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고슴도치 섬의 망월봉 정상 풍경
 고슴도치 섬의 망월봉 정상 풍경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오늘 내일은 날씨가 좋다니까 별 문제 없겠지?"
"그럼, 그리 멀지도 않은 섬인데 뭘."

섬 여행이어서 돌아올 걱정부터 하는가 보다. 여객선이 바다 가운데로 나서자 일행 한 사람이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묻는다. 걱정하는 그에게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고 말한 것은 꼭 그를 안심시키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기상청에서는 4월 29일과 30일은 물론 주간 내내 좋은 날씨를 예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기예보처럼 날씨는 포근했고 바람도 잔잔했다. 4월 29일 전북 부안의 격포항에서 출발한 여객선은 잔잔한 바다에 하얀 포말을 남기며 순조롭게 잘도 달렸다.

안개 낀 바다를 건너 위도에 가다

"날씨가 좋다고 했는데 안개 때문에 시야가 흐려 조금 아쉽구먼."

그런데 잔잔한 바람과 좋은 날씨와는 달리 옅은 안개가 낀 바다는 희부연 모습이어서 조금 아쉬웠다. 위도는 변산반도에서 15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니 날씨가 맑으면 가깝게 바라볼 수 있는 섬이다.

그러나 격포항을 출항한 지 한참이 지나도 섬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 고슴도치를 닮은 지형으로 위도라는 섬 이름이 붙여졌다는 위도는 30여 분을 달린 후에야 그 모습이 어렴풋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위도 문화마을 풍경과 유채와 동백곷
 위도 문화마을 풍경과 유채와 동백곷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고슴도치 형태가 전혀 아닌 것 같은데?"
섬이 그 형태를 드러내자 실망스럽다는 듯 누가 외친다. 제일 궁금했던 것이 정말 고슴도치처럼 생겼을까 하는 의문이었던 모양이었다.

"이쪽에서는 아니지만 어느 다른 쪽에서 바라보면 고슴도치 모양이 보이겠지요."
그럴 것이다. 어느 방향에서건 그런 모습이 보였기에 붙여진 이름이 아니겠는가. 일단 모습을 드러낸 섬은 곧장 앞으로 다가왔다. 방파제에 둘러싸인 선착장은 작은 배 몇 척만 보일뿐 아주 조용한 모습이었다.

선착장에 내려서자 바로 앞에 버스 한 대가 서있다. 마치 우리들을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우리들이 버스에 오르자 버스가 곧 출발했다. 손님은 현지 주민 한사람 외에는 모두 우리 일행들뿐이었다.

아름다운 고슴도치 섬 풍경

버스 운전기사는 아주 구성진 현지 사투리를 멋지게 사용해 일행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경치가 아름다웠다. 굽이굽이 바닷가의 풍경이며 작은 섬들이 환상적인 모습이다. 도로가 해안선을 따라 열려 있어서 창밖의 풍경이 그대로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커다란 나무 아래 작은 집이 돌담에 가린 모습
 커다란 나무 아래 작은 집이 돌담에 가린 모습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산봉우리에서 내려다 본 섬 풍경
 산봉우리에서 내려다 본 섬 풍경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고슴도치 섬의 마을 이름들이 매우 독특하다. 파장금, 벌금, 깊은금, 눈금, 정금, 딴정금, 대부분 금자 돌림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일행들이 위도를 찾은 것은 등산을 하기 위해서였다.

"등산 재미있게 하시고 내려 오시드라고요."
내원암 입구에서 우리들이 내리자 버스운전기사 백은기(57)씨가 깍듯이 인사를 한다. 위도의 유일한 사찰인 내원암은 법당 앞의 매끈한 배롱나무와 함께 깊은 정적에 싸여 있었다.

내원암을 지나 첫 번째 오른 봉우리는 망금봉, 높이는 해발 241m였다. 낮은 산이었지만 오르기가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었다. 해수면에서 거의 곧장 시작하는 등산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날씨가 무척 더웠다.

등산은 정금봉을 지나 비슷비슷한 높이의 봉우리 두 개를 더 오르고, 마지막은 해발 254m로 위도의 주봉인 망월봉까지 오르는 코스였다. 무더운 날씨로 땀을 많이 흘리긴 했지만 산행은 그리 힘들지 않고 즐거웠다.

마늘 밭과 돌담 집
 마늘 밭과 돌담 집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산봉우리에 올라 내려다보는 섬 풍경은 정말 아름답기 짝이 없었다. 굽이도는 해안선과 오목한 작은 포구는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다. 갯벌이 드러난 곳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조개를 잡는 모습도 보인다. 능선길은 큰 나무나 시야를 가리는 것이 별로 없어서 아름답고 멋진 경치를 마음껏 감상하며 걸을 수 있었다.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는 산행은 그만큼 쉴 시간이 많아 체력소모를 감소시켜 주었다. 등산로 길가에 지천으로 피어 있는 작은 꽃들을 바라보며 숲에 자생하고 있는 취나물을 조금씩 채취하며 걸었기 때문이다.

난생처음 산나물 채취를 해보았습니다

앞장서 걷고 있던 여성등산객들로부터 취나물 채취하는 법을 배워 조금씩 뜯기 시작했는데, 여간 재미있는 것이 아니었다. 비록 채취한 양은 많지 않았지만 난생처음 해보는 일이어서 그만큼 재미가 있었던 것이다.

올라갈 때는 힘이 들어 그냥 오르다가 내리막길이나 평지를 걸을 때는 눈에 보이는 취나물을 한 잎씩 뜯어 손에 쥐고 걸었다. 나중에는 고사리도 몇 개씩 발견되는 대로 꺾었는데 그렇게 조금씩 꺾고 뜯은 고사리와 취나물이 우리 부부의 한 끼 반찬으로 충분했으니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작은 어촌의 배 두척
 작은 어촌의 배 두척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1993년 훼리호 참사 위령탑
 1993년 훼리호 참사 위령탑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마지막 봉우리인 망월봉은 달랐다. 다른 봉우리와는 달리 바위산이었기 때문이다. 바위산이어서 등산로 부근에 취나물이나 고사리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대신 가파른 바윗길에 밧줄이 설치되어 있었다. 마지막 봉우리를 힘들게 오르자 저 아래로 여객선 선착장인 파장금 포구가 내려다보인다.

망월봉 정상에 특별한 시설은 없었다. 벤치 한 개와 얼굴을 내밀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동물 모형 두 개가 설치되어 있었을 뿐이었다. 정상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하산길에 나섰다. 내려가는 길은 오르기보다 훨씬 쉬운 길이었다. 바윗길이 아니라 흙길이었다.

산 아래로 내려서자 도로 건너 바닷가에 눈에 확 들어오는 탑이 시선을 잡아끈다. 입구 양쪽에 나무와 꽃을 심어 예쁘게 가꾸었다. 그러나 막상 탑 앞에 이르고 보니 기분 좋은 시설물이 아니었다. 1993년 해상 사고로 숨진 사람들을 위한 위령탑이었기 때문이다.

위령탑을 둘러보고 다시 선착장으로 향했다. 등산 일정이 끝났으니 이제 다시 배를 타고 육지로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출항예정시간은 오후 5시였다. 시간이 조금 여유가 있어서 우선 선착장 근처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격포로 나가는 여객선에 올랐다.

돌담 옆에 쌓인 조개껍질무더기
 돌담 옆에 쌓인 조개껍질무더기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안개 때문에 출항 못한 여객선, 섬에서 발이 묶이다

정각 5시가 되자 뱃고동이 울렸다. 부웅부웅 낮은 음정의 소리가 아니라 삐웅삐웅 소프라노 높은 소리다. 그런데 이상했다. 고동 소리만 울렸지 배가 움직이질 않는 것이었다. 그래도 '조금 있으면 출항 하겠지'하는 믿음으로 기다렸다.

"지금 격포항이 짙은 안개로 뒤덮여 있어서 출항을 못하고 있습니다. 잠시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5분 쯤 지나자 선장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울렸다. 위도를 떠나 격포항에 입항해야 하는데 그쪽 지역이 안개가 짙어서 출항 허가가 나오지 않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또 20여분을 기다렸다. 이번에도 선장의 말은 마찬가지였다. 위도 파장금 포구도 옅은 안개가 흐르고 있었지만 선박의 입출항이 제약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격포항은 안개가 훨씬 심한 모양이었다.

갑판에 나와 있던 손님들이 하나 둘 선실로 들어갔다. 석양이 가까워지자 바닷바람이 차가워지고 있었다. 선실 안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언제 출항하게 될지 모르는 손님들은 아예 선실바닥에 누워 잠을 청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여객선 선착장 옆에서 낚시하는 사람
 여객선 선착장 옆에서 낚시하는 사람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그렇게 기다리다가 오후 6시 30분이 지나자 여객선은 출항을 포기했다. 위험하기 때문에 안개가 걷혀도 야간에는 운항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곳저곳에서 육지로 연락하는 전화음성이 선실에 가득 넘쳐났다.

"여보! 나 이곳 위도에서 안개 때문에 발길이 묶였어. 내일 하기로 한 공사 하루 연기해야 될 것 같아."
"이거 큰일 났네. 아주 중요한 약속이 되어 있는데."
그런데 우리 일행 중에서도 한 사람이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모른다.

자영업을 하는 그는 내일 작업할 인부 7명과 중요한 공사가 예정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도 집으로 전화하여 내일 작업을 하루 늦추어 줄 것을 부인에게 연락하고 있었다.

"이거 야단났구먼.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태풍만 문제일 줄 알았더니 안개가 발길을 붙잡을 줄이야."

발을 동동 구르던 사람들도 어쩔 수 없었다. 모두 배에서 내려 하룻밤 쉴 곳을 찾기로 한 것이다. 우리 일행의 리더는 공영버스 운전기사 백은기씨의 도움으로 저녁을 먹고 쉴 수 있는 잠자리를 안내 받았다.

격포와 위도를 왕래하는 여객선과 선실에 드러누운 승객들
 격포와 위도를 왕래하는 여객선과 선실에 드러누운 승객들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다음 날인 4월 30일 첫 출항하는 여객선은 오전 9시 30분에 있었다. 잠자리에서 일찍 일어난 사람들은 식당을 찾아 간단하게 아침을 먹거나 바닷가 산책을 하고, 일부사람들은 근처 산 밑에서 나물을 채취했다.

산책길에서 만난 마을의 모습도 정겹기는 마찬가지였다. 지붕 추녀 높이로 쌓아 올린 돌담이며 그 돌담 밑에 수북이 쌓여 있는 조개껍질은 이 섬이 전통적인 어촌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한 때는 섬 전체 인구의 90%가 어업에 종사했다고 한다.

마을 산책길에서 만난 할머니는 시간 있으면 산에 올라 산나물이라도 뜯지 왜 서성이고 있느냐며 채근한다. 참으로 포근한 어촌마을의 인심과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모습이었다.

4월 30일 오전 9시 30분, 전날 안개 때문에 발이 묶였던 여객선이 파장금 포구를 출항했다. 날씨가 맑아 위도를 떠나 변산반도의 격포항으로 돌아오는 여객선에서 바라보는 고슴도치 섬의 모습이 선명하다. 점점 멀어지는 고슴도치 섬 반대편으로 변산반도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태그:#이승철, #격포, #위도, #고슴도침 섬, #돌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바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겸손하게 살자.

이 기자의 최신기사100白, BACK, #100에 담긴 의미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