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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외쳤던 '전작권 환수 재논의'는 어디로 갔나

 

개인적으로,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 이전에 이미 이명박 정부의 외교적 능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일이 일어났음을 느꼈다. 사람들이 관심을 크게 두지 않을 이슈이기에 주목받지 못했을 뿐이다. 무엇에 관한 일일까? 바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다.

 

소위 말하는 '보수세력'은 '전작권 환수'에 대해 극렬한 반발 분위기를 보였다. 노무현 정권을 향해 변함없는 '색깔론'을 내세웠을 뿐만이 아니라 '전직 국방장관'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전시작전권 단독행사는 시기상조"라는 반응을 보일 때는 그야말로 '점입가경'이었다.

 

하지만, 이는 미군의 군제전략이 바뀌면서 미국의 의지에 따른 것이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쨌든 무시한 논조였을 뿐이다. '전작권 환수' 논의를 살펴보려면 미국의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 검토' 계획을 살펴봐야 한다.

 

미군의 군제전략은 '전방 주둔(Forward Deployment)'에서 '전방 배치(Forward Presence)'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미군이 '신속기동군' 체제로 바뀌면서 "미국의 필요에 따라 해외 작전을 언제 어디서든 펼칠 수 있는 체제"로 개편됐다.

 

'한반도'를 예로 설명한다면, 전반적인 '대북 방어'는 한국군이 맡는 가운데, 주한미군 역시 '신속기동군' 체제로 전환돼 필요에 따라 해외에서의 작전을 언제 어디서든 신속하게 펼칠 수 있는 체제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다.

 

미군의 이 개편을 이해하려면, 폴란드 태생의 미국의 국가안보 전략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를 알아야 한다. 그는 미국의 21세기 전략으로 '유럽의 정치적 통합 관리'와 '이슬람 반미 통제', '중국의 부상 견제', '중앙아시아의 천연자원 관리' 등 큰 틀에서의 4가지 관리를 주문했다. 유럽과 중동, 중앙아시아와 중국에 이르기까지 유라시아 전체를 구석구석 관리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그럼으로써 미국이 지키고 유지해야 할 '안보벨트'는 커졌다. 이렇듯 안보벨트가 커진 상황에서는, 해외 주둔 미군들의 기동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나온 미군의 군제전략 개념이 바로 '신속기동군'이다.

 

'전시작전권 환수'는 미국이 원하는 것

 

현재의 미국은 '소련'과 냉전을 벌이고 있는 시기가 아니다. 오히려 냉전을 벌일 때보다 '안보벨트'가 더 커졌다. 하지만 동원할 수 있는 전력은 무한자원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속기동군' 체제가 등장한 것이며 그에 따라 해외 주둔 미군은 무엇보다 '유연해야 할 필요성'이 느껴졌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최근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전쟁을 벌이는 동안 유럽과 미 본토 전력 중 상당수가 해당 지역으로 이동해 작전을 수행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그뿐일까? 한국뿐만이 아니라 일본도 '주일미군 조정 논의'를 일찌감치 거쳤다.

 

그에 따라, 미국과 일본 사이에도 주일미군 조정 논의가 일찌감치 진행됐던바 있으며,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서도 유럽과 미 본토 전력 중 상당수가 중동으로 이동해 작전을 수행한 것을 목격했다.

 

이런 현상들이 무엇을 이야기할까? '전시작전권 환수'는 미국의 필요에 따른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렇듯 변화된 미국의 군제전략을 안다면, '친미'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전작권 환수 재논의'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 알고 이야기한 것일까? 정말 모르고 이야기한 것일까?

 

보수세력은 이명박 대통령이 '캠프 데이비드'에 초청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지면서 '전작권 환수 재논의' 과정도 거칠 것이라며 들뜬 기대를 가졌지만, 정상회담 이후에는 '전작권'의 '전'자도 꺼내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왜 아무런 이야기가 없는지 궁금한가? 다음 기사를 참고하길 바란다.

 

"(전략) 당시 노 대통령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우리 국민이 동북아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없다"며, "(이는) 어떤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는 확고한 원칙으로 지켜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복수의 펜타곤 관리들은 신중하게 협의해야 할 문제가 그런 식으로 처리된 것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특히 한 관리는 "노무현 대통령이 한국의 허락 없이 주한미군이 동북아 분쟁에 개입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취지의 발언은 "미국의 주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즉, 주한미군은 미국의 군대이기 때문에 이들이 어디를 가느냐는 한국의 허락을 받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단 한국은 동맹국이기 때문에 미국이 주한미군을 해외로 차출할 때에는 양국 사이의 협의와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은 빼놓지 않았다. 그러나 3월 8일 노 대통령의 연설과 같은 발언은 동맹관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후략)"

- <오마이뉴스> 2005년 5월 12일자 기사 <"한국정부, 동맹을 정치화하고 있다">의 일부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오히려 '주한미군의 타 지역 이동'에 반발했으며, 미국은 오히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을 향해 "네가 뭔데 미국의 주권을 침해하느냐"는 식의 이야기를 남긴 것이다. 안믿기나? 그런 의미에서 '친이명박' 성향의 언론 보도도 첨부하겠다.

 

"전작권 전환이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 중 어느 쪽의 선(先)제의나 주도로 이뤄졌는지에 대해 국내에선 많은 논란이 있었다. 일부에선 한국측 제의가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측에선 미국의 예정된 프로그램에 따라 진행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런데 롤리스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이 2005년 10월 럼스펠드 당시 미 국방장관에게 ‘전작권 전환 협의’를 먼저 제안한 것이, 한국이 2012년 전작권을 받게 된 계기가 된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은 이때까지만 해도 전작권 전환 개념을 구체화하지 않은 상태였으나 노 대통령이 먼저 제안해오자 럼스펠드가 이를 전격 수용하면서 논의가 급진전됐다는 것이다.


전작권 전환의 급진전은 한미안보정책구상회의(SPI) 차원을 넘어서는 사안이었다는 얘기다. 이후 미국은 “빨리 가져가라”며 한국에 2009년 전환을 요구했고 한국은 오히려 “전환 시기를 늦춰달라”고 하다가 최종적으로 2012년으로 결정됐다."

- <신동아> 2007년 9월호 기사 <미국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총괄’리처드 롤리스가 밝힌 한미동맹의 진실>-

 

보수세력, 어떤가? "빨리 가져가라"며 압박까지 가했고, 한국은 오히려 "전환 시기를 늦춰달라"고 요청하면서 3년 늦춰져 2012년으로 결정됐다고 한다. 그런 판에 무슨 '재협상'인가? 이게 이명박 정부의 '실용외교'의 현실이다.

 

이명박 외교의 특징은 '꿀 먹은 벙어리'

 

외교를 자꾸만 정략적으로 활용하려다 보니, 무리가 동반되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외교 현실이다. 앞서 분석해봤듯이, 말 많고 탈 많던 '전작권 환수'도 미국이 원한 것이었지만, 보수세력은 '색깔론'을 내세워 그 현실을 왜곡시켰다. 하지만, '캠프 데이비드'에서 '전시작전권'이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다음의 기사가 잘 보여줄 것이라 믿는다.

 

"보수 쪽 인사들은 3500명 잔류를 한미동맹 복원의 중요한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진짜 보수적 의미에서 한미동맹 복원이라면 전시작전권 환수와 한미연합사 해체를 막았어야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도 이는 이미 포기한 상태다."

- <오마이뉴스> 4월 20일자 기사 <'캠프 데이비드 호텔' 숙박료는 비쌌다>의 일부

 

'보수적 의미'에서 가져와야 할 '전시작전권 환수 저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하면서, '30개월 이상 등뼈 달린 쇠고기'만 잔뜩 안고 돌아온 것이 이명박 대통령이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벌인 '카트라이더' 게임의 대가다.

 

이게 '실용외교'인가? '실용'이라는 말이 언제부터 그렇게 의미가 변했는지 모르겠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외교를 '조공외교'라고 한다. 더 심한 표현도 요즘 인터넷 상에서 유행하고 있지만, 차마 기사에 등재할 수는 없어 옮기지는 않겠다.

 

하지만 '이명박식 실용외교'의 현실은 저게 끝이 아니었다.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에 의해 그동안 쌓이고 쌓였던 민심이 분노하고 폭발하면서, '외교'의 '외'자도 모르는 선언을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목소리를 직접 옮겨보겠다.

 

"쇠고기 개방으로 국민 건강에 위협을 가하는 일이 있다면 즉각 우선적으로 수입을 중지할 것이고, 대책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도 그 논조를 이어받았다.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한다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즉각 중단하겠다. (미국과) 통상마찰이 발생하더라도, (쇠고기) 수입을 중단할 것이다."

 

하지만, 민동석 농수산식품부 농업통상정책관이 직접 서명한 '쇠고기 협상' 4조와 5조를 돌아봐야 한다.

 

4. 미국 정부는, 미국의 규정에 따라 BSE를 효과적으로 발견하고, 이의 유입 및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지속적으로 유지한다. 이 조치들은 OIE의 BSE 위험통제국 지위에 대한 지침에 부합되거나 그 이상인 조치들이다. 미국 정부는 BSE와 관련된 어떠한 조치를 폐지 또는 개정할 경우, 미국의 세계무역기구(WTO) 의무에 따라 WTO에 통지할 것이며 한국에도 이 내용을 알려줄 것이다.

 

5. 미국에 BSE가 추가로 발생하는 경우, 미국정부는 즉시 철저한 역학조사를 실시하여야 하고 조사 결과를 한국정부에 알려야 한다. 미국정부는 조사 내용에 대해 한국정부와 협의한다. 추가 발생 사례로 인해 OIE의 미국 BSE 지위 분류에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경우 한국정부는 쇠고기와 쇠고기 제품의 수입을 중단할 것이다.

 

이럴거면 '합의문'은 뭐하러 썼을까? '외교'는 정치의 일부분이다. 하지만 '정략'으로 대처해서는 안된다. '전작권 환수' 문제로 한번 혼이 났으면 그것으로 족할 일이지, 외교의 기본까지 무시하는 일을 '위기모면용'으로 제시하는 일, 이게 '실용외교'인가?

 

그뿐만 아니라, 정운천 장관은 '쇠고기 청문회' 당시, 한나라당 김형오 의원의 질문에 대해 이런 발언까지 남겼다.

 

"대만 일본이 협상하는데 우리보다 조건이 유리하다면 재협상 조건 개정합니까?"

"재협상 요구하겠습니다."

 

하지만, 수전 슈워브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재협상이나 협상 문안 재수정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미국 측 대표로서는 당연한 이야기다. 내가 미국 측 대표라도 그런 보기드문 유리한 협상을 '수정'하려고 들지는 않을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은 하지도 못하고, 그런데 정작 위험한 결과는 잔뜩 안고 돌아와 국내외에서 치도곤당하고…. 이게 바로 이명박식 '실용외교'의 현실이다.

 

'외교'의 '외'는 알고 있나

 

물론, 정운천 장관으로서는 '위기탈출'을 시도할 수 있는 '한방'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GATT(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 20조 B항, '인간 및 동식물의 생명·건강 보호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협상 적용의 예외로 규정해놓은 항목이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도 아래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FTA(자유무역협정) 등 국가간 협정을 체결할 때 서문이든, 초장에 이 협정이 GATT의 테두리에 있다고 언급, 양자간 협정의 상위에 GATT 협약이 있음을 인정한다. 양자간 쇠고기 협약 역시 하위법으로서 상위에 있는 GATT를 오버라이드할 수 없다(우위에 설 수 없다).

 

우리 헌법 체제상 국내적으로 GATT 20조에 근거해 수입제한 조치를 발동하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다. 다만 수입을 제한하기 위한 위장된 장벽으로 사용하면 안된다. 실제로 이 조항이 원용돼 발동된 사례를 보면 양측 합의로 발동된 경우는 하나도 없다."

 

하지만, 청문회 참석 의원들의 반박은 곧바로 이어진다.

 

"GATT 20조를 원용해 수입중단 조치를 실시해도 광우병 발생이 생명에 위협이 안된다는 유권해석이 나온다면 (중단조치 자체가) 국가간 분쟁거리로 갈 수밖에 없다."

-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

"고시까지 하면 미국의 광우병이 발생하는 구체적인 상황에서는 GATT에 의거해 권리를 내세우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GATT는 국가간 일반적 법률관계이고, 쇠고기 협상은 한국과 미국의 특수한 법률관계로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 참고인 송기호 변호사

 

결국, 정운천 장관은 '원래대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쇠고기 협상 결과를) 15일에 예정대로 고시할 것이다. (협상결과를 고시하는 것과 향후 광우병 발생시 수입을 중단하는 내용을 포함시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대한민국 외교'가 어떻게 엎치락뒷치락 코미디로 전락했는지, 생생하게 지켜본 것이다. 하고 싶은 말(전시작전권 환수 재논의)은 하지도 못하고, 위험한 것들은 잔뜩 끌어왔고, 비판을 이겨내고자 새로운 항목을 끌어들였지만 즉석에서 반박당하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어떤가? '캠프 데이비드'의 숙박료는 정말로 비쌌다. 앞서 게재한 <'캠프 데이비드 호텔' 숙박료는 비쌌다> 기사 초반에 게재된, 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한 청와대 관계자의 발언이 '엎치락뒷치락 청문회'를 보고나니 더욱 인상적으로 느껴진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도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못 여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가 일부러 가지 않은 면이 있었다. '숙박료'가 비쌀 것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조공외교, #광우병 쇠고기, #미국산 쇠고기, #미국 쇠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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