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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1 : 6번과 13번 -

 

 “이번에 문성진 씨 어떻게 됐어요?” “네? 떨어졌잖아요.” “떨어진 건 아는데, 몇 퍼센트나 받았어요?” “마지막 것은 제대로 못 보았지만 7퍼센트 안팎이에요.” “비례대표인가는 어떻게 되었어요?” “3퍼센트가 되어야 한 사람이 붙는데, 2.94퍼센트인가 나왔다고 해요.” “아이구 저런.” “할머님들이 잘못 찍으셔서 그렇잖아요. 후보가 6번이라고 비례대표도 똑같이 6번으로 찍으시니까 엉뚱한 데만 덕 보았잖아요. 아마, 할머님들이 잘못 찍은 그 숫자만큼 0.06퍼센트를 잃었으리라 봐요.” “그러게, 앞에도 6번이니까 뒤에도 6번인 줄 알았지. 왜 두 번호가 달라서 그렇게 만들어.”

 

 성당에 나가는 동네 할머님과 아주머님하고 낮밥을 먹는 자리. 아침나절에 함께 성당 청소를 한 다음, 동네 밥집에 들어옵니다. 시킨 밥이 나오기를 기다립니다. 모두들 댁에서 지아비와 딸아들한테 밥 차려 주면서 서른 해 마흔 해 쉰 해를 살아온 분들. 때때로 밖에서 사먹는 밥은 집에서와 달리 차릴 걱정 없고 치울 걱정 없을 테지요.

 

 눈밝은 젊은(?), 그래 보아야 쉰을 넘긴 아주머님들은 지난 선거 때, 후보자와 비례대표 번호를 잘 찾아서 찍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눈어두운 할머님들은 그냥 같은 번호로 찍었다고 합니다. 어느 할머님은 하얀 종이에 한 장 찍고 나서, 푸른 종이는 왜 주었는가 싶어서, 기표소에서 밖으로 나와, “여보, 이 종이는 왜 주었소?” 하고 물어 보기도 했다고.

 

 투표율이 떨어질까 걱정하면서 젊은 연예인을 모델로 삼아 ‘투표의 즐거움을 누리다’라는 걸개천을 곳곳에 걸어 놓기는 했지만, 정작 동네 어르신들한테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어떻게 뽑아야 하느냐’를 몸소 깨닫도록 가르쳐 준 자리는 없었습니다. 또한, 후보자와 비례대표 정당을 잘 알려주는 알림판 하나 없었습니다. 지역구 후보자 사진만 나온 알림종이를 길게 붙여놓기는 했지만, 열 몇 곳이나 되는 정당투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 정당마다 어떤 정책을 내세우고 있는지 들을 알려주는 자리나 안내종이는 없었습니다.

 

 

 젊은 사람이 투표를 적게 한다고 말이 많지만, 나이때에 따라서 투표를 얼마나 하는가를 통계로 뽑는 틀거리가 없는 우리 형편을 헤아린다면, 아무런 통계자료를 들이밀지 않고서 이와 같은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이런 말을 하기 앞서, ‘투표를 안 하면 정치를 말할 자격이 없다’가 아니라 ‘투표를 왜 해야 하는지’와 ‘투표를 하면서 우리 삶과 삶터를 어떻게 가꿀 수 있는가’ 들을 느낄 수 있도록 차근차근 알려주는 자리가 있어야 하지 않을는지.

 

 투표하는 날은 공휴일이지만, 이날에도 어김없이 일해야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새벽 여섯 시부터 저녁 여섯 시까지만 투표를 하니, 이동안 일터에 매여 있어야 할 사람들은 어찌하지 못합니다. 쉬는 날이 따로 없이 날마다 새벽바람으로 장사를 하는 사람들로서도 짬이 없습니다. 투표하는 날에는, 00시부터 00시까지, 하루 스물네 시간을 투표시간으로 잡아 놓아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고작 열두 시간 주고서 투표를 하라는 이야기는, 하루벌이 일꾼들한테는 너무 빠듯하고 벅찹니다. 2교대와 3교대로 일하는 사람들한테도 쉽지 않은 겨를입니다.

 

 

 - 2 : 걸개천 -

 

 4월 10일 아침, 동네 마실을 하다가 골목 한켠에 뭉터기로 버려진 걸개천을 봅니다. 동사무소 일꾼들이 아침바람으로 국회의원 후보자 걸개천을 떼어낸 뒤 골목마다 뭉쳐서 버려 놓은 듯. 이렇게 버려 놓은 다음에 나중에 쓰레기차가 와서 싹 걷어가려나?

 

 헌 걸개천 뭉터기를 가슴에 안습니다. 들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웃 아저씨가 보고는 인사를 합니다. “뭘 그렇게 들고 가세요?” “네, 후보자들 걸개천이요.” “아니, 그걸 어디에 쓰시려고? 뭐, 기념품으로?” “아뇨, 요게 쓸 데가 많아요. 깔개로도 쓸 수 있고.”

 

 걸개천 뭉터기는 옥상마당에 얹어 놓습니다. 다시 골목 마실을 나갑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걸개천 뭉터기를 하나하나 폅니다. 나무막대를 떼어내고 엉킨 끈을 풉니다. 천은 천대로 잘 펴고 개어서 끈으로 묶어 놓습니다. 길고짧은 끈은 끈대로 하나하나 매듭지어 놓습니다. 나무막대는 나무막대대로 한 동아리로 묶어 놓습니다.

 

 

 그런데 이 나무막대며 천이며 끈은 어디에 쓰지? 글쎄, 아직은 모르겠다. 그러나 버려두기는 너무 아까운걸. 쓰레기차가 싣고 가면 태워 버리는 쓰레기로 끝나는데. 보드랍고 좋은 요런 천들을 어떻게 그냥 버려 두남.

 

 사진걸개로 써 볼까? 나무막대는 벽에 못으로 박아 놓고, 천으로 사진판을 삼아 뒤에 댄 다음, 끈으로 이어서 사진은 빨래집게로 집어 보면 어떨까. 도서관 바닥에 죽 펼쳐놓고 깔개로 삼아 볼까. 천끼리 꿰매어서 옥상마당에 지붕으로 씌워 볼까.

 

 

 하늘에서 빗방울이 톡톡. 생각은 나중에 하고, 어쨌든 집안으로 들여놓자. 나중에 차근차근 떠오를 테지. 천 갈무리 하느라 까매진 손을 씻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책+헌책방+우리 말 이야기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재활용#선거철#걸개천#현수막#18대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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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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