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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소득 4만불 되면 비싸도 좋은 고기 먹는다."

 

이명박 대통령이 26일 한우목장을 방문해서 했던 말이다. 더 비싸고 더 고급으로 나가면 경쟁력이 생긴다는 말인데, 소가 웃을 일이다.

 

한우가 경쟁력을 잃고 있는 건 가격에 거품이 끼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한우가 비싸다는 인식 때문에 보다 싼 수입 쇠고기를 찾고 있을 뿐이다. 결코 맛있는 쇠고기를 먹기 위해 수입소를 선택하지는 않는다는 얘기이다. 대통령의 "비싸도 좋은 고기 먹는다"는 발상은 그 스스로 '고소영 내각'이란 세간의 평을 증명해 보이는 대목이다.

 

현실을 비켜간 대통령의 한우 경쟁전략은 한 마디로 기업 오너가 "무조건 세계 일등제품을 만들라"고 지시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국민감정이나 서민에 대한 배려도 없이 한우를 단순한 제품으로만 보는 대통령의 현실 인식. 이건 아니지 않은가.

 

이명박 대통령은 며칠 전 수석들에게 왜 공직에 있는지를 반문해보고 공직자로서의 사명감을 가지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자신부터 기업오너인지 대통령인지 먼저 반문하는 게 순리일 듯 하다.

 

비싼 쇠고기 먹는 건 이해 안 되지만, 비싼 쇠고기 만들라고?

 

당장 먹고 살기 힘든 서민에게 프리미엄급 한우는 언감생심 일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소득 4만불이 되면'이라고 토를 달긴 했지만, 정말 우리 국민들은 비싸고 고급화된 한우를 먹을 수 있게 될까?

 

양극화는 갈수록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4만불 시대가 된다고 해도 4만불에 진입하는 국민은, 현재의 2만불 시대에 2만불에 해당되는 국민 비율보다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대로 최고급 한우가 만들어진다면, 지금보다 비싸진 가격으로 누가 소비를 하게 될지는 미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나머지 국민은 광우병에 노출되었는지도 모르는 쇠고기를 불안한 마음으로 맛있게 먹는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권이 부동산정책 실패로 부의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면 이명박 정권은 먹을거리의 양극화를 불러오는 게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수행에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고 즉흥적 대책을 남발한다는 데 있다. 

 

한우대책을 내놓기 불과 일주일 전인 21일, 도쿄의 한 호텔에서 수행기자단과 가진 조찬간담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쇠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 도시 근로자와 소비자들이 값싼 고기를 먹도록 한다는 점도 있다" 라고 말했다.

 

이건 또 무슨 황당한 시츄에이션?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쇠고기를 먹는 게 이해 안 된다고 말한 사람이 불과 일주일 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쇠고기를 만들라고 지시했단 말인가.

 

축산농가는 소수니까 고통받아도 된다는 건가

 

뿐만 아니다. 이 대통령은 "미 쇠고기 수입으로 고통 받는 축산농가는 소수이다, 대다수 국민들은 맛있는 쇠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고 자화자찬했다.

 

그의 말대로 국민에 비해 축산농가는 소수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수 국민을 위해 축산농가의 고통 쯤이야라는 식의 발언은 조폭세계에서나 가능한 일 아닌가?

 

자기 자랑도 잠시. 대책 없는 미 쇠고기 수입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이 거세지자, "노무현 정권의 약속 때문에 이뤄진 일"이라고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정 총책임자의 책임전가는 비단 이번뿐만이 아니다. 지휘 라인상 책임을 물어야 할 경찰청장은 놔두고 직접 경찰서에 찾아가 힘없는 경찰서장을 질타했다. 약자에 강하고 강자에 약한 모습. 잘한 일은 자기 덕이고 잘못된 일은 모두 아래 사람 책임으로 돌리는 처세. 이런 일이 계속되면 언젠가 '리더십 부재'라는 부메랑에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철학의 빈곤함 때문이라지만 대통령의 오락가락 발언은 레임덕을 가속화시킬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이 '말의 남발'로 정권 후반기에는 전혀 말발이 먹혀들지 않았다는 것을 이명박 대통령은 반면교사 삼기를 바란다.

 

한우 경쟁력 해치는 유통구조 손대지 못하나

 

요즘은 한우 가격에 낀 거품을 빼고 판매하는 곳이 많이 생겨났다. 중간 유통과정을 거치지 않았기에 시중가에 비해 훨씬 저렴한 가격에 한우(거세우)를 맛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정읍 산외면이 대표적으로 주말과 휴일에는 조그만 면 소재지에 수십대의 관광버스가 운집한다고 한다.

 

전남 장흥의 토요풍물시장에도 저렴한 한우를 맛보려는 외지인들의 발길이 늘고 있다. 2007년 7월 7일 기준으로 등심(비거세우) 600g에 1만5000원, 고급육은 1만9000원에 판매되고 있다. 시중 식당의 4분의 1 가격밖에 안 되는 수준이다.

 

그 덕분인지 쇠고기를 구입해가려는 사람들로 정육점 내는 발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이다. 이처럼 대다수 국민들은 비싸고 고급육질의 한우보다 다소 질이 떨어지더라도, 안전한 쇠고기를 먹고 싶어하는 소박한 바람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한우의 고급육을 지향하는 대통령의 생각은 일반국민의 정서와는 다소 동떨어진 느낌이다.

 

최근 축산농가는 비명을 지르고 있다. 미 쇠고기 수입개방 소식으로 하룻새 한우 산지가가 8%정도 하락했기 때문이다. 더 가격이 떨어지기 전에 소를 파는 농가가 많아지면서 한우 도축도 큰 폭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소비자는 여전히 비싼 한우를 사먹고 있다.

 

한우농가를 보호하고 경쟁력을 가지려면 어디부터 손봐야 할지는 자명하다. 중간상인들 배만 채우는 유통구조를 확 뜯어 고쳐야 한다. 정부가 나서 한우를 구매해 직접 고기를 공급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대책이라고 내놓은 한우의 프리미엄급 지향은 일부 계층만 혜택을 누릴 가능성이 크다. 실질적으로 한우농가와 일반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 정읍 산외면이나 장흥 토요시장의 인기몰이 한우가 이를 시사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한우, #이명박, #수입쇠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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