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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헌법이 이렇게 일상적으로 무력화돼도 되는 것인지 너무 걱정이 돼 이렇게 글을 써봅니다. 먼저, 지난 한겨레신문 기사를 한번 보실까요. 좀 길더라도 사실상 집회가 헌법이 금지하고 있는 '허가제'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 전문을 다 실어 봅니다.

 

[헌법] 제21조 ①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②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한겨레] 집회 봉쇄 '오버하는' 경찰,  등록금… 7천명의 하루

  "집회를 준비하면서 겪었던 수십 번의 검열과, 수십 번의 위협에 절망감을 느낍니다."

 

  28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등록금 해결 촉구 범국민대회'를 준비했던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등록금 네트워크 상황실장)의 말이다. 시민사회 활동가로 잔뼈가 굵은 그는 "10여 년 동안 수많은 집회를 준비했지만, 이번 같은 통제는 없었다"고 말했다. 안 팀장이 집회를 준비하기 시작한 것은 2월 말이다. 등록금 폭등이 사회문제가 되면서, 시민사회단체들이 3월 말에 학생들과 함께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기로 계획했다. 하지만 새 정권 출범 뒤 집회·시위 엄정대처를 예고했던 경찰의 벽은 상상 이상이었다. 이달 초 경찰 쪽에 집회 장소를 타진했다. 돌아온 답은 '서울역 광장, 서울시청 앞 광장, 교보빌딩 앞 등 종로부터 남대문에 이르기까지 서울의 주요 도심에선 절대 안 된다'는 것이었다. 교통 혼잡이 이유였다. 대신 경찰은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하지만 온 국민의 시름거리인 등록금 문제를 한적하고 외진 공원에서 외칠 수는 없었다. 서울시청에 찾아가 통사정을 한 끝에 '사용료를 내고 청소를 하는' 조건으로 서울시청 앞 광장 사용을 허락받았다.

 

  경찰도 집회 신고는 막을 수 없게 됐지만, 간섭은 계속됐다. 3월24일 집회 신고서를 내기 전에 경찰에서 전화가 왔다. "집회 신고를 '한국진보연대' 이름으로 하지 말고, '참여연대' 이름으로 하라"는 요구였다. "그나마 참여연대는 불법 시위를 안 할 것 아니냐"는 이유였다. 헌법이 보장한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중요한 사안이지만, 등록금 문제의 이슈화가 더 급하다는 판단에 이를 받아들였다. 신고서를 냈지만, 이번엔 행진 코스가 문제가 됐다. 시청 앞 광장에서 한국은행, 을지로3가를 거쳐 청계광장으로 가는 코스는 교통 혼잡을 초래한다며 집회신고 불허 통보가 왔다. 동시에 경찰은 "행진 코스를 줄이지 않으면, 지방에서 상경하는 대학생들을 막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행진을 강행하면 집회 신고인인 임종대 대표와 안진걸 팀장은 기소된다"는 겁도 줬다. "강경하게 대응하라는 연락이 위에서 왔다"는 경찰 쪽 실무자의 설명도 덧붙었다. 결국 경찰과 타협 끝에 행진 코스를 절반으로 줄였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집회 전날 도착한 경찰의 공문에는 '행진 중에 앉거나 서는 등 자의적인 행위를 하는 것'을 금지사항으로 명시했다. 또 7천명으로 신고한 집회에 행진은 3천명만 허용한다는 '이상한' 준수사항도 붙었다. 이를 위반하면 해산 명령을 하겠다는 경고가 있었고, 때를 맞춘 듯 경찰은 체포전담조 투입 방침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안 팀장은 "지난 한 달 동안의 경험으로 보면, 이젠 집회를 나라의 허락을 받고 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끝)

 

위 기사에 등장하는 안진걸이 이 글의 필자인 안진걸 맞습니다. 제가 깜빡하고 기자한테 말을 안 해 기사화가 안 된 것 중에는 '평화 집회에 대한 각서'를 체결하라는 강요를 십여 차례 받은 부분도 있습니다. 각서를 쓰지 않으면 집회를 불허하겠다는 것입니다. 진보연대, 참여연대와 심층 협의를 거쳐 어떤 일이 있어도 각서는 쓸 수 없다고 맞섰고, 위기 끝에 겨우 집회는 겨우 허가를 받게 됐습니다.

 

 저도 ‘허가’ ‘불허’라고 쓰고 있고, 경찰도 ‘허가’ ‘불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문서상으로는 집회 신고 수리 또는 불수리·금지 등의 용어를 씁니다만) 이는 언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집회·시위가 헌법이 금지하고 있는 '허가제'로 운영되고 있는 것을 경찰도, 집회 개최자도, 언론도 모두 잘 알고 있는 셈이죠. 헌법이 금지하고 있는 데도 이래도 되는 것인가요.

 

 또 각서는 무엇입니까.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를 이렇게 무력화시켜도 되는 것입니까. "헌법 제19조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라는 조항이 경찰의 강압과 집요한 강권 앞에서는 어떠한 힘도 발휘를 하지 못하더군요.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이날 집회의 주제가 '등록금 폭등 사태의 근본적 해결'이었으니까, 관련 헌법 조항도 한번 살펴봤습니다. 우리 헌법 제31조에는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돼 있습니다.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가 돼 있다고 하지만 어디 현실에서 균등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나요? 현재 가난한 이들은 공부하고 싶고, 공부할 능력이 있음에도 전혀 균등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학생·학부모·시민·사회단체들이 전국적으로 '등록금 저항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무상교육이나 등록금액 상한제·후불제가 실시되고 있는 유럽이나 호주의 대학들, 저소득층에게는 과감한 학비 면제나 감면이 이루어지고 있는 미국이나 일본의 대학들은 우리에겐 아주 다른 세상의 이야기입니다.

 

 이 몇 가지 예만 들어봐도 한국 사회에서는 헌법이 일상적으로 무력화되고 있다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형식과 절차에서도 그렇고, 내용과 상태에서도 그렇습니다. 굳이 헌법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상식적으로 너무 황당한 일들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4월 10일 민가협 목요집회에는 그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집회 담당관'이라는 형사들이 출동하기까지 했습니다. 마침 저도 현장에 있었습니다. 이미 정보과 형사가 나와 있는데도 불구하고 평화로운 목요집회에 감시하고 관찰하는 역할의 형사를 무엇 때문에 내보낸단 말입니까.

 

 범국민대회 때도 집회 참가자의 2배가 되는 경찰을 배치해서 심지어는 보수 언론으로부터 핀잔을 받았던 경찰이었습니다. 민생치안에 많은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음에도 경찰들은 쓸 데 없이 집회·시위에 과잉 대응하고, 정보과에 경찰들을 너무 많이 배치하고 있습니다.  아이 키우는 부모님들은 지금 얼마나 불안에 떨고 있습니까. 집회·시위에 대응할 인력과 예산을 제발 민생 치안에 써야 하지 않을까요. 인권연대가 앞장서서 범국민적인 경찰개혁 캠페인 같은 게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국정원과 법무부, 그리고 검찰·경찰은 정말이지 하나도 변한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잠시 변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던 것 아닐까요. 최근의 일련의 황당한 사태와 보안법으로 잡혀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만 봐도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민사회단체들의 감시와 견제가 집중되어야 할 것이고 국정원·법무부·검찰·경찰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운동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얼마 전 4월 9일 총선이 있었습니다. 극우·수구·냉전·기득권 세력들이 압도적으로 당선된 국회가 돼버렸습니다. 물론 야당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야당들이 제대로 역할을 못해서 견제와 균형의 민주주의 원리가 깨진다거나 민중과 인권-개혁과 진보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면, 우리 국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견제와 균형을 맞춰나가고 민중과 진보의 내용을 관철시켜나가는 투쟁과 실천을 전개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저는 감히 현 시국에 대해서 좀 고전적인 표현을 사용하자면, '조국과 민중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 국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개인부터 마음가짐을 다시 해보게 됩니다. 머리띠를 질끈 다시 묶는 심경입니다. 나아가 전국의 뜻있는 분들과 시민사회단체들도 다시 민중들과 함께, 시민 속으로 들어가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켜나가고, 개혁과 진보를 위한 활동에 더 매진할 것을 호소 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안진걸씨는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팀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대학생등록금, #경찰, #집회, #민생치안,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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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연대는 1999년 7월 2일 창립이후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에 따라 국내외 인권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인권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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