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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장녀인 제가 동생들에게 "언니한테 까불지마!"라고 할라치면, 온 동네에 사람 좋기로 소문난 아버지가 직접 나서서 야단을 치셨습니다. 물론 현장에서 바로 직격탄을 날리신 건 아닙니다. 동생들이 학원에 가거나 밖에 나가서 노는 사이, 집안에 저 혼자 남아있을 때 주로 말씀하셨지요.

 

"너는 동생들이랑 똑같은 계급이야. 니가 먼저 태어난 것 뿐이지. '언니'라는 게 무슨 벼슬인 줄 아냐? 아니다. 형제지간은 세상에 나온 순서만 다른거야. 그러니까 니가 걔네들한테 까불지 말라고 할 자격은 없다고. 알겠냐?"

 

지금 돌이켜봐도 몹시 서운한 아버지의 멘트를 들을 때마다, 저는 부끄럽고 서운해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어디 쥐구멍이라도 찾아들어가고 싶었습니다.  

 

형제는 부모가 남겨준 가장 소중한 유산

 

어머니는 형제들과 투닥거리는 저를 데리고 늘 동네 빵집으로 가셨습니다. 먹고 싶은 빵을 실컷 고르게 한 뒤에 본론을 꺼냅니다. "어린 동생들이랑 싸운 게 부끄럽지도 않냐?"로 시작하는 어머니의 훈계는 매번 "다시는 동생들하고 싸우지 않겠습니다"라는 다짐을 받아내시고야 끝났습니다.

 

수북이 쌓인 소보루나 단팥빵으로 손이 가질 않았고, 접시에 놓였던 빵들은 집에 가서 동생들과 나눠 먹었습니다. 부모님들이 동생들 앞에서 혼내지 않고 따로 불러서 야단치신 덕에 저는 저대로 큰언니의 권위를 보장받을 수 있었고, 동생들하고 친구처럼 지내며 사이좋게 자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형제는 부모가 남겨준 가장 소중한 유산'이라는 거창한 이유를 달고 쿠하에게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를 선물하기로 했습니다. 예정대로라면 다음 달 중순, 쿠하는 동생 까이유를 만날 수 있습니다. 임신 초기에 태명을 정할 때부터 쿠하의 의견을 반영했습니다. 까이유는 쿠하가 즐겨보는 만화 주인공 이름입니다.

 

 

요즘 쿠하에게 읽어주는 그림책 중에는 동생을 소재로 한 책이 많습니다. 미술을 전공한 자매가 함께 그린 <내 동생이 태어났어>는 동생이 태어나면 어떻게 해주는 게 좋은지 편안한 그림체로 알려줍니다.

 

동생이 태어나면 잘 가리던 오줌을 못 가리거나 다시 젖을 먹겠다는 등 퇴행현상을 보이고, 어린 아기에게 쏠리는 집안의 관심을 질투하는 아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럴 때 첫아이를 배려하면서 갓난아기를 챙길 수 있으려면 미리미리 온 가족이 마음의 준비를 해둬야 할 것 같습니다.

 

 

<엄마가 알을 낳았대>는 아기가 어떻게 태어나는지 궁금해 하는 아이들에게 읽어주기 좋은 책입니다. 아이를 튜브에서 짜내거나 엄마가 소파 위에서 알을 낳을 수 있다는 내용이 웃음을 자아냅니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더러 '엉터리!'라고 하면서 씨앗하고 튜브, 알 이야기는 대충 맞다고 합니다.

 

'저 튜브는 엄마한테 있는 조그만 구멍으로 들어가요. 그러면 씨앗들이 꼬리를 흔들며 엄마 뱃속으로 들어가지요.'

 

아이들 성교육을 언제 시켜야 될 지 모르겠다는 엄마들이 있는데, 저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알려주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쿠하 또래의 아이들도 이성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 것 같아서 요즘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소재로 한 그림책도 읽어주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책 <내 동생 싸게 팔아요>는 글밥이 많아서 쿠하 또래 아기들 보다는 5~7세 정도의 아이들에게 적당한 책입니다. 처음에는 그림만 설명해주고, 점점 양을 늘려가며 자주 읽어줬더니 이제는 쿠하가 먼저 꺼내오는 책이 됐습니다.

 

"짱짱이가 시장 가요. 동생 팔러 시장 가요."

 

똑같은 리듬을 실어 앞부분 '짱짱이가'와 '동생 팔러'를 엄마가 하면 쿠하는 "시장 가요~", "시장 가요~"를 맡아서 합니다. <내동생 싸게 팔아요>는 누나를 괴롭히는 먹보, 고자질쟁이 남동생을 시장에 팔러 가는 내용입니다.

 

장난감 가게 언니에게는 인형 하나랑 바꾸자 하고, 꽃집 할아버지에게 장미 한 송이만 주면 동생을 팔겠다고 합니다. 빵집에 가서는 빵 한 개랑 바꾸겠다고 하지만 아무도 말썽꾸러기 동생을 사려고 하지 않지요. 친구 순이가 왕자님 역할도 잘 한다는 동생을 거저 달라고 하자, 짱짱이의 마음이 바뀝니다. 아무리 자기를 괴롭히고 못살게 구는 동생이라도 거저 주기는 아까웠던 모양이지요.

 

쿠하가 동생을 좋아하고, 마음에 상처받지 않게 하려고 의도적으로 읽어주는 이 그림책들이 효과를 발휘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형제들을 가장 오래된 친구로 느끼는 것처럼 쿠하도 세상에서 제일 오래된 친구, 가장 가까운 친구를 동생이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동생이 태어났어

정지영, 정혜영 글.그림, 비룡소(1997)


태그:#동생 , #그림책, #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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