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하얀 목련꽃이 어느새 목련이 만개해 있다. 언제나 목련꽃이 피기 시작하면서 봄이 부풀어 오를 이때쯤이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쪽빛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높은 언덕에 위치한 학교 도서관 앞에 서 있던 목련꽃, 그 아래 벤치, 따스한 봄날 푸르른 하늘을 배경으로 한껏 부풀어 올라 터질 듯한 목련꽃을 올려다보면서 발치께에 흐드러지게 핀 노란 개나리처럼 웃음을 터뜨리는 말총머리 묶은 내가 있다. 한껏 마음이 부풀대로 부풀어 오른 소녀들이 거기 있다.

 

참으로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어찌 그 장면은 컬러 사진처럼 빛도 바래지 않는 것일까.

살아가면서 대부분의 기억들이 추억의 책장에 켜켜이 쌓여 빛을 잃어가면서 희미해진다. 그런데 또 어떤 추억들은 세월이 가도 그 빛이 바래지 않고 그때 그 장면이 선명하고 생생하게 되살아 날 때가 있다. 크게 중요하지도 않고, 또 충격적인 어떤 영상도 아닌 것들이 아주 중요한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그 중에 하나가 학교 도서관 앞, 벚꽃이 만개해 분분히 날리고, 개나리는 개나리대로 지천에 피어 있던 어떤 봄날, 봄 하늘을 배경으로 하늘을 향해 기도처럼 뻗쳐 올라간 하얀 목련꽃, 그 아래 벤치에 친구랑 나랑 앉아 있다. 주변엔 그 또래의 여자애들이 끊임없이 수다를 떨고 있다. 사춘기시절엔 굴러다니는 소똥만 봐도 웃음을 터뜨린다고 했던가.

 

깔깔대며 웃고 떠드는 말총머리의 소녀들 위로 부픈 하늘 위로 뻗는 목련꽃이 터질 듯 부풀어 있다. 결코 화려하지도 않고 소박하지만 고혹적인 단아함과 우아함이 있는 목련꽃, 꽃말은 ‘연모’라 한다.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내 귓가에 저 멀리,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학교, 거기서 아련하게 울려 퍼지는 노래 있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고향 멀리 떠나와

이름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목련꽃 그늘 아래서

긴 사연의 편질 쓰노라

클로버 피는 언덕에서 휘파람 부노라

고향 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나무 아래서 별을 보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학창시절엔 ‘목련꽃 그늘 아래서’를 불렀다면 사회에 나가서는 목련이 필 무렵이면 언제나 양희은의 노래, ‘하얀 목련’을 그렇게 불러댔었지. 막연한 그리움을 안고서.

 

“하얀 목련이 필 때면 다시 생각나는 사람 봄비 내린 거리마다 슬픈 그대 뒷모습 하얀 눈이 내리던 어느 날, 우리 따스한 기억들...그대 떠난 봄처럼 다시 목련은 피어나고 아픈 가슴 빈자리엔 하얀 목련이 진다.”

 

이 봄에도 하얀 목련이 꽃망울을 터뜨렸다. 일찍 개화한 목련꽃은 벌써 분분히 떨어지기도 한다. 4월은 잔인한 달이 아니라, 생명의 달이다. 죽은 듯한 나뭇가지들에서 기적처럼 꽃망울을 터뜨리고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게 하는 생명의 계절, 꿈의 계절임에 틀림없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오래된 추억들까지도 빛바랜 흑백사진이 아니라 컬러 사진처럼, 아니 바로 앞에 보는 듯한 영상으로 뻗쳐오르니 말이다.

 

아니지, 까마득히 잊어버릴 수 없다. 그 이유는 고교졸업 20주년이 되었을 때, 그때가 언제더라, 내 나이 마흔 살 되던 해였던가. 동창들이 학교에서 모임을 갖는다는 소식을 우편으로 받고 난 뒤부터였다. 그때 나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많은 동창들이 참석했고 그 후로도 계속 그들은 서로 왕래하기도 하고, 또 카페도 열어서 참여도를 높이면서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동창들도 접속하면 곧바로 소식들을 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딱히 만나러 가지 않아도, 서울, 부산, 울산, 양산 등 다른 지방에 흩어져 있는 동창들도 카페에 들어가 보고 근황을 파악하곤 한다.

 

물론 그 많던 동창들을 다 알 순 없지만 말이다. 얼마 전엔 카페에 들어 가보니 봄 소풍을 다녀왔다고 한다. 즐거운 한때를 여러 장의 사진에 담겨 있었다. 그날엔 비가 왔는데, 우중에도 강행한 그들의 결속력이 대단하다. 지금도 그곳엔 가까운데 살고 있는 동창들은 이런저런 모양으로 모임을 갖고 즐겁게 지내고 있는 것을 볼 때, 고교시절은 이십여 년을 지났건만 아직도 그 시절과 가까이 있는 듯 느껴진다. 멀지 않은 곳에, 아니 설령 멀리 떨어져 있다할지라도 결코 멀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목련꽃 피는 그늘 아래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으며 눈물짓기도 하고, 문학을 이야기하고 시를 이야기하고 꿈을 이야기하던 그때 그 시절의 시리도록 푸르렀던 소년소녀들이 이제는 누구누구 개업, 누구누구 이전개업, 병원입원, 초상 등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술자리나 모임들을 갖고 있다. 고단한 사람살이가 버거울 때면 술친구 불러내 함께 술을 마시며 시름을 잊고, 또 시시껄렁한 농담들을 주고받기도 하면서 이런저런 명목으로 모임을 만들고 잠시나마 현실에서 조금은 멀찌감치 떨어져 있고 싶어 한다.

 

나는 조금은 멀리서, 동기들 모임인 카페에 접속해서 그들의 즐거운 소식들을 듣고 본다. 거의 만나지는 못해도, 또 나와 단 한번도 같은 교실에서 공부해본 적이 없던 동창이라 해도 내 인생의 어떤 시기에 같은 학교, 같은 교실과 책걸상을 공유하고 그 시대를 공유했다는 것만으로도 언제나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거기 우리가 함께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혹 많지 않지만 친하게 지냈던 벗들을 만남을 전제로 하지 않아도 하늘 아래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는 것은 위로가 되고 또한 좋지 아니한가.

 

얼마 전에는 오랫동안 내 소식을 몰라 궁금해 하던 친구들이 있어서 카페에 들어가 흔적을 남겨놓았다. 그것은 ‘다들 잘 지내고 있느냐고, 나도 잘 지내고 있다고‘ 그런 뜻으로. 이렇게 맑은 날, 예전에는 목련이 다 지기 전에 누군가에게 편지라도 띄워야만 할 것 같았던 때가 있었다. 추억 속의 그리운 이름들을 헤아려 보면서, 살면서 지우고 지운 내 수첩 속의 그리운 이름들은 몇 명이나 남아 있을까, 생각하면서. 하지만 지금은 살아가면 갈수록 말이 많이 필요가 없음을 느낀다.

 

그저 이 찬란한 봄에 한껏 부풀어 오른 하얀 목련꽃을 올려다보며 봄바람에, 봄 하늘에 시를 쓰듯 ’잘 지내냐고, 나도 잘 지내노라고...‘그렇게 내 마음 묻어가기를 바랄 뿐이다. 내가 그만큼 무디어 진 것일까. 오늘은 이 찬란한 봄날, 펜시 문구점에 가서 편지지라도 사서 잊고 지냈던 편지라도 쓰는 마음의 여유를 부려볼까.


태그:#목련꽃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