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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부처님, 안녕하신지요? 전 우리의 문화재를 공부하고 있는 한 학생입니다. 작년 11월에 부처님을 뵈었는데, 이제야 이렇게 편지를 보내는군요. 그간 안녕하셨는지요?

 

‘지루함은 젊음에 대한 배신이다’라는 제 나름의 신조 때문에 후배와 함께 무작정 시작한 당일치기 도보답사. 이 도보답사로 하루라는 시간을 투자하고 10㎞를 걸어가면서 6개의 문화재와 2곳의 박물관을 보았습니다. 비록 다리가 아프긴 하였지만, 제가 다닌 여러 답사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답사 중 하나로 남아 있지요.

 

부처님을 뵙게 된 것은 그 중에서도 답사의 막바지, 탄금대를 가기 전, 창동마을을 지나 탄금교로 가기 전에 있는 절벽에서였지요. 애초에 답사에 대한 준비가 미약하다보니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갔기에 부처님을 이렇게 뵙게 될지는 생각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길거리에 있는 표지판을 보고, 이곳까지 왔기 때문에 한번 뵙고 가고자 하였고, 그래서인지 발걸음이 저절로 절벽으로 향하게 되더군요.

 

 

부처님의 성함은 중원 창동마애불이더군요. 마애불이라는 말에 멋진 모습의 다른 마애불들이 생각나면서 기대를 하였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죄스럽게도 그러한 기대에 약간 못 미친다고 실망한 기억이 납니다. 적어도 첫 인상은 그랬었지요. 하지만 계속 부처님을 바라보니 그러한 첫 인상이 잘못되지 않았나란 생각이 점점 들더군요. 그 당시 민초들의 진심어린 정성으로 태어난 역작이 바로 부처님이 아닐까란 느낌을 받았습니다.

 

부처님의 큼지막한 코와 미소를 지은 듯 만 듯 신비로운 입, 그리고 지그시 감고 있는 눈, 뚜렷한 삼도와 굵고 힘 있는 옷자락 등이 근엄함과 함께 친근한 인상을 주더군요. 그랬기에 그 바쁜 와중에서 제 발걸음은 계속 부처님 근처를 배회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때는 부처님께 이렇게 하고 싶은 말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반년이 지난 지금... 전 부처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우선 후손으로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무릎을 꿇고 엎드려 사죄하고 싶습니다.

 

부처님... 후손으로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부처님... 부처님의 신비한 미소를 보면 이미 알고 있을거란 생각이 듭니다만, 부처님은 익사의 위기에 놓였습니다. 그것도 우리 후손들의 손에 의해서 개발이라는 이름 자체로 부처님을 물속에 수장시키려고, 더 이상 볼 수 없을 수도 있는 수몰 위기에 처하게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돈만 추구하고 경제만을 우선시하는 우리 후손들에 의해서 말입니다.

 

부처님께서 약 천년 동안 계속 바라보셨던 탄금호... 그 잔잔한 물결을 보시면서 이곳의 가흥창이나 목계나루터로 들어오는 상인들과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의 인사를 받으면서 지내셨겠지요. 목계나루터로 들락날락거리는 쌀들을 보고, 또 상인들이 갖고 온 이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여러 물건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장사꾼의 흥정에 흥겨워하였던 때가 엊그제 같을 텐데... 이제는 그들은 사라지고 마을 사람들에게마저도 점점 잊혀져가고 있는 거 같네요.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올해 들어서 대운하에 대해 말이 많습니다. 애초에 한반도 대운하라는 계획이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다고 하였고, 그 상황에서 이 지역은 대운하의 물결에 절대로 피할 수 없는 곳이 되었지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쪽은 물론이거니와 대운하의 근처에 있는 여러 문화재들의 보존 위기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 정부는 그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지요. 오히려 대운하에 대한 추진을 선거철에는 크게 부각시키지 않다가, 총선이 끝난 후부터 이에 대해 몰래 검토에 들어가는 등,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행위를 하고 있지요.

 

대운하에 대한 경제성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가적인 효과인 관광에 대해서도 의문을 자아내는 사람들이 많으며, 생태계 파괴와 문화재 파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국민의 여론을 수렴하겠다고 할 뿐, 정작 대운하 자체를 취소하라는 여론을 듣고 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정부는 문화재에 대해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습니다. 애초에 국보 1호인 숭례문이 불타오른 주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대책 없는 개방이 제 1순위로 뽑히지만, 정작 그렇게 개방을 한 사람은 이를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최근 지난달 29일에는 당진에서 발굴조사중인 고려유적지를 공사 사업시행자가 포클레인으로 갈아 엎어버리는 사건마저도 발생하였습니다. 게다가 2000년에는 서울 풍납토성 경당지구에서 아파트 재건축에 차질을 준다고 굴착기로 갈아엎은 적도 있었습니다.

 

애초에 숭례문이 불타오른 것은 방화범이 토지보상 금액이 적다는 것에 대한 불만으로 그렇게 한 것이고, 이번의 고려유적지를 갈아엎은 것 또한 공장을 빨리 지어야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런 것입니다. 경당지구 또한 재건축 문제 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하게 되었지요. 이런 일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이게 다 후손들의 무지 때문입니다

 

 

이는 그만큼 문화재에 대한 우리 후손들의 무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지요. 그래서 더욱더 부끄럽습니다. 반면에 문화재청에서는 당진에서의 사건 바로 다음날 발굴조사기간을 140일에서 40일로 줄인다는 방침을 발표하였습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조사가 졸속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습니다. 문화재가 지표면상에 나타나는 것을 통하여 유적의 유무를 살피는 지표조사는 제대로 이뤄질 가능성이 희박해집니다. 바야흐로 문화재 수난의 시대라 하겠습니다.

 

충주의 많은 문화재들도 대운하의 위협에 싸여있고, 대표적인 것이 중원탑이겠지요. 하지만 중원탑의 경우 최악의 경우에는 그 위치를 옮김으로서 문화재 보호를 할 수 있습니다. 국보로서, 그리고 신라시대 최대의 석탑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기 때문에 정부에서도 함부로 못하니 말이지요.

 

하지만 부처님에게 개발의 손길은 어떻게 다가갈지 모르겠습니다. 부처님은 현재 지방 유형문화재로 남아 있습니다. 국보도 보물도 아니며, 더더욱 사적도 아닙니다. 그냥 지방에서 지정한 유형문화재일 뿐, 그들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있으면 그만 없으면 그만일 뿐이고 문화재에 대한 관리 차원에서 번호를 매겨 놓았을 뿐이지요.

 

후손들은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자신들만의 기준을 위해 멋대로 분류를 하고 번호를 매겨놓았습니다. 그러면서 거기에 예술성이니 역사성이니를 말하면서 맘대로 가치를 부여하고 그 틀에 박아 놓습니다. 애초에 거기에 진정한 문화재의 존재가치는 없습니다.

 

절벽에 있기 때문에 대운하가 들어선다면 절벽에 떼어 내어 다른 곳에 보존하지 않는 한 부처님은 물속에 잠겨서 세상을 바라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당장에 이곳에 물이 좀 더 차게 된다면... 일반인의 접근조차 어려울뿐더러 이젠 잊히게 될 것이라는 점이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부처님은 행복하신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문화재이면서도 문화재가 아닌, 이른바 비등록문화재의 경우엔 지금 이 순간에도 파괴되거나 도굴꾼에 의해 도굴되거나, 혹은 훔쳐져서 그 존재가 잊히곤 합니다. 그나마 부처님은 이렇게 기억을 해 주는 이가 있기에 다행이라고 할까요?

 

이 미련한 후손들은 문화강국을 외치며 개발만 생각합니다

 

답답합니다. 문화강국을 외치면서 문화재정책에는 전혀 관심이 없이 오히려 개발만 생각합니다. 대운하에 대한 진정성을 차분히 검토하지 않고 우선 밀어붙여보려고 합니다. 생태계에 대한 대재앙, 그리고 문화재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피해, 그리고 이 땅의 사람들에게 식수로서의 활용을 못하게 하는 물부족국가로 가는 지름길을 현 정부는 자처하고 있습니다.

 

부처님... 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곧 석가탄신일입니다. 이 석가탄신일이 이제 부처님에게는 몇 번이나 남았을까요? 대운하가 시작된다면 이제 한두 해 후면 다시는 지상에서 석가탄신일을 맞이할 날은 오지 않겠지요...

 

이게 다 우리의 잘못입니다. 우리의 무지와 무관심이 이렇게 부처님을 익사시키려고, 그 목을 죄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돈만 찾습니다.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이만 줄이겠습니다. 다음번에 기회가 되면 그때 다시 찾아가서 향을 하나 피워 올리겠습니다. 이 땅에 대재앙이 오지 않기를 바라며, 이만 물러갑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덧붙이는 글 | 2007년 11월 4일 충주 중원창동리마애불에 갔다와서 쓴 글입니다.


태그:#중원창동리마애불, #고려, #충주, #한반도 대운하, #탄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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