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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깝다, 아까워, 며칠만 늦게 왔더라면 저 철쭉들이 활짝 꽃을 피웠을 터인데."

"철쭉이 문제가 아닌 걸, 평원처럼 펼쳐진 저 풍경 좀 봐, 얼마나 시원한지."

"30년 만에 다시 올랐는데, 역시 가슴이 시원하게 확 트이는 산이야."

소백산 정상이다. 힘들게 정상에 오른 일행들이 저마다의 느낌을 털어놓고 있었다.

 

정말 시원하다.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지만 바람이 문제가 아니었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더 시원한 느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가로막힌 것 없이 일망무제로 확 트인 전망도 그랬지만 정상에서부터 능선을 타고 펼쳐진 평원이 영화에서나 보았던 어느 외국의 풍경 같았다.

 

아! 힘들다, 소백산 1440m

 

지난 21일, 30여년 만에 오르게 된 소백산은 풍기읍 비로사 주차장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들과 동행한 또 한 대의 버스가 조금 뒤처지는 바람에 선두에 서게 된 우리 일행들 다섯 명은 모처럼 여유로운 표정들이었다. 나중에는 꼴찌로 밀릴지언정 우선은 앞장섰으니 바쁠 것이 없었다.

 

 

"룰루랄라 천천히 걸어, 처음부터 무리하지 말고, 결코 만만한 산이 아니니까."

 

사실 만만한 산은 고사하고 지금까지 우리들이 오른 산 중에 이만큼 높은 산이 없었다. 지금까지 오른 산들 보다 가장 높은 산을 오르게 된 것이다. 더구나 산행거리가 14km 나 된다고 한다. 그래서 일행들은 은근히 긴장하고 있었다.

 

체력이 떨어진 나이든 일행들이다. 그들의 긴장감을 풀어주고, 무리하지 않고, 체력을 조절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앞장 선 몇 사람의 발걸음이 예상보다 빠르다. 평소 제일 힘들어하던 친구들이다. 그들의 뒤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그들과의 간격이 자꾸만 더 벌어진다. 일주문이 한쪽에 비켜서있는 비로사를 저만큼 바라보는 삼거리에서 오른편으로 길을 잡았다.

 

우거진 숲과 싱그러운 바람, 가슴 속에서 산행의 즐거움이 솔솔 피어오르고 있었다. 길가에는 몇 채의 민박집들도 보인다. 서울을 출발할 때는 찌푸린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는데 이곳은 거짓말처럼 햇볕이 쨍하다.

 

오르막길을 한참 올라가자 앞장서서 씩씩하게 걷던 친구 한 명이 쉬고 있다. 나를 기다렸느냐고 물으니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온몸에 힘 쭉 빠져서 걷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큰일났다. 산행은 이제 시작인데 몸에 이상이 생겼다면 오늘 산행은 어려울 것이다.

 

 

가슴이 아프냐고 물으니 괜찮다고 한다. 다만 온몸에 힘이 빠져서 그렇다는 것이었다. 심장이 문제를 일으킨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문제는 처음부터 너무 빨리 걸었기 때문이었다.

 

웬일인지 처음부터 너무 빨리 걷는다 싶었는데 역시 그 때문인 것 같았다. 게다가 전날 3시간 동안이나 산책을 했다고 한다. 높은 산에 오르려면 전날은 푹 쉬는 것이 좋은데 말이다. 그는 더구나 체중이 만만치 않은 거한이었다.

 

일단 천천히 걸어 올라가기로 했다. 체력을 회복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다. 내가 뒤에서 격려하며 뒤따르자 안심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여를 걸었다. 우리들이 걷는 속도가 느려지자 뒤쳐졌던 다른 사람들이 자꾸만 옆을 스치고 앞질러 올라간다.

 

"어때? 이제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보이는데?"

"어! 이제 좀 괜찮아진 것 같아, 다리에 힘도 조금 붙는 것 같고."

앞에서 걷는 친구의 몸이 조금 가벼워보였다. 그런데 친구는 정말 그렇게 다시 체력을 회복하고 정상을 향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저기 앞 좀 보라고, 저곳이 바로 정상이야."

"우와! 드디어 해냈구먼, 도중에 포기하게 될까봐 걱정했는데."

아직 한 참 더 올라가야했지만 정상이 바라보이자 힘이 솟는 모양이었다. 그 사이 우리들을 앞질렀던 사람들이 다시 하나 둘 뒤처지고 있었다.

 

 

재치 있게 만들어 놓은 계단 옆의 다른 길

 

"많은 산들을 다녔지만 계단 옆에 이렇게 길을 만들어 놓은 곳은 처음인 걸."

"정말 그러네, 이렇게 만들어 놓으니 걷기가 한결 편해서 좋구먼."

소백산을 오르고 내리는 길에도 다른 산들처럼 역시 계단들이 많았다. 대부분 목재로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그러나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건 등산객들은 대개 계단 길을 싫어한다. 그런데 소백산의 일부 계단은 그런 등산객들의 마음을 헤아리기라도 했는지 계단 옆에 완만한 경사의 평평한 길을 따로 만들어 놓은 곳이 많았다. 바닥에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해 타이어 고무판을 붙여 놓았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도 지그재그로 만들어진 계단 길이었다. 그 계단들을 허위허위 올라 정상에 이르자 시끌벅적 사람들이 많다. 정상 표지석을 중심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아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해발 1439.5m.

 

꼭대기에는 제법 세찬 바람이 불고 있었다. 모두들 벗었던 겉옷들을 다시 입는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한 마디로 시원했다. 바람보다도 탁 트인 풍경 때문이었다. 오른편으로는 능선으로 이어진 국망봉이 가까워 보이고 왼편으로는 연화봉 뒤로 천문대가 아스라하다.

 

 

시원하게 펼쳐진 아한대 평원과 지천으로 피어있는 야생화

 

"우와! 이곳이 지상이야? 천상이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는 전혀 다른 딴 세상이구먼."

 

주변을 둘러보던 일행들이 감탄을 금치 못한다. 어떻게 이 높은 곳에 이렇게 넓은 평원이 펼쳐져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풀밭 이곳저곳에서는 등산객들이 음식을 펼쳐놓고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평원 조금 아래쪽으로는 소백산의 명물인 주목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멀리 바라보이는 몇 그루의 고사목을 제외하면 대부분 사람들의 손으로 심은 모습처럼 보인다. 정상과 봉우리로 이어진 능선 평원지대의 자연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해 심어진 나무들인 것 같았다.

 

능선길도 대부분 목재 발판으로 만들어 놓은 길이었다. 길 양쪽에는 사람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 밧줄 울타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 일행들은 과일과 떡으로 간식을 들고 연화봉 쪽으로 향했다.

 

 

조금 더 걸어 내려가자 주변에 철쭉나무숲이 빽빽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꽃봉오리만 맺혀 있을 뿐 대부분 꽃을 피우지 않고 있었다. 고산지대여서 낮은 기온 때문에 철쭉꽃뿐만 아니라 신갈나무나 도토리나무들도 이제 막 잎을 피우고 있었다. 그러나 철쭉나무 숲 아래쪽은 각종 야생화들이 지천이다.

 

뒤늦게 핀 노랑 제비꽃이 귀여운 모습이다. 그러나 모양은 제비꽃처럼 생겼지만 꽃잎이 훨씬 크고 탐스러운 다른 꽃들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숲속에 꽃세상을 이루고 있는 풍경이 이채롭다. 그 화려한 꽃무리 속에는 작고 새하얀 개별꽃들과 드문드문 커다란 잎에 엉성한 모양으로 피어 있는 하얀 꽃들이 눈길을 끈다.

 

이런 야생화 군락지는 연화봉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제1연화봉에 이르자 저 아래 오른쪽으로 천문대가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그쪽으로 내려가는 길가에는 아직 피우지 못한 다른 철쭉들이 보라는 듯 활짝 꽃을 피운 분홍 철쭉 한 그루가 홀로 화려한 모습이다.

 

 

정상인 비로봉에서 연화봉에 이르는 능선은 대부분 해발 1300m가 넘는 고지대여서 아한대기후지대다. 이런 고지대는 그 특성상 소나무나 일반 잡목 같은 다른 나무들은 잘 자라지 못하고 주목이나 철쭉, 신갈나무 등이 자연과 균형을 이루며 자생하고 있는 것이다. 야생화들도 다른 지역과는 구별되고 있었다.

 

연화봉에 이르자 주변에 자연 관찰로가 만들어져 있고 꼭대기에 1987년에 철쭉제를 기념하여 단양군에서 세워 놓은 정상 표지석이 우람하다. 그 꼭대기 전망대 목책 옆에는 우체통 하나가 놓여 있어 눈길을 붙잡는다.

 

"이 산꼭대기 우체통으로 편지를 부치는 사람은 누구일까?"

"시끄러운 세상 소식을 소백산에 전하는 사연이 담겨있겠지."

"이 높은 곳에서 다 내려다보고 있는데 소식을 따로 전할 필요가 있을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으니 어쩌면 따로 소식을 전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속내를 알 수 없는 저 속 검은 사람들의 마음이야 누가 전해주지 않으면 어찌 알 수 있으랴.

 

 

천년고찰 희방사와 내륙최고의 희방폭포

 

연화봉에서 희방사까지 가는 길은 내리막길의 연속이었다. 가파른 산길을 허겁지겁 내려오노라니 다리가 뻐근하다. 희방사 근처에 이르자 불경소리가 골짜기를 메운다. 그러나 막상 경내는 사람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음료수 대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먼저 내려와 참배를 마친 일행이 나타났다.

 

희방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두운조사가 세운 천년고찰이다. 또 조선 선조 때 새긴 ‘월인석보’ 1~2권 판목을 보존하고 있었는데, 6·25 한국전쟁 때 법당과 훈민정음 원판, 월인석보 판목 등이 불타버리고 말았다. 1953년에 중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경내에 희방사 동종(경북유형문화재 226)과 월인석보 책판을 보존하고 있다.

 

절집을 둘러보고 아래로 조금 더 내려오니 물소리가 요란하다. 바로 국내 내륙지방에서 가장 크다는 높이 28m 희방폭포의 물소리였다. 마침 엊그제 내린 비로 인해 골짜기의 물이 불어나 폭포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도 굵고 소리도 그만큼 요란한 것이었다.

 

 

희방폭포의 물줄기에 잠깐 취해 있다가 주차장으로 내려오니 예정시간보다 1시간이나 늦은 6시간이 경과했다. 우리들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미안함 때문에 부랴부랴 버스로 뛰어갔는데 사람들이 별로 없다. 대신 산악회장과 리더 몇 사람이 박수를 치며 우리를 맞는다.

 

참가산악회원 70여 명 중에 우리일행 다섯 명은 20~30등으로 내려온 것이다. 산악회에서 준비해온 늦은 점심 겸 저녁을 먹으며 일행들이 자축을 한다.

 

"모두들 대단해, 우리들이 소백산 등반을 거뜬하게 해내다니."

"그것도 20~30등 이내로 도착한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야. 모두들 축하해!"

서로서로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일행들 모두 은근히 걱정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건 내 일생일대의 쾌거야. 이거 우리 족보에 올려야겠는 걸, 우하하하."

우리 일행들 중에서 체력이 가장 약하여 등산할 때마다 힘들어 하던 친구는 그야말로 감개무량한 모습이었다.

 

 

"자! 이 기쁨을 모아서 다음 주에는 지리산 천황봉에 오르는 거야. 그동안 체력관리 잘하고, 알았지?"

 

즉석에서 다음 주 산행은 지리산 천황봉으로 결정이 되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다음 주 산행에 대한 계획이 세워지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승철, #소백산, #비로봉, #희방사, #희방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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