사 스님과 학인 스님 200여명이 동참해 신심어린 발원문을 발표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번 순례의 길이 항상 즐거웠던 것은 아니었다면서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단장인 이필완 목사는 몸살과 독감으로 강둑길에 쓰러진 뒤 깨어나자마자 엉엉 울었고, 수경 스님은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어느 성당의 성모마리아상 앞에서 남몰래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하느님 몸에 독극물을 퍼붓는 것과 같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성명

전종훈 신부와 수경 스님이 격려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전종훈 신부와 수경 스님이 격려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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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 신부는 이날 천주교의 미사가 끝난 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천주교 창조보전 전국모임의 공동 성명을 대독했다.

최 신부는 '인간의 무지와 교만이 빚어낸 한반도대운하 구상' 제하의 성명을 통해 "이미 여러 방송과 언론이 경제와 환경, 역사와 문화 등 전 분야에 걸쳐 한반도대운하에 관한 검증을 마쳤다"면서 "운하의 효과는 겨자씨만한데, 부작용은 코끼리와 같다는 게 한결같은 결론"이라고 일갈했다.

최 신부는 이어 "민심을 읽지 못하는 이명박 정권은 마치 성서의 유다와 같다"면서 "이 정권은 돈의 우상에 사로잡힌 유다가 스승 예수를 '은돈 서른 닢'에 팔아넘겼듯이 성장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창조물인 강과 산을 건설 대기업들에게 팔아넘기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 신부가 대독한 성명은 다음과 같은 말로 맺었다.

"지구는 하느님의 몸과 같은 곳입니다. 들판은 하느님의 살이고 산맥은 하느님의 뼈들입니다. 물이 흐르는 강은 하느님의 핏줄입니다. 큰 강은 동맥이요, 작은 강들은 정맥이며 실개천은 모세혈관과 같습니다. 온 몸으로 피가 돌아 생명을 키우듯 강은 국토의 온 몸을 돌고 흐르며 수많은 생명을 살립니다. 그런 강을 파헤치는 것은 하느님의 혈맥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강에 콘크리트를 붓는 것은 하느님의 몸에 독극물을 퍼 붓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순례단을 따라 나섰던 김규봉 신부도 잠시 미사를 집도하면서 "강물이 많은 생명을 품으면서 흐르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이 강물로 흐르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50일동안 순례단을 이끌어왔던 이필완 단장(목사)는 "100일동안의 순례 중 이제 막 절반을 걸어왔지만, 이제 시작이다"라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순례단의 총괄 팀장인 이원규 시인도 "위기에 처한 민족의 젓줄 낙동강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고, 자꾸 눈물이 나왔다"고 말했다.

이날 '생명의 강, 그 평화를 기원하는 미사'에는 낯익은 얼굴도 눈에 띄었다. 삼성 비자금 등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 김부선 진보신당 홍보대사, 조승수 전 의원, 이덕우 변호사 등이 멀찌감치에서 미사를 지켜봤다.

"환경은 후손에게 잠시 빌려온 것"

수자원공사가 환경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세워 놓은 홍보물이 눈에 띈다.
 수자원공사가 환경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세워 놓은 홍보물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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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대운하 백지화를 위해 '종교인 생명평화 100일 도보순례단'이 을숙도 낙동강 하구둑을 걸으며 어린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한반도대운하 백지화를 위해 '종교인 생명평화 100일 도보순례단'이 을숙도 낙동강 하구둑을 걸으며 어린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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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순례단이 을숙도 낙동강 하구둑 앞에서 대운하 사업 철회를 촉구하며 큰절을 하고 있다.
 도보순례단이 을숙도 낙동강 하구둑 앞에서 대운하 사업 철회를 촉구하며 큰절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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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날 순례단은 오전 9시에 부산 삼락공원에서 출발해 3시간여 동안 걸어 을숙도에 도착했다. 이 날 행렬에는 100여명의 수녀들도 참가했다. 부모의 손을 잡고 참가한 어린아이들도 눈에 띄였다.

이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현대건설 사장 시절 만든 낙동강 하구 둑에서 인간띠 잇기를 했고, 낙동강이 훤히 보이는 을숙도의 한 갈대밭에 일렬로 서서 삼배를 올렸다. 그 곳에 한국수자원 공사가 설치한 커다란 현판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우리의 환경은 후손에게 잠시 빌려온 것입니다."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은 오는 5일부터 50일간의 일정으로 영산강 하구를 출발해 새만금을 거쳐 금강을 순례한 뒤 서울로 입성할 예정이다.

말없는 그들... 그러나 세상은 바뀌고 있다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에는 수경스님, 도법스님, 문정현·문규현 신부 등 언론의 서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요 인사들이 함께하고 있으나, 그들은 언론의 마이크를 외면했다.

도법스님에게 운하에 대한 소견을 물으면 항상 이같은 답변이 따라왔다. "난 그냥 따라왔을 뿐이야. 난 그냥 참회할 뿐이야."

수경 스님도 마찬가지였다. "난 묵언 수행 중이야."

문정현·문규현 신부도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했다. "우린 그냥 온 것이야. 그리고 맨날 참여하는 것도 안닌데, 다른 사람한테 물어봐."

그들은 영하 15℃의 추운 날씨에 노숙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관 스님(김포 불교환경연대 대표)는 "이런 노숙자 신세는 이번이 처음이야"라고 말하면서 껄껄 웃었다.

5개 종단의 종교인들로 구성된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은 항상 말을 아꼈지만, 50일간의 묵언 순례 이전과 이후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지난 12일 김포 애기봉 전망대를 출발할 때에는 운하에 대한 찬반 여론이 비등했다. 하지만 각 종단에서 운하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서울대 교수들도 나서서 '한반도대운하 건설을 반대하는 모임'을 만들었고, 지금은 115개 대학교 2500여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조직으로 확대됐다. 문화예술계와 현업 단체들도 나서고 있고, 1일에는 언론인 100인의 운하반대 선언이 발표됐다.

결국 순례 이전에 운하 찬반 여론은 비등했으나, 최근 문화일보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찬성은 20.9%에 불과하고, 반대 여론은 이보다 3배 이상 많은 63.9%에 달했다. 이런 여파로 한나라당은 총선 공약에서 운하를 제외하는 등 정치권의 주요 이슈로 등극했다.

'순례단이 출발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상황은 어렵지 않았을까요'? 낙동강 하구 둑방길을 말없이 걷고 있는 도법스님에게 다가가 말했더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그렇지는 않겠지.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운하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데도 아무런 말을 못할 때가 있었잖어. 그런데 이분들이 이렇게 나서니까, '아하,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구나'하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은 사실인 것같애. 개발이 전부가 아니라 생명가치에 기반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얘기지."


태그:#경부운하, #순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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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환경과 사람에 관심이 많은 오마이뉴스 기자입니다. 10만인클럽에 가입해서 응원해주세요^^ http://omn.kr/acj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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