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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것’으로 삼는 것을 없이 하겠다는 마음은 더없이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지지 않겠다는 마음은 놓는 마음일 터이고, 놓는 마음은 자연스레 베풀거나 나누는 마음으로 이어지겠지요. 그렇지만 우리들은 아무것도 안 가질 수 없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은 내 목숨을 가져야 하며, 다른 목숨을 받아들여서 밥을 먹고 옷을 입고 잠을 자며 지내야 합니다.

 

 다만, 어쩔 수 없이 가져야 하지만 억지로 가지지 않겠다는 마음이 ‘무소유’이며, 남이 가진 것을 빼앗지 않겠다는 마음도 ‘무소유’일 테지요. 그렇다면 남한테서 자꾸 빼앗는 사람을 마주할 때는 어찌해야 ‘무소유’일까요. 독재자를 볼 때, 친일부역자를 볼 때, 노동자와 농사꾼을 짓누르는 우리 형편을 볼 때, 남녀차별과 장애인차별이 뚜렷이 있는 우리 사회를 볼 때, 참답게 나아가는 ‘무소유’란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노동자나 농사꾼한테 ‘무소유’를 말하는 일은 얼마나 알맞을까요. 아무 권리도 누리지 못하는 막다른 사람한테 ‘무소유’를 되뇌이는 일은 어떠한 값어치가 있을까요. 움켜쥐고 놓지 않는 사람한테 들려주는 ‘무소유’가 아니라, 처음부터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 앞에서 읊조리는 ‘무소유’라면 뜬구름잡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슬며시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 무소유

 └ 소유와의 이별

 

 지난 1970년대에, 법정 스님이 낸 <무소유>라는 책이 있습니다. 참 좋은 뜻으로 펼친 이야기요, 생각이라고 봅니다. 그저 한 가지 아쉽다면, 책이름을 붙일 때 한 번 마음을 기울여 보았다면, 한자 지식이 있지 않는 사람들도 넉넉히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지 않았으랴 싶어요.

 

 ┌ 비움 / 놓음 / 나눔 / 내놓음

 └ 안 가짐 / 갖지 않음 / 내어놓음

 

 ‘안 가짐’이라고 적으면서 좋은 생각을 나누면 어떠할까요. ‘갖지 않음’으로 적으면서 너른 생각을 함께하면 어떠할까요. ‘내어놓음’으로 적으면서 살뜰한 생각을 기꺼이 베풀면 어떠할까요. ‘비워 놓음’으로 적으면서 아름다운 생각을 누게라 하지 않고 주고받으면 어떠할까요.

 

 ‘나눔’이라는 한 마디를 생각해 봅니다. ‘나눔’이란, 자기한테 있는 무엇인가를 남한테 내어주는 일이지만, 가만히 속내를 살피면, ‘자기 것으로 삼지 않고 누구나 가질 수 있도록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무소유’라는 생각은, 자기 혼자 안 가지고 사는 모습을 넘어서, ‘나눔’과 마찬가지로, 자기한테 있는 어떠한 것이든 알맞는 곳에 가도록 마음을 기울이는 일이 된다고 느낍니다.

 

 ┌ 나눔

 └ 가지지 않기 / 안 가지기로 했어요 / 내 것이란 없어요

 

 몇 해 앞서 어느 독일사람이 쓴 <소유와의 이별>이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틈을 내어 차근차근 읽고 있는데, 자기 몸이 아프고 마음이 괴로운 까닭을 가만히 살펴보니, 무엇인가에 자꾸 매달리려 하거나 붙잡으려 하거나 놓지 않으려 하기 때문임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래서 왜 이렇게 무엇엔가 자꾸 매달리고 이끌릴까 싶어서 마음을 다스리게 되었고, 어떤 ‘돈-이름-힘’ 따위라든지, 개인으로 이루는 뜻(성공)마저도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는데, 이렇게 마음을 추스르다 보니 괴롭고 아프던 모든 것이 씻긴듯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분은 ‘애써 가지려고 하고 붙잡으려 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가만히 돌아보면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자면 ‘마음을 놓을 줄 알아야 한다’고, ‘내가 가지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놓아 두는 가운데 ‘쓸 만큼만 고맙게 받아서 쓰고’ 나머지는 그 자리에 가만히 놓아서 누구나 쓸 수 있도록 해야 함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출판사에서는 독일사람 책이름을 <소유와의 이별>로 옮겼습니다. 문득, 독일에서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에는 어떤 이름이 붙었을까 궁금해집니다. 아니, 나라면, 내가 이 책을 한국말로 옮겨내는 사람이라면 어떤 책이름을 붙여 볼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내 것하고 헤어지기로 하다> 쯤으로 붙여 볼까? <안 가지며 살기>는 어떻지? <없는 대로 살기>나 <없이 살기>로 한다면? <가난하게 살기>라고 붙여 볼까?

 

 ┌ 소유(所有) : 가지고 있음

 │   - 버려진 땅을 개간한 토지는 양반들의 소유가 되었다

 └ 무소유(無所有) : 가진 것이 없음

      - 무소유의 의미 같은 걸 터득하게 되었다 /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역리(逆理)

 

 토씨 ‘-의’를 붙이는 책이름은 썩 달갑지 않습니다. 또, ‘소유(所有)’나 ‘이별(離別)’이라는 말을 붙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책이름으로 붙는 우리 말을 헤아려 봅니다. 가지지 않고 널리 나누려는 뜻이라 한다면, 우리가 쓰는 말도 한결 쉽거나 올바르거나 살갑게 추슬러 주면 어떠하겠느냐고. 적게 배우거나 못 배운 사람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책이름을 붙여 주면 어떠하겠느냐고. 어린이나 늙은이도 어렵잖이 헤아리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책이름을 붙이고 이야기를 펼쳐 나갈 수 있다면, 더욱 살뜰하고 푸근한 ‘나눔’으로 거듭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눈에 보이는 돈을 안 가지는 일, 남 앞에 우쭐거리게 되는 이름 안 가지는 일, 사람들 위에 올라서며 괴롭히는 힘을 안 가지는 일은 틀림없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중요함에다가 한 가지를 얹어서, ‘우리가 늘 쓰는 말과 글을 한결 살가우며 손쉽고 올바르게 다독이는’ 일을 펼쳐 나가면, 서로서로 마음과 마음이 더 따뜻해지고 깊이 만나는 길이 트이지 않겠느냐 믿어 봅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책+헌책방+우리 말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태그:#책이름, #무소유, #소유와의 이별, #우리말, #우리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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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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