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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프론티어 정신

 

남이 안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주변의 시선과 시샘, 심지어는 방해가 뒤따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남보다 한 발 앞서가기에 새로운 문화를 만들 수 있는 선구안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2001년 처음 사하라를 간다고 했을 때, 격려보다는 비아냥 때론 인간 이하의 대접을 많이 받기도 했다. 그렇지만 세상에서 이상한 사람으로 몰릴 때마다 구원투수 같이 나타나 힘이 되어 주신 분들이 있었기에 한국 최초로 오지레이스를 10번에 걸쳐 완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자리를 빌어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룰루랄라 즐거운 인생이여

 

2008년 2월 21일: Stage 3 (Day 4)

Nam Sai - Thanh Phu - Nam Toong - Ta Trung Ho ? Ban Ho

Estimated Distance: 30 km 

 

오늘도 어제와 같은 50km를 가는 날이다. 어제의 잔인했던 기억이 떠올라 다들 '죽었다'를 연신 복창하고 있었는데, 아침 코스설명 시간에 현재 코스가 너무 위험해서 마지막 구간을 변경한다고 한다. 다들 만세 삼창이다. 비(Rain)가 우리를 울렸다 웃겼다 한다. 

 

거리는 30km로 괜한 여유로움에 사로잡힌다. 하루가 느긋하게만 느껴지며 천천히 기어가도 문제 없다는 심리가 발동한다. 어제 비를 많이 맞고 구르고 미끄러져 온몸이 쑤시고 안 아픈 데가 없는데…, 그뿐인가? 잠도 축축한 물침대에서 잤더니 으실으실 감기 기운까지 돌았다. 그런데 코스가 단축됐다는 말 한 마디에 나는 바로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 아무래도 난 나이롱 환자같다.

 

 

코스는 초반의 내리막을 지나서부터 계속되는 오르막이다. 1000m 정도의 산을 오르는데 주변으로 라이스테라스(계단식논)들이 펼쳐진 게 확실히 이전 지역에 비해서 규모가 크다. 이쪽 SAPA 지역은 필리핀의 '바나우에'와 더불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라이스테라스' 지역이다. 그러고보니 예전에 필리핀 루손섬 북부 지역을 여행할 때 '지프니' 빌려 지붕에 타고 가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도 지금 같은 '라이스테라스'를 보고 감동 먹은 적이 있었다.

 

아주 오래 전 선조때부터 산을 개간해서 계단식 논을 만들고 지금까지 살아가는 그 지역의 후손들을 보면, 우리같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하고 너무나 다른 인생이란 걸 느낀다. '과연 나라면 어떻게 할까?'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머리에 맴돈다.

 

 

첫 번째 체크포인트를 지나자 자동차가 갈 수 없는 좁고 거친 진흙밭 길이 시작된다. 이곳부터는 또다시 진흙과의 싸움이다. 다행스럽게 큰 비가 안 내려 버티면서 갈 수 있을 정도다. 그 진흙밭에서는 미국의 '에디'와 방구쟁이 '브레드리'를 만날 수 있었다.

 

에디는 대만계 미국인으로 인텔팀으로 참가했지만 3명 다 따로따로 찢어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브레드리는 2003년 고비사막 원년 멤버로 텐트메이트였다. 방구를 하도 자주 뀌고 소리가 커서 방구쟁이라 불렀는데, 지금도 그 실력은 여전하다 못해 가스 냄새의 질이 한층 업그레이드 됐다는 걸 이내 간파했다.

 

자칫 순간의 방심으로 내 바로 앞쪽에서 가스가 터지는 일이 생긴다면 그 걸로 경기 끝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 인간 저 만큼 앞서 간다 싶으면 특유의 소음을 동반한 방구 추진력으로 금세 따라잡고 어느새 내 앞에서 연신 방구질이다. 내, 그 방구 소리 듣기 싫어서 아픈 다리를 쉴새없이 돌려 한참을 앞서갔다.

 

 

공포의 방구존을 벗어나니 두 번째 체크포인드가 나타났다. 이곳은 일반 관광객들이 올 수 있는 SAPA와 가까운 지역이었다. 낡아서 언제 무너질지 모를 나무 다리를 건너기 전 독일 관광객들을 만났는데, 우리가 산넘고 물건너 정글 지나 여기까지 왔다 하니 '오마이갓!'을 연신 외쳐대며 단체 사진찍자고 일행을 다 불러 모은다.

 

아슬아슬 다리 건너기, 폭포수 아래 지나기, 원시 정글 뚫고 나가기 등등. 코스가 단축됐다하여 난이도까지 낮아진 건 아닌 것 같다. 세 번째 체크포인트를 지나서부터 포장된 도로가 나왔지만 나는 이미 녹초가 되어 버린 상태다.

 

그래도 가끔 만나서 가는 참가자들끼리는 참으로 수다가 많고 웃음이 그치질 않는다. 어차피 몸 망가졌겠다, 기록 포기했겠다, 보아하니 오늘 제한시간 안에 들어 갈 수 있겠다. 그러니 아름다운 경치 구경하며 즐겁게 가는 거다. 다 필요없다, 즐겁게 사는 게 최고다.

 

마지막 2.5km의 내리막 구간에서 무려 3명의 참가자를 따라잡았다. 사실 뛰고 싶어서 뛴 게 아니라 다리가 너무 아파서 차라리 뛰는 게 좋았다. 기록은 08:46:00. 앞으로 이틀만 버티자.

 

덧붙이는 글 | 베트남 대회는 베트남 북부 사파 지역에서 2월 18일부터 23일까지 열렸다.


태그:#베트남, #여행, #마라톤, #어드벤처레이스,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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