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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서민이 돈없고, 힘없고, 선량한 사람들로 대변된다면 재벌은 돈많고, 오만하고, 부패한 사람들로 대변된다. 이런 이분법, 당신은 언제까지고 찬성할 것인가?

현재 대한민국 안방을 책임지는 두 개의 안방드라마, KBS의 <엄마가 뿔났다>와 SBS <행복합니다>. 이 두 드라마에서 비춰지는 재벌의 모습은 미디어에서의 전형적인 재벌의 모습이자, 대한민국 대다수 사람들이 바라보는 재벌에 대한 시각이다.

재벌가의 마나님, 그들에 대한 일방적인 편견

'엄마가 뿔났다'의 고은아(장미희 분)는 경우 없고, 자기 밖에 모르는 재벌가 마나님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엄마가 뿔났다'의 고은아(장미희 분)는 경우 없고, 자기 밖에 모르는 재벌가 마나님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 KBS '엄마가 뿔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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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한국 드라마에선 재벌가의 마나님에 대해 능력은 없고, 유식함을 가장하고 있지만 더없이 유치한 이들로 그려진다. 특히 <엄마가 뿔났다>의 재벌가 마나님 캐릭터 고은아(장미희 분)나 <행복합니다>의 재벌가 마나님 캐릭터 이세영(이휘향 분) 모두 가족의 소소한 삶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 삶의 전부인양 표현된다.

이런 모습은 고은아가 자신의 아들인 김정현(기태형 분)의 결혼식을 축복하기 보단 오는 하객의 수와 질(?)을 걱정하고, 이세영은 자신의 딸인 박애다(이은성 분)가 집을 나가자 언론에 알려질 것을 두려워해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 모습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겉으로는 부유하고 고상하게 포장된 캐릭터의 내면은 속물이라는 일종의 '씹을거리'를 두 작품은 시청자에게 제공한다.

드라마가 탄생시킨 악마, '재벌'

재벌은 우리 사회에는 알려진 게 없는 일종의 신비로운 존재다. 문제는 이런 재벌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매번 등장하는 안방드라마들이 심어주고 있다는 것. 이런 드라마들의 시각은 고은아의 입을 통해 발현된다.

고은아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운운하며 "우리 사회는 희망이 없고, 존경받는 부자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헤어케어를 받고, 음악회용 드레스를 따로 준비해야 한다고 말하며, 집안에선 클래식 음악을 멈추지 말고, 며느리에겐 서재에서 책을 보라고 말한다(이것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발언이 끝나자마자 재벌을 희화화하기 위한 장치로 쓰인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운운한 부분은 드라마가 말하려는 핵심이지만, 재벌을 대변하는 캐릭터는 그저 허례허식 같은 말 한 마디 내뱉었을 뿐, 정작 이를 신경쓰며 살아가는 모습은 전파를 타지 않는다. 이는 또다른 '씹을거리'로서 시청자에 입에 회자될 뿐이다.

재벌과 서민의 대립구도, 과연 무슨 교훈을 줄까?

이렇게 재벌의 모습을 희화화 하는 것만으로 드라마의 횡포는 끝나지 않는다. 이른바 재벌과 서민의 대립구조를 항상 투영시키곤 한다. 드라마에선 이런 재벌과 서민을 '결혼'이란 제도를 통해 대립구도로 고착화시킨다.

<엄마가 뿔났다>와 <행복합니다> 모두 재벌과 서민 집안의 결혼을 등장시키는데, 이를 통해 재벌의 몰상식함과 경우 없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그에 반해 대가족 형태를 유지하며 사람 냄새 나는 서민 가정을 그리곤 한다. 특히 재벌에 대한 부분은 고은아와 이세영을 통해 드러나는데, 사사건건 사돈이 되는 서민 집안을 일상대화나 행동거지에서 격이 없고 수준낮은 집안으로 폄하한다.

이는 현재 방영되는 다른 드라마에서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SBS의 <사랑해>에서는 성공한 재벌인 철수모(선우용녀 분)가 자식의 애를 가져서 결혼 승낙을 받으러 온 며느리감의 집안이 형편없다는 것을 이유삼아, 애를 떼라고 강요한다. 또한 이것도 모자라서 능력있고 집안이 빵빵한(?) 여인을 등장시켜 아들로부터 며느리감을 떼어놓으려 한다. 도가 지나친 희화화다.

결국 드라마 속에선 재벌과 서민이 이분법적 사고로 갈리게 되고, 결말쯤에는 극적인 화해무드로 흐르거나, 함께 나가는 길을 찾는다. 하지만 사람들 가슴속엔 결말이 아닌, 극 초에 재기된 재벌들의 왜곡된 시선만이 가득할 뿐이다.

재벌에 대한 비난만이 가득한 드라마

'행복합니다'의 이세영(이휘향 분)은 자기 가족의 안위나 행복보다 사회적 시선에 모든 신경이 곤두서서 살아가는 재벌가 마나님의 모습을 보여준다.
 '행복합니다'의 이세영(이휘향 분)은 자기 가족의 안위나 행복보다 사회적 시선에 모든 신경이 곤두서서 살아가는 재벌가 마나님의 모습을 보여준다.
ⓒ SBS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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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안방드라마에 서민 가정은 대가족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넉넉잖게 살아가지만 가슴 따뜻한 감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야기로 그려진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 대가족은 찾아보기 어렵다.

넉넉잖게 살아가는 건 맞지만, 적자생존의 사회현실 속에 가족끼리 얼굴 한 번 보는 것도 어렵고, 정이나 사랑을 느끼기보단 당장 낼 세금 정산서와 카드 대금에 벌벌 떨며 살아가는 게 우리 서민이다.

그렇다면 드라마에선 왜 이상적인 형태의 서민 가정을 등장시키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 사회가 잊고 살아가는 가족 간의 정이나 인간미를 드라마를 통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새기는데 의미를 두었기 때문이다.

이런 서민 가정에는 능력없는 형도 있고, 사회적으로 성공했지만 가족에겐 싸가지(?)없는 삼촌도 있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이들을 웃고 울고를 반복하며 든든하게 버팀목으로서 가족이란 훌륭한 제도가 우리 사회에 있음을 보여준다. 일종의 롤모델인 셈이다.

그렇다면 재벌 역시도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천편일률적인 보여주기 방식에서 탈피해야 될 시점이 오지 않았을까? 그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일정정도 조명해보고, 그들을 이야기할 때도 상식적인 수준에서 표현해야 되지 않을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씹을거리로 제공하지 말고, 실제로 행동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보여주는 건 어떨까? 대부분 서민들이 재벌에 대한 정보가 없이 드라마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는데, 드라마의 이런 왜곡된 시선은 우리 사회에 어떤 교훈을 주는지 모르겠다.

'재벌은 원래 그런 존재들이다?' '우리와는 노는 물이 다르니 함께 하지 말자?'. 현재는 재벌에 대한 무차별적인 비난만이 드라마에 가득한 셈이다. 물론 모든 드라마가 재벌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제공하진 않는다. 하지만 대다수 드라마가 그러는 건 사실이다. 우리에게 못되고, 몰상식한 재벌의 이미지는 머릿속을 수도 없이 스쳐가도, 떳떳하고 이상적인 재벌의 이미지는 도무지 그려지지 않는다.

이는 신문의 사회면에서 우리에게 심어준 이미지도 아니고, 교과에서 우리에게 심어준 이미지도 아니다. 사람들의 이미지를 선도하는 드라마에서 그렇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비난은 식상... 재벌에 대한 롤모델 제시해야

드라마도 분명 현실세태를 풍자하고, 우리의 애환을 달래기 위해 그런 스토리를 채택하고 있다. 문제는 단순히 비판을 위한 비판은 비난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선 훌륭한 롤모델이 각 분야에 살아 숨쉬어야 한다. 우리 사회엔 이상적인 형태의 재벌의 모습은 없다. 아니 있었는데 우리가 모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문제에는 현재 드라마의 재벌 바라보기가 한몫 단단히 하고 있다.

이제는 롤모델을 삼을 수 있을 법한 드라마 속 재벌이 등장해야 되지 않을까? 그래야 단순히 씹을거리의 재벌로서 우리 입맛만 당겨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인식 속에서 재벌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해볼 수 있는 단초라고 제공할 것이다.

이제까지 무한반복되어 온 드라마 속 재벌의 모습, 이제는 식상하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casto와 푸타파타의 세상바라보기(http://blog.daum.net/casto)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CASTO, #재벌, #엄마가 뿔났다, #행복합니다,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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